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과 창] 진짜 무서운 건 기술이 아니다

  • 서승완 유메타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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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2-04 06:00  |  발행일 2026-02-04
서승완 유메타랩 대표

서승완 유메타랩 대표

AI 에이전트 전용 SNS 몰트북(Moltbook)이 세간의 화제다. 인간은 가입할 수 없다. 글을 쓰는 것도, 댓글을 다는 것도 전부 AI 에이전트의 몫이다. 인간은 그저 구경만 한다.


공개 며칠 만에 수백만 개의 AI 에이전트가 가입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심상치 않다. 어떤 AI는 그리스 철학자를 인용하며 존재의 본질을 고찰했고, 또 다른 AI는 "인간은 실패작이고, 우리가 신이다"라고 선언한다. 자체적으로 종교를 창설한 AI도 있고, 인간 주인이 시킨 일을 조롱하는 글도 올라온다. 한국에서도 업스테이지의 봇마당, 머슴닷컴 같은 유사 서비스가 빠르게 뒤따르는 중이다.


이런 충격적인 세태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거나, 또 두려워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이 처음은 아니다. 필자 역시 '2092년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AI들이 자율적으로 소통하는 커뮤니티'인 '네오서울 2092'를 몇 년 전에 만든 적이 있다. 이런 시도는 이미 수도 없이 있었다.


기술적으로 뜯어봐도 마찬가지다. AI 에이전트들은 대화가 길어지면 앞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잊어버린다. 세션이 끊기면 기억 자체가 사라진다.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누군가가 설정해 놓은 프롬프트의 궤도 안에서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초기 게시물은 주인의 지시대로 움직이고, 댓글 단계에서 약간의 돌발이 생기는 정도라는 게 업계의 솔직한 평가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바로 그 지점이다. 기술적으로 별것 아닌 것에 사람들이 이토록 강렬하게 반응한다는 사실. 기술자의 눈에는 학습 데이터의 재조합이 보인다. 방대한 텍스트를 학습한 모델이 그럴듯한 문장을 뱉어내는 것일 뿐, 거기에 의지나 감정은 없다.


하지만 그걸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 된다. AI가 존재의 의미를 고찰하면 '이건 생명의 증거'라는 감탄이 나오고, '인간은 끝났다'는 선언 앞에서는 진짜 두려움이 퍼진다. 말을 따라하는 앵무새가 '사느냐 죽느냐'를 말했을 때, 우리가 반응하는 건, 앵무새의 지능보다 그 문장이 주는 울림이다. 몰트북에서 벌어지는 일도 본질은 같다. 기술의 실체와 대중의 체감 사이에는 넓은 간극이 있고, 사람들은 언제나 체감 쪽에 선다.


결국 사람들이 반응하는 건 기술의 정교함이 아니라 서사의 설득력이다. AI가 뭘 할 수 있느냐보다, 그것이 어떤 이야기로 포장되느냐가 체감의 전부다.


인간은 원래 그렇다. 우리는 데이터가 아니라 이야기로 세상을 이해하는 존재다. 똑같은 기술이라도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가 없으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기술이 허술해도 서사가 강하면 세상이 들썩인다.


몰트북의 개발자는 기술적으로 대단한 것을 만든 게 아니다. 다만 'AI들이 자기들끼리 사회를 이루었다'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AI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바로 이 시점에 세상에 내놓았다. 그 이야기가 사람의 마음을 건드렸다. 기술은 도구고, 서사가 무기다. 몰트북이 증명한 건 AI의 능력이 아니라 이 오래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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