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3세 아동이 태블릿PC로 미디어 시청을 하고 있다. 김지혜 기자
만 4세 자녀를 둔 B(여·35·대구 만촌동)씨는 올초 학습지 회사와 3년 약정을 맺고, 패드를 활용한 한글·영어·독서 수업을 시작했다. 아이가 흥미를 갖고 주도적으로 학습하길 바랐다. 실제 아이는 수업을 재미있어 하지만, 미디어를 좀 과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에 우려감도 함께 커졌다. 아이가 손에서 미디어 기기를 당최 놓으려 하지 않으면서다.
식당을 찾은 가정 중 열의 아홉이 자녀에게 스마트폰·태블릿PC로 동영상을 보면서 밥을 먹게 한다. 병원·카페·버스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스마트폰을 쥔 아이들 모습도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영유아 미디어 시청은 개별 가정의 선택 차원을 넘어 이미 사회적 현상이 되고 있다. '과의존' 양상이 뚜렷하다.
영유아(0~5세) 미디어 의존 현상은 단순히 부모의 선택 문제가 아니다. 지역·사회 시스템 전반과 연결돼 있다. 맞벌이 가정 증가, 돌봄 공백, 공공 돌봄 인프라 부족 속에서 스마트폰 등 미디어가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필수 도구'처럼 자리잡고 있다.
◆ 자녀에게 영상 보여주는 이유? "통제하려고"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스마트폰이 '부정적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손에 계속 쥐여주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자녀들의 활동을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유아동 자녀를 둔 학부모를 대상으로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를 했다. 그 결과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상황 1순위로 '공공장소에서 자녀를 통제하기 위해'(42.7%)가 꼽혔다. 이어 '부모의 가사·직업활동 시간 확보'(29.4%), '교육·학습 수단'(15.2%), '식사·잠재우기 보조'(10.2%), '떼를 쓸 때'(2.4%) 순으로 나타났다. 사회·환경적 요인 속에서 부모들이 스마트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자녀의 스마트폰 과의존 주요 원인 1순위는 '맞벌이 증가 등으로 인한 훈육시간 부족(36.7%)'이었다. 맞벌이 가정일수록 스마트폰 과의존 성향이 높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이다. '자녀의 스마트폰 이용과 관련해 훈육방법을 잘 몰라서'(32.8%), '부모의 편의에 의한 스마트폰 사용 방임'(17.1%), '스마트폰을 대체할 다른 놀이 환경의 부족'(13.4%)이 그 뒤를 이었다.
◆ 돌봄 인프라 한계도 한 몫
지난 12일 오후 5시쯤 한 어린이집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신발. 김지혜 기자
부족한 돌봄 인프라 한계도 '미디어 의존'을 부추기고 있다. 맞벌이 가정은 더욱 심각하다. 스마트폰 등 미디어가 양육을 대신하는 상황이 돼버린 현실 속에 '미디어 양육'을 피하려면 사교육 시설에 뺑뺑이를 돌릴 수 밖에 없다.
만 5세 남아를 키우는 워킹맘 C(여·38·대구 효목동)씨는 최근 이직으로 어린이집 하원 때에 퇴근 시간을 맞출 수 없게 되자, 직장 근처 사설학원을 물색 중이다. 퇴근 시간까지 아이를 맡아줄 친인척이 있지만 미디어 노출 외에는 아이가 할 만한 것이 없다. 아이를 맡아달라고 부탁하는 처지에 미디어를 보여주지 말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C씨는 "연장보육반 운영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어도 오후 6시30분이면 대부분 하원하기 때문에 오후 7시 넘어서까지 우리 아이만 남겨두자니 눈치가 보일 수 밖에 없다. 2주째 할머니집에 보내보니 TV나 태블릿을 보는 것 외에는 없어 고육지책으로 태권도학원을 택했다"고 말했다.
대구의 보육환경만 놓고 봐도 그 구조적 원인은 더 명확히 드러난다. 대구의 보육시설 수 자체가 전국 평균보다 부족하다. 보육시설은 '영유아보육법'에 따라 0~5세 영유아를 대상으로 보호·교육·급식·건강관리 등을 제공하는 시설(어린이집 등)이다.
2024년 유아 천명당 보육시설수 표 <국가통계포털>
지난해말 기준 대구지역 어린이집은 1천35개, 주민등록 0~5세 영유아는 6만9천171명으로, 유아 1천명당 보육시설 수는 15개다. 전국 평균(17.3개)에도 못 미친다. 17개 시·도 가운데 세종(14.9개) 다음으로 적다. 보육시설 1곳이 담당해야 하는 대구지역 만 4세 이하 영유아 수(39.78명)도 세종(43.69명), 인천(41.52명) 다음으로 많다.
보육시설 1개당 만 4세 이하 인구 수(명)
올해 6월 기준 대구지역 전체 어린이집 993개 가운데 연장보육반(오후 4~7시) 운영 어린이집은 898개(90.4%)가 운영 중이다. 하지만 오후 7시 이후 아이를 돌봐주는 야간연장 어린이집은 190개(19%)가 고작이다. 이같은 돌봄 인프라의 한계는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학교생활 만족도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대구지역 재학생이 응답한 학교생활 '매우 만족' 비율은 13.4%로 전국 평균(22.2%)보다 8.8%포인트나 낮았다. 전국에서 가장 낮다. 전국 최고 수준인 울산(32.8%)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난다.
◆ 전문가들 "영유아기 미디어 노출은 백해무익"
영유아기 미디어 노출은 언제부터가 적당할까. 세계보건기구(WHO)는 만 2세 미만 아기는 TV·스마트폰·태블릿에 접하는 것을 피할 것을 권고한다.
영유아 시기때 과도한 미디어 노출 탓에 언어·집중력·사회성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영유아기 뇌 발달 특성상 강한 시청각 자극에만 반복 노출되면 △감정조절 저하△주의 산만 △가짜집중 △언어지연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
계명대 김은혜 교수(유아교육학과)는 "연령별 노출 제한 기준이 명확한 해외와 달리 국내는 법령이나 지침이 부족하다. 영유아기는 감각 경험을 통해 두뇌가 빠르게 발달하는 시기여서 만 2세 이하 시기에는 아예 노출을 차단해야 한다"며 "미디어 노출이 불가피하다면 단순히 화면을 틀어만 주는 게 아니라 양질의 콘텐츠를 선별해 부모가 함께 시청하고 상호작용해야 한다. 시청 시간은 하루 30분 이내 시간을 제한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영유아들에 잦은 미디어 노출 시 따르는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도록 하기 위한 부모 교육이 동반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대구보건대 고은미(유아교육학과) 교수는 "미디어가 제공하는 정보가 제한적이고 깊은 사고를 하게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영유아기 미디어 노출이 굉장히 위험하지만 부모들이 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영유아기 미디어 노출 시 초등학교 입학 직후 심각한 학업적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고 했다.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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