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최근 제68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 삽입곡 '골든'의 작곡자들이 '베스트 송 리튼 포 비주얼 미디어'(최우수 영상물 삽입곡상)을 받았다. '골든'의 작곡자들은 전원 한국계이거나 한국인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이재명 대통령이 SNS에 "케이팝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모든 음악인이 꿈꾸는 세계 최고 권위의 무대에서 이뤄낸 값진 성과에 뜨거운 축하를 전한다"라고 올렸다.
역사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대통령까지 나서서 축하한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글로벌 장르(케이팝)의 오랜 갈증을 마침내 해소했다"고 썼고, 헐리우드 리포터는 "이번 수상은 미국 시장에서 케이팝의 위상을 드높이는 승리"라고 썼다.
그동안 한국인으로는 소프라노 조수미, 첼리스트 김기현, 음반 엔지니어인 황병준 사운드미러코리아 대표 등이 그래미상을 받았으나 케이팝 장르는 엄청난 인기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그래미상을 받지 못했었다. 이번 수상은 케이팝의 그래미 최초 수상이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크다.
그래미상은 빌보드 음악상, 아메리칸 음악상, MTV 비디오 음악상과 더불어 미국 4대 대중 음악상으로 꼽히기도 하지만, 다른 3개에 비해 그래미의 위상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야말로 미국 대중음악계를 대표하는 시상식인데, 미국 대중음악이 세계 대중음악을 선도하므로 미국 대중음악 최고는 곧 세계 대중음악계 최고 시상식이라는 의미다. 영화의 아카데미상(오스카), 시리즈물의 에미상, 공연의 토니상과 더불어 미국의 4대 대중문화상으로도 꼽힌다.
이 중에서 아카데미, 에미, 토니상은 한국인이 모두 받았는데 그래미 주요상만은 철옹성으로 남았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한국인 그래미 수상자들이 있긴 했지만, 그래미의 핵심인 대중음악 뮤지션들이 아니었다. 이번에 처음으로 한국의 대중음악 뮤지션들이 그래미상 수상자 명단에 진입했다. 미국 4대 대중문화 시상식에서 모두 수상한 이를 'EGOT'(Emmy·Grammy·Oscar·Tony의 머리글자)이라 부르는데 한국이 국가 차원에선 EGOT 대열에 오른 셈이다.
한국 대중음악인의 그래미 수상이 어려운 것은 그래미가 미국 시상식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강고한 보수성, 배타성도 원인이다. 그래미는 과거부터 미국 주류 사회만을 반영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또, 음악적으로도 보수적이어서 10대들이 열광하는 트렌드를 잘 반영하지 않는다. 케이팝은 아시아인들이 하는 10대 선호 아이돌 음악이니만큼 그래미상하고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케이팝 뮤지션 중에 스스로 음악을 창작하는 아티스트가 적은 것도 그래미가 케이팝을 경시하는 이유다.
그래서인지 미국을 비롯 전 세계에서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방탄소년단조차 그래미상을 받지 못했는데 이번에 마침내 장벽을 허문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완전히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그래미상은 많은 부문 중에서 중요한 상만 본 시상식에서 시상한다. 이번에 케이팝이 받은 상은 본 시상식이 아닌 사전행사 때 시상됐다. 당초 뉴욕타임스, 버라이어티 등이 '골든'을 대상격인 '올해의 노래' 수상자로 예상했었는데, 사전행사로 밀려난 것이다. 로제의 '아파트'는 MTV 비디오 음악상 대상 수상작임에도 그래미에서 일개 부문상조차 받지 못했다. 그래미의 케이팝 홀대는 여전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번 사전행사 수상으로 물꼬를 텄고, 그래미는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다음 시상식 때는 케이팝의 더 큰 성과가 기대된다. 특히 올해엔 방탄소년단 복귀가 예정돼 더욱 기대가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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