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지대] 간재 이덕홍이 묻는다

  • 이향숙 산학연구원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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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1-05 06:00  |  발행일 2026-01-04
이향숙 산학연구원 기획실장

이향숙 산학연구원 기획실장

거북선은 임진왜란 해전의 상징이자 이순신과 함께 기억되는 군선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 배를 '이기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로 인식해왔다. 승리를 이끈 기술과 전술, 그리고 영웅의 이름이 거북선의 이미지를 규정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같은 거북선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인물도 있다. 바로 간재(艮齋) 이덕홍(李德弘, 1541~1596)이다. 16세기 후반 영남 지역에서 활동한 사림 계열의 선비였던 그는, 임진왜란이라는 격변의 시대를 관직과 기록의 자리에서 맞이했다.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이름과 자를 스승에게서 받았다. 경전 해석에 머무르지 않고 삶의 문제로 학문을 이해하려 했던 그는, 스승 사후 '심경질의'를 저술하며 성학을 실천의 문제로 풀어내고자 했다.


임진왜란이 시작되자 간재는 전쟁을 단순한 승패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로 바라보았다. 그는 무기를 만든 기술자도, 해전을 지휘한 장수도 아니었다. 전란 속에서 관직을 수행하며 상황을 기록한 선비였기에, 그의 글은 전투의 결과보다 전쟁이 사회에 남긴 혼란과 그 부담에 더 주목한다.


이러한 인식은 그가 남긴 상소문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임진왜란 초기 왕세자에게 올린 글과, 이후 의주 행재소에서 선조에게 올린 상소에서 그는 왜군의 위협과 조선의 대응을 차분히 정리했다. 대상과 형식은 달랐지만, 전쟁의 원인과 현실, 그리고 대비책을 함께 짚으려는 문제의식은 일관되었다. 전황이 깊어질수록 그의 관심은 영남 지역의 상황과 의병의 역할, 더 나아가 군왕이 감당해야 할 책임으로까지 옮아갔다고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간재가 주목한 것이 귀갑선(龜甲船)이다. 귀갑선은 그의 상소와 기록에 등장하는 명칭으로, 전쟁 상황에서 해상 침투를 막기 위한 대응 구상을 가리킨다. 그는 임진왜란 중 왕세자에게 올린 글에서 이를 하나의 방안으로 제시했고, 이듬해 의주 행재소에 머물던 임금에게 올린 상소에서도 다시 언급하며 비교적 적은 공력으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이 상소에는 귀갑선의 구상을 담은 도면이 함께 언급되기도 한다.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비록 완결된 설계도는 아니지만 거북선의 원형으로 볼 여지가 있는 귀갑선도를 남겼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 도면이 누구를 거쳐 전달되었는지, 혹은 이후 실전에 사용된 거북선과 어떤 직접적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학계에서도 신중한 검토가 이어지고 있다. 다만 거북선이 해전에서 활용되기 시작한 직후, 이를 하나의 유효한 대응 방식으로 인식하고 기록한 선비가 존재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간재의 기록에서 귀갑선은 전과를 과시하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전황에 대응하기 위해 선택된 하나의 방안이었다. 기술의 우수함보다 먼저 고려된 것은 전쟁 속에서 감당해야 할 피해였고, 그 점이 그가 이 배를 바라본 방식이었다.


역사는 흔히 영웅의 이름을 중심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영웅만으로 역사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그 시대를 어떻게 겪고, 어떤 선택으로 대응했는지가 기록으로 남을 때, 기억은 비로소 역사로 이어진다. 거북선의 시대에 이순신이 있었다면, 그 거북선을 전쟁의 맥락 속에서 기록한 인물로는 간재 이덕홍이 있다. 그는 귀갑선을 통해, 영웅의 서사 뒤편에 놓인 전쟁의 현실을 글로 남겼다.


영웅의 뒤를 시대의 언어로 남긴 사람, 간재 이덕홍은 묻는다. 우리는 전쟁을 영웅의 이름으로만 기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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