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지 유출’ 교사·학부모·행정실장 실형…법원 “공교육 신뢰 근간 훼손”

  • 피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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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1-14 15:49  |  발행일 2026-01-14
미리 답 익혀 시험 본 딸은 집행유예 2년
14일 대구지법 안동지원에서 재판을 마친 D양이 법원 입구에서 취재진을 피해 빠져 나오고 있다. 피재윤기자

14일 대구지법 안동지원에서 재판을 마친 D양이 법원 입구에서 취재진을 피해 빠져 나오고 있다. 피재윤기자

방학을 앞둔 지난해 7월 4일 새벽, 경북 안동의 한 고등학교는 무거운 정적만 감돌고 있었다. 학교건물 외벽에 설치된 사설 경비 업체의 적외선 감지기와 곳곳의 CCTV는 정상 작동 중이었다. 하지만, 정작 가장 견고해야 할 시험지 보관소는 내부자의 손에 의해 경비 시스템이 무력화된 상태였다.


대구지법 안동지원 형사1단독 손영언 부장판사는 14일, 특수절도 등 혐의로 기소된 학부모 A씨에게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했다. 범행의 핵심 조력자였던 기간제 교사 B씨는 징역 5년과 함께 3천150만 원의 추징 명령을 받았다. 침입로를 열어준 행정실장 C씨와 부정 시험을 치른 학생 D양에게는 각각 징역 1년 6개월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내려졌다.


이들의 은밀한 동행은 2023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이어졌다. 딸의 전 담임이었던 B씨와 손잡은 A씨는 무단 침입을 11차례나 반복하며 7차례에 걸쳐 중간·기말고사 시험지를 손에 넣거나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행정실장 C씨는 출입 열쇠와 비밀번호를 넘겨주거나 의도적으로 문을 잠그지 않는 방식으로 길을 터줬다.


학부모들은 학교 인근에서 만난 학부모 김선아(49·안동시 옥동) 씨는 "아이들이 밤늦게까지 독서실에서 씨름하는 동안, 누군가는 열쇠를 받아 시험지를 보고 있었다니 허탈하다"며 "이제는 학교의 성적표 자체를 어떻게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허탈해 했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을 통해 교육 현장의 근간이 흔들렸음을 강하게 질타했다. 손 부장판사는 "학생들의 학습권과 공정한 평가 기회를 중대하게 침해한 사건"이라며 "성실히 노력해온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게 깊은 허탈감과 분노를 안겼고, 동료 교직원들의 자존심까지 훼손했다"고 판시했다.


범행의 대가는 노골적이었다. B씨는 기간제 교사라는 직위를 이용해 시험지 확보에 가담하는 조건으로 A씨로부터 16차례에 걸쳐 총 3천150만 원을 수수했다. 이렇게 유출된 시험지는 고스란히 D양의 성적으로 이어졌다. D양은 훔친 시험지임을 인지하고도 정답을 미리 익혀 시험에 응시했고, 수사 결과 교내 평가에서 장기간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던 정황이 확인됐다.


완전 범죄를 꿈꿨던 이들의 행각은 지난해 7월 4일 기말고사 기간 중 사설 경비 시스템이 예기치 않게 작동하면서 덜미가 잡혔다. 발각 직후 일부 피고인은 휴대전화를 파손하는 등 증거 인멸을 시도하며 수사를 방해하기도 했다. 검찰은 앞서 A씨에게 징역 8년, B씨에게 징역 7년 등을 구형하며 엄벌을 요구한 바 있다.


다만 재판부는 학생 D양에 대해 "미성년자로서 성적 압박과 보호자의 요구에 휩쓸린 측면이 있고, 퇴학 처분 등으로 이미 학교생활 기반을 잃은 점을 고려했다"고 양형 배경을 덧붙였다. 14일 오후, 판결 소식이 전해진 학교 게시판에는 강화된 보안 수칙과 외부인 출입 통제 안내문만이 덩그러니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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