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형식 거리활동가
한 해 마감과 새해의 시작을 알리던 제야의 종 타종 행사. 대구의 밤은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서 울려 퍼지는 달구벌대종의 장엄한 울림으로 매년 가득 채워진다. 하지만 기억을 조금만 더듬어 보면, 1998년 달구벌대종 건립 전 우리 시민들이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해를 맞이하던 곳은 따로 있었다. 바로 중구 포정동의 경상감영공원이다.
경상감영의 종각에서 제야의 종 타종 행사가 시작되면 대구시장의 신년 인사로 시작해 다양한 축하공연이 이루어졌다. 인근 도심 한복판은 새해 희망을 나누려는 인파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비록 타종 장소는 세월을 따라 옮겨갔으나 그 울림의 뿌리는 여전히 그곳에 스며들어 있다.
경상감영공원은 대구 정체성이 시작된 역사적 성지다. 1601년 안동에 있던 경상감영이 대구로 옮겨오면서 이곳은 경상도 전체의 정치와 행정, 군사를 아우르는 명실상부 영남의 심장부로 자리매김했다. 관찰사의 집무실 선화당과 처소였던 징청각은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며 영남의 중심이었던 대구의 위상을 증명하고 있다.
대한제국 시기 광무개혁에 따라 경상북도 도청으로 개칭된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쳐 1965년까지 근대 대구 행정의 중추적인 거점으로 자리했다. 이후 도청이 산격동으로 이전하며 1970년 중앙공원으로 시민에게 개방되었고 도심 속 소중한 녹지 공간이자 어르신들의 쉼터로 사랑받았다. 당시 공원 설계에는 건축가로 활동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세손 이구가 참여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그는 MIT 건축학과를 졸업한 건축가로, 한국 건축계에 독특한 족적을 남겼다.
1997년 대구시는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 명칭을 경상감영공원으로 변경하고 담장을 허물어 시민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현재는 2033년까지 단계적 복원을 추진 중이다. 옛 병무청 부지를 활용해 감영 터를 확보하고, 주요 관아 시설을 복원하며, 달성공원에 있는 정문 관풍루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대장정이다.
복원이 완료되면 경상감영공원은 달성 토성에서 시작해 경상감영을 거쳐 근대 골목으로 이어지는 대구 역사 문화 클러스터의 핵심 거점이 될 것이다. 이곳은 더 이상 과거에 머문 유적이 아니라, 시민들이 역사를 체험하고 문화를 향유하는 살아있는 역사박물관이자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날 것으로 예상된다. 경상감영공원의 복원은 대구 시민의 자부심을 되찾는 일이라 확신한다. 제야의 종소리가 온 도시에 퍼지듯 복원된 경상감영의 풍경이 다시금 대구의 미래를 깨우는 희망의 울림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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