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덕률의 세상읽기] 새해 1월에 품어본 소망 하나

  • 홍덕률 전 대구대 총장
  • |
  • 입력 2026-01-06 06:00  |  발행일 2026-01-05
홍덕률 전 대구대 총장

홍덕률 전 대구대 총장

# 워싱턴D.C., 브라질리아, 서울


5년 전 오늘, 그러니까 2021년 1월6일이었다. 미국 의회 의사당이 점거됐다. 폭탄도 설치됐다. 선거에 패한 트럼프 지지자들에 의해서였다. '트럼프가 이겼다', 'Stop the Steal'(도둑질, 부정선거를 멈춰라) 등의 피켓과 구호가 의사당을 덮었다. 선거 불복이었고 민주주의에 대한 테러였다. 미국으로서는 매우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로부터 2년 지나 2023년 1월8일이었다. 브라질의 대통령궁과 의회 의사당, 대법원 청사가 점거됐다. 한달 반 전 대선에서 패한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지지자들에 의해서였다.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해 군대 개입을 요구하며 기물을 부수고 난동을 부렸다. 2년 전 미 의회 의사당 폭동과 판박이였다.


우리는 태평양 건너 먼 나라 일로 생각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세워낸 민주주의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순진한 착각이었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불과 2년쯤 지난 2024년 12월3일, 무장한 군인과 헬기가 여의도 국회로 진격한 것이다. 장갑차까지 동원됐다. 국회의장과 야당 대표가 국회 담장을 넘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졌다. 국민은 심한 충격에 빠졌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한달여 지나 2025년 1월6일, 꼭 1년 전 오늘이었다. 공수처가 발부한 윤석열 체포영장의 집행 기한일이었다. 국민의힘 국회의원 45명이 윤석열 관저 앞에 도열해 윤석열 체포 반대를 외친 것도 그날 아침이었다. 결국 경호처의 불법 저항에 막혔고 영장은 집행되지 못했다. 역시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다시 며칠 지나 1월19일 새벽에는 서울 서부지방법원까지 처참하게 유린됐다. 윤석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는 이유였다. 12·3내란에 이은 야만적 폭력에 이땅의 민주주의는 벼랑 끝으로 몰렸고, 국민은 분노했다.


2021년과 2023년, 그리고 2025년, 워싱턴D.C.와 브라질리아, 그리고 서울에서 벌어진 '1월의 비극적 사건들'은 놀라울 만큼 흡사했다. 특히 두 가지 면에서 그랬다. 하나는 '부정선거 음모론'이고 다른 하나는 직간접적으로 현직 대통령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세 사건을 관통하는 본질은 한마디로 '권력자가 음모론과 손잡고 민주주의에 가한 테러', '민주주의 내부로부터의 민주주의 공격'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21세기 많은 나라들이 겪고 있는 민주주의 위기의 공통된 성격이기도 했다.


# 민주주의 재건의 세 과제


세 나라 모두 위험한 고비를 넘긴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놀라운 '회복 탄력성'을 보여주며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고 있다. 세계의 찬사를 받곤 있지만 실은 '급한 불을 끈' 정도로 해석하고 평가해야 한다. 안심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지금 우리는 '짧은 안도와 깊은 불안 사이'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내란을 불러온 제도적 결함과 사회구조적 원인은 여전히 막강한 힘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되돌리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잠시라도 한눈파는 순간 우리의 민주주의는 언제든 쉽게 무너져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란 가담자 처벌이 긴급하고 중요하다. 책임을 묻지 않는 어설픈 통합은 제2, 제3의 내란을 예약해 두는 배반이다. 반민특위의 실패에서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한 역사 문맹일 뿐이다. 미국과 브라질도 헌정질서에 대한 도전을 중대한 범죄로 규정했다. 예컨대 미국은 1천500여명을 기소했고 1천명 이상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중 460여명이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주동자로 확인된 극우단체 리더는 징역 22년형을 선고받았다.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수사와 기소로 기록됐을 정도다.


위기를 이겨내고 취임한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도 작년 1월8일, 폭동 한돌 행사에서 '민주주의를 공격한 이들에게 용서나 사면은 없다'고 천명했다. '쿠데타에 돈을 대고 기획하고 실행한 자들은 모두 처벌된다는 전례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용서나 사면은 잘못이 처벌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하며, 새로운 테러공격의 자유 통행증처럼 보이게 할 것'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기적처럼 고비를 넘긴 우리나라도 이 원칙에서 시작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기초해 있지만,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고 공격하는 행위까지 관용할 수는 없다.


가담자 처벌은 중요한 과제이긴 하지만 거기서 멈추면 안된다. 그것은 민주주의 방어를 위한 최소한이고 민주주의 재건을 향한 첫발일 뿐이다. 당연히 민주주의 체제를 떠받드는 주요 기관과 제도의 개혁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미 기득권이 되어 민주주의 수호의 공적 책무를 방기해 온 사법부, 언론, 교육, 종교 등을 개혁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중요한 과제가 하나 더 있다. 사회경제 개혁이다. 민주주의의 물적 토대를 튼튼하게 보강하는 일이다. 시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해 주지 못할 때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는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다. 일자리 창출, 민생 복원, 양극화 해소를 통해 서민과 청년세대가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1·6 의회 폭동에 책임있는 트럼프가 4년 뒤 다시 취임하게 된 것, 그 뒤 의회 폭도들이 사면되고 민주주의가 전면적으로 퇴행하게 된 것도 실은 사회경제 개혁에 실패한 바이든 정부에 책임이 크다고 해야 한다.


# 청년이 희망 품는 원년이기를


2026년 새해를 맞았다. 나라의 10년, 20년 뒤를 가를 중차대한, 여느 새해와 같을 수 없는 2026년이다. 가벼운 덕담보다는 묵직한 화두를 하나 던져본다. 우리는 과연 민주주의를 다시 세워낼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민주주의는 과연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물론 답은 열려 있다. 결국은 깨어 있는 시민의 역사를 읽어내는 통찰력과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에 달려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내란범 단죄에 머물지 않고 민주주의 제도개혁과 사회경제 개혁까지 밀고 가는, 밝은 미래를 여는 선택에 주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서민과 청년이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 가기 시작하는 2026년이 되기를 바란다. 특히 좌절을 반복하며 불안해하는, 분노하며 극우로까지 퇴행하고 있는 청년 세대가 다시 희망을 이야기하고 사회의 진보를 상상하기 시작하는 원년이기를 기대해 본다. 나아가 민주주의 후퇴로 고통을 겪고 있는 지구촌 시민들에게 '민주주의 재건의 빛'으로 서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