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사 기획국장 범상 스님
존재란 부피를 가짐으로서 어떤 경우에도 같은 공간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세상은 다름과 다름으로 전체라는 하나를 이루고 있다. 눈이 발을 위해 돌부리를 보고 발이 눈을 위해 돌부리를 피하는 게 아니듯 세상은 다름의 조화로 살아간 다는 것이 불교의 수용성이며 다양성이다.
앞선 기고(영남일보 12월25일자 21면)에서 팔공산의 '팔'은 여덟 개가 아니라 사방팔방의 공간적 개념이자 모든 것을 온전히 갖춘 상태를 말한다고 했다. 팔공의 공심은 주군인 고려태조 왕건을 살리기 위해 옷을 바꾸어 입고 대신 전사한 신숭겸 장군의 충이 공심의 극치를 이루었고, 그것을 사방팔방에 자랑할만 하다하여 팔공산이라 부른다고 했다.
팔공산 동화사(桐華寺)는 겨울에 오동나무에서 꽃이 피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때의 겨울은 백성들이 살기 힘든 시기를 말하며, 오동나무는 태평성대가 열림을 의미한다. 봉황은 태평성대에만 나타나며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고, 대나무 열매인 죽실(竹實)만 먹는다는 고사에서 동화(桐華)가 나왔다. 수컷은 봉이요 암컷은 황이다. 봉명조양(鳳鳴朝陽)은 암수 봉황이 부르는 노래처럼 백성, 신하, 군주가 서로 존중하고 조화를 이루는 세상인 태평성대가 열림을 뜻한다. 태평성대는 하늘이 군주에게 내린 책무라는 게 전통적 정서이다. 그래서 봉황은 과거에는 임금을 현재는 대통령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사용된다.
팔공산 최고봉인 비로봉이라는 이름은 불교의 영향을 받았고, 동화사라는 사명은 태평성대를 바라는 이 땅 민초들의 염원을 받들었다. 이 같은 문화적수용과 상생역시 태평성대의 요건이다. 그래서 팔공이라는 충의 공심이 일체중생을 섭수하는 동화의 도량에서 실현됨으로 민중이 원하는 태평성대는 불교가 이 땅, 사바세계에 건설하려는 당생극락과 맞닿게 된다.
그래서 동화사는 팔공산과 더불어 태평성대를 열어가는 중추가 되어왔다. 고려 태조 왕건이 공산전투에서 대패하였지만, 앞산의 은적사, 임휴사로 이어지며 후삼국의 패권경쟁을 끝냄으로서 태평성대를 열었고, 임진왜란에서 동화사 봉서루는 사명대사의 영남 승군의 본부였으며, 지금도 영남치영아문(嶺南緇營牙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이후 3·1운동이 일어나자 그해 3월28일 영남 지방학림에서 공부하시던 스님들과 학생들이 동화사 심검당에 모여 독립운동을 결의하였다. 다음날 29일 대구 시내 동화사 포교당인 보현사에서 태극기를 재작하였고, 30일 덕산정(염매장)에서 앞서 있었던 8일, 10일 만세운동에 이어 대규모 시위를 주도하였다.
지금도 대한민국의 건국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 헌법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었음을 명시하고 있다. 여기에 안타까운 것은 대한민국의 수립이 독립운동에 목숨 바친 민족의 입장이 아니라 미국의 극동지배전략에 의해 이루어 졌다는 것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기독교 경전에 손을 올리고 대통령 선서를 한 것에서 보듯이 대한민국의 수립은 기독교정신이 바탕이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가운데 동화사, 범어사 등 전국 사찰에서 일어났던 3·1운동은 묻히게 되었고, 1990년 김문옥을 시작으로 1992년 이기윤 등 동화사 승려 7명의 독립운동 공적이 밝혀져 훈장을 받았다.
이처럼 동화사는 국가 위기 때 마다 호국애민의 중심이 되었고, 지금도 대한민국 독립의 완성인 통일을 기원하는 통일대불을 모시고 겨울에 꽃을 피운 동화의 의미와 염원을 이어가고 있다.
범상 스님 <동화사 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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