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평범함 속에서 본 비범함…안도현 시집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

  • 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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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1-27 16:19  |  발행일 2025-11-27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안도현 지음/문학동네/180쪽/1만2천원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안도현 지음/문학동네/180쪽/1만2천원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에게 묻는다) 행으로 잘 알려진 안도현 시인이 열두 번째 시집을 펴냈다.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문학동네)다. 시집 제목은 그의 시 세계를 잘 보여주는 문장이기도 하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평범함 속의 비범함, 비속함 속의 고귀함을 자유자재로 부려놓는다. 주변 무의미해 보이는 것들에서 진정한 가치를 찾아내고 삶의 아름다움을 비춘다.


'꽃밭에 들어가 돌을 골라내고 있는데 동무가 왔다/ 꽃밭을 높여보려고 한다니까/ 시인은 원래 이렇게 쓸데없는 일 하는 사람인가, 하고 물었다/ 꽃들의 키를 높이는 일, 그거/ 쓸데없는 일이지, 혼자 중얼거렸다/ 서리 오기 전에 배추나 서둘러 뽑으라 하였다'. ('꽃밭을 한 뼘쯤 돋우는 일을' 중에서)


시집은 고향에서 마주한 질박한 삶의 풍경, 만날 수는 없지만 그릴 수는 있는 어머니와 북, 매번 처음인 듯 인사를 건네는 계절, 시민과 시인을 넘나드는 고뇌의 순간들이 주를 이룬다. 시인은 "시라는 어떤 규격 속에 언어를 욱여넣지 말자, 언어가 가리키는 대로 따라가보자는 심사"로 시를 썼다고 밝혔다. 이번에 실린 시들을 쓰는 동안 시인은 전북 전주에서 고향인 경북 예천으로 돌아오고, 팬데믹을 겪고, 어머니를 여의고, 대학에서 교수직을 내려놨다. 이후 텃밭을 가꾸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등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보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이 들렸다. 시인이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을 들여다보게 된 배경이다.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는 고향 경북 예천으로 돌아온 안도현 시인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쓴 시들이 담겼다. 사진은 예천 용문면의 한 마을 풍경. <게티이미지뱅크>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는 고향 경북 예천으로 돌아온 안도현 시인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쓴 시들이 담겼다. 사진은 예천 용문면의 한 마을 풍경. <게티이미지뱅크>

1부 '자꾸 물어도 좋은 질문'에서 시인은 절제된 감정으로 어머니를 떠올린다. 그러면서도 꽃은 피고 눈이 내리는 자연의 안부를 담았다. "별안간의 이별과 망각의 농도를 예측하면서"(모래무덤) "가늘고 연약한 것들을 위해"(순간 정) "백지 위에 한 줄을"(연민) 쓴다. 그러다 "쓸모없는 걱정을 하다가 가장 쓸모없는 일이 가장 귀한 일이라는 생각도"(흰목물떼새) 하는 맑은 슬픔의 순간들을 모았다. 2부 '꽃들의 키를 높이는 일, 그거'에서는 고향 예천에서의 생활 시편들이 이어진다. 시인은 그곳에서 닭을 키우고, 풀을 뽑고, 장에 나가 열무씨를 산다. "책에 밑줄 긋는 일보다는/ 풀 뽑는 일이 천배 만배나 성스러워서/ 나는 이놈의 풀을 퍼낼 바가지가 어디 없나 두리번거리는 중"(풀 뽑는 사람)이라지만, 이곳에서도 시가 도사리고 있어 쓰는 일은 멈출 수 없다.


'풀 한 움큼을 들고 서서/ 거름더미로 가져갈까/ 모아서 닭장에다 던져줄까/ 잠시 망설였죠/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 감추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며 살았죠/ 손톱이 없는 손가락으로/ 기타를 치고 밥을 먹었고요'. ('손톱' 중에서)


3부 '겨울은 길고 가창오리떼는 단순하지 않다'에서는 이제는 갈 수 없는 곳으로의 시간 여행을 떠난다. '물음과 묻음' 사이를 왕복하며 "꿈의 해변에서, 곱아서 오그라든 손을 펴서/ 눈발처럼 길게"(죽변항) 써내려간다. 4부 '자작나무들은 먼 북쪽을 가리켰다'에선 시인-시민으로서의 그의 진면모를 엿볼 수 있다. 쓸데없어 눈부신 우리 삶의 지문이, 무연하고도 무심하게 피어 있는 들꽃처럼 시의 길목마다 자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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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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