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박성훈 의원(국민의힘)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12월 한은으로부터 5조원을 일시 차입했다. 지난해 전체 차입 규모는 164조5천억원으로 역대 두 번째 수준이다. 이에 따른 이자만 1천580억원이 넘는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예산이 없어, 각 군과 방위사업체에 지급했어야 할 국방비 1조3천억원을 연말까지 집행하지 못했다.
세입과 세출의 시차 때문에 정부가 한은의 일시 차입 제도를 활용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한은 차입은 예외적인 수단이어야지, 상시적인 방법이어서는 안된다. 이자 부담은 늘고 재정의 투명성은 훼손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부담은 결국 국민에게 돌아온다. 그만큼 한은 급전은 소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도 국방비 미지급이라는 일이 벌어졌다. 국방비는 선택적 지출이 아니라 국가 존립을 떠받치는 필수 비용이다. 재정 운영의 우선순위가 얼마나 흐트러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당 태도 또한 문제다. 여당은 야당 시절 한은 일시 차입을 두고 '곳간이 비었다는 증거', '무책임한 재정 운용'이라며 맹비난해 왔다. 그러나 집권 후의 차입 규모는 역대 두 번째로 크고, 국방비 미지급이라는 어이없는 상황도 발생했다. 야당 때 비판하던 정책을 집권 후에 반복하는 것은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정부가 올해 확장 재정 기조 예산을 편성한 만큼 세입과 세출의 시차가 커질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재정의 원칙과 책임 그리고 국가 존립을 떠받치는 필수 지출부터 지켜내는 것이 정부 예산 운용의 출발점임을 다시 새겨야 한다. 동시에 예산 집행의 우선 순위가 시대변화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 지도 이번 기회에 점검할 필요가 있다.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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