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갑 전 대구시장
문희갑 전 대구시장은 한국 현대 행정사와 지역 정치사에서 굴곡의 역사를 몸으로 통과한 인물이다. 중앙의 경제관료로 출발해 청와대 핵심 참모를 거쳤고, 정당 정치의 한복판을 지나 결국 '대구 출신 대구시장'으로 도시를 이끌었다. 그의 이력은 화려하지만, 그보다 더 뚜렷한 것은 일관되게 유지해 온 문제의식이다. '경제'와 '현실', 그리고 '도시의 지속 가능성'이다.
1937년 대구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인흥마을, 남평문씨 본리세거지에서 태어난 그는 지역과 뿌리의 의미를 몸으로 알고 자란 세대다. 경북고와 국민대 법대를 졸업한 뒤 행정고시에 합격해 경제관료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경제기획원 예산실장, 차관을 거쳐 노태우 정부 시절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냈다.
그의 이름은 한국 경제의 굵직한 갈림길마다 등장한다. 청와대 경제수석 시절 그는 토지 공개념 도입을 주도했다. 택지소유상한제, 개발이익환수제, 토지초과이득세로 대표되는 이 정책은 당시 재벌과 기득권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고, '빨갱이'라는 비난까지 감수해야 했다. 일부 제도는 훗날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았지만,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고 토지의 공공성을 제도화하려 했던 문제의식 자체는 지금까지도 재평가되고 있다. 분당·일산 1기 신도시 조성과 영구임대주택 20만 호 건설, 인천국제공항과 KTX의 기원이 된 정책 설계에도 그의 손길이 닿아 있다.
정치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전국구 국회의원을 지냈고, 대구 서구갑 재선 국회의원으로 의정에 복귀했지만 지역 정치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낙선과 탈당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강하게 각인된 시기는 1995년부터 2002년까지의 대구시장 재임기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그는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다. 중앙 정당의 간판이 아니라 '경제관료'라는 이력과 '대구 출신 시장'이라는 상징성으로 승부를 걸었다. 이후 1998년 재선에 성공하며 7년간 대구 시정을 이끌었다. 그는 스스로를 '경제시장'이라 규정했다. 재임 기간 동안 도심 녹화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며 대구의 도시 풍경을 바꿨다. 쓰레기 매립장은 수목원으로, 도심의 노른자위 땅은 공원으로 바꿨다. 600만 그루가 넘는 나무가 이 시기에 심어졌다. 단순한 미관 개선이 아니라, 폭염 도시 대구의 체질을 바꾸려는 장기적 판단이었다.
대구 도시철도 2호선 착공, 대구공항 국제화, 신천대로 보조 간선 구축 등 인프라 확충도 그의 재임기에 이뤄졌다. 모든 정책이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도시의 구조'를 바꾸려 했다는 점에서 그의 시정은 지금도 평가의 기준으로 남아 있다.
2002년 자금 문제로 법적 처벌을 받으며 그는 정계를 떠났다. 이후 다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았다. 대구에 머물며 지역 원로로서 목소리를 내왔다. 정당과 진영을 가리지 않고 대구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한 인물에게는 공개적으로 조언했고, 때로는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대통령 바꾸는 것만큼 대구시장 바꾸는 일도 중요하다"는 그의 발언은 그 상징적인 사례다.
현재 그는 '푸른대구 가꾸기 시민모임'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여전히 도시의 녹지와 환경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15년 여론조사에서 '역대 대구 민선시장 가운데 일을 가장 잘한 시장' 1위로 꼽힌 것도, 그가 남긴 정책의 체감도가 여전히 시민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문 전 시장은 스스로를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아니지만, 경고할 책임을 지닌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은 때로 불편하다. 그러나 그 불편함은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중앙의 권력과 지역의 현실을 모두 겪어본 인물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궁금했습니다] 문희갑 전 대구시장 인터뷰 "대구는 갈 길을 잃은 도시"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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