
정만진 소설가
935년 10월17일 신검이 왕위에 올랐다. 후백제 창업주인 아버지 견훤이 죽어서가 아니다. 그는 아버지가 이복동생 금강을 후계자로 삼으려는 데 반발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견훤은 금산사에 유폐됐다가 탈출해 고려로 망명했다. 왕건은 그를 상부(尙父) 즉 아버지로 모셨다.
견훤은 왕건의 사실상 선봉장이 되어 자신이 건국한 후백제를 멸망시키는 일등공신 노릇을 했다. 신검은 왕좌를 11개월 만에 내놓고 처형되었다. 후백제의 어처구니없는 멸망사는 처음 듣는 사람이 "실화입니까?"라고 물을 만큼 비상식적이다. 놀라운 바는, 비상식이 생각보다 흔한 곳이 인간세상이라는 사실이다.
1967년 10월17일 중국 마지막 왕조 청의 마지막 황제 선통제가 이승을 떠났다. 기원전 221년 역사상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 이래 약 2천130년 동안 이어져온 황제 군주국가를 무너뜨리고 중국 최초의 근대적 공화국이 수립된 것은 1911년 신해혁명의 결실이었다. 밀려난 선통제는 일본 괴뢰 만주국 황제를 지내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전범으로 10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사람들은 "명색이 황제였던 자가 어쩌면 저렇듯 비상식적으로 비루할 수 있나!"라고 한탄하면서 선통제의 말년을 실감나게 묘사한 영화 '마지막 황제'에 공감한다.
신검의 종말은 영화화된 적이 없지만 앞으로도 없을 게 자명하다. 선통제는 그래도 '대청'의 마지막 황제였지만 신검은 후백제의 단명 왕에 지나지 않아 상품성이 없기 때문이다. 나라를 멸망으로 이끈 왕도 대국의 황제라야 역사에 남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는 '마지막 사람'이다. 영원히 살 것처럼 집착과 욕심에 빠져 허둥대지만 머잖아 이승의 시간과 이별한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신검 수준은 아니라고 자위한다. 그러나 상식적 삶이 곧 인간적 삶은 아니다.
김규원 시 '구두점 활용법'은 훌륭한 교훈을 준다. 시인은 "소설 같은 인생구절/ 굽이굽이마다/ 쉼표면 될 것을/ 마침표를 찍지 말게"라고 말한다. 다음 행은 "마음 통한 친구지간/ 중간점 두지 말고/ 서로 좋은 일에/ 느낌표를 안아 주게"이다.
이형기의 '낙화'도 가슴 깊은 울림을 준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신검도 견훤도 선통제도 자신이 언제 그만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이 모자랐다. 그들은 하나같이 쉼표가 필요할 때 마침표를 찍었고, 마침표를 써야 할 때 쉼표를 사용했다. 잘못된 문장 부호 사용은 의사소통을 막고 그 결과 문제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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