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옥상, 나의 공간

  • 장수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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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1-12 06:00  |  발행일 2026-01-12
장수영 수필가

장수영 수필가

주택 옥상에는 마당 외에 또 다른 마당이 있다. 집을 지을 때부터 태양열 구조물이 떡하니 차지하고 있던 그곳은 내게 늘 애물단지였다. 남편은 경제성을 따졌지만, 자주 고장을 일으켜 성가시게 하기도 했다. 그 커다란 쇳덩이는 내가 즐겨야 할 공간을 한쪽으로 밀어내니 남편에게 애먼 잔소리를 해댔다. 그러다 수명을 다한 구조물을 걷어내던 날, 마치 앞산 하나가 사라진 듯 가슴이 뻥 뚫리는 해방감을 맛보았다.


비워진 옥상은 비로소 온전한 내 공간이 되었다. 화분 하나 두지 않은 맑간 바닥에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닿을 때면 밤이 이슥하도록 그곳을 서성이곤 했다. 비가 내리는 날엔 촉촉이 젖어가는 이웃집들의 낮은 지붕을 내려다보고, 밤이면 하루하루 살을 찌워가는 달의 변화를 지켜보기도 한다. 눈이라도 내리면 하얀 눈 위에 발자국을 먼저 내고 싶은 욕심에 이른 아침 옥상에 오른 적도 있었다. 겨울 정오의 햇살이 따사로운 날에는 이불을 널고 된장독 뚜껑을 열어두고 싶은 마음이 동한다. 이 모든 소소한 풍경이 옥상이 내게 주는 즐거움이다.


올해는 옥상 마당에 겨울을 나기 위한 저장식품들이 자리를 잡았다. 빨랫줄에는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며 걸린 빨래가, 그 옆자리에는 호박을 길게 썰어 고지를 만들고 있다. 바닥에는 며칠째 햇살과 바람에 무를 말리는 중이다. 아침이면 펼치고 저녁에는 들이는 수고로움도 고들고들해지는 무말랭이를 보는 기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엊그제, 바람이 소쿠리를 통째로 엎어버렸다. 노루 꼬리만큼 짧은 겨울 햇살 아래, 흩어진 무 조각들을 쪼그리고 앉아 하나하나 주웠다. 통통했던 무가 수문을 내 주며 시나브로 말라가듯, 나 역시 흩어진 마음을 주워 담으며 인내를 배운다. 내게는 이 시간이 곧 도(道)를 닦는 시간이다.


도 닦는 시간이 어디 무말랭이를 줍는 일뿐일까. 부모와 자식 간의 불협화음이 이어질 때면 엎질러진 소쿠리처럼 엎어버리고 싶은 순간이 왜 없었겠는가. 그럴 때도 나는 옥상에 올라 바람을 쐬고 침을 삼키며 마음을 누른다. 무가 햇살과 바람을 견뎌내어 고들고들해지듯, 내 삶도 그렇게 익어가길 바란다. 훗날,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 같을지라도, 옥상에 올라 심호흡 크게 한 번 하고, 눈 한 번 딱 감고 삼키는 여유를 가지는 어른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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