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서구청이 아동보호구역으로 지정한 꼼지락공원에 설치된 표지판 모습. 영남일보DB
"공원에 아동보호구역 표지판이 붙어 있는 건 봤죠. 그런데 애들이 공원에서만 노나요? 진짜 위험한 건 학교 정문 앞 좁은 골목길이랑 불법 주차된 차들 사이로 튀어나오는 등하굣길이에요."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이태란(42·대구 수성구 두산동)씨의 말이다. 대구 시내 아동보호구역이 정작 아이들이 매일 오가는 학교보다 이미 시설이 갖춰진 공원에 몰려 있어, 실효성 없는 '보여주기식 행정'이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CCTV 있는 곳만 지정'... 주객전도된 안전 대책
6일 영남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10월말 기준 대구의 아동보호구역은 총 32곳이다. 이 중 공원이 24곳으로 전체의 75%를 차지했다. 반면 아이들이 가장 밀집하는 초등학교는 6곳, 어린이집은 2곳에 불과했다.
이 같은 '쏠림 현상'의 원인은 다름 아닌 CCTV에 있다. 현행법상 아동보호구역으로 지정하려면 반드시 CCTV를 설치해야 한다. 지자체들이 예산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이미 CCTV 인프라가 갖춰진 도심 공원을 우선 선택한 것이다.
시민 김태랑(38·대구 달서구 감삼동)씨는 "아이들 동선을 고려한 게 아니라, 나라 돈 쓰기 편한 곳 위주로 지정한 것 아니냐"며 "귀한 자녀 안전을 외치면서 정작 행정은 편의주의에 매몰된 느낌"이라고 꼬집었다.
▲변화의 실마리... "예산 지원과 학교 요청이 관건"
다행히 올해부턴 변화의 조짐이 감지된다. 행정안전부의 '안심구역 조성사업'을 통해 CCTV 설치 예산이 지원되면서 지자체의 숨통이 트였기 때문이다.
실제 수성구청은 올 상반기 중 삼육·범일 초등학교 일대를 아동보호구역으로 신규 지정할 계획이다. 수성구청은 "그간 학교는 유관기관 협의 등 절차가 까다로웠지만, 최근 정부 대책 발표 이후 학교 측의 적극적인 요청이 접수돼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표지판보다 중요한 건 실질적 환경 개선"
전문가들은 아동보호구역 지정 구역 확대와 함께 '질적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구한의대 박동균 교수(경찰행정학과)는 "경찰 순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학부모 자율방범 활동을 제도적으로 연계하고, 특히 차도와 보도가 분리되지 않은 위험한 통학로 환경을 먼저 뜯어고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민 최필모(55·동구 지묘동)씨도 "아동보호구역이라고 이름만 붙일 게 아니라, 아이들이 등·하교하는 시간엔 인력을 배치하거나 불법 주·정차를 강력히 단속하는 등 피부에 와닿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요즘 같은 저출생 시대에 '금쪽같은 자녀'들의 안전 수요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단순한 수치 채우기식 행정을 넘어 아이들의 발걸음을 직접 따라가는 세심한 정책 설계가 절실해 보인다.
최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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