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 시대정신의 보고를 찾아서 2]한적한 마을을 품은 독립운동가 이승희 선생 생가

  • 김현목
  • |
  • 입력 2026-02-05 17:03  |  발행일 2026-02-05
조용한 풍경 속에서 어울려진 독립운동의 출발
국가현충시설로 지정된 이승희 선생 생가
생가 찾아가는 길 안내 표지판 부재는 아쉬워
성주군 월항면 한개마을에 위치한 독립운동가 이승희 선생 생가. 김현목 기자

성주군 월항면 한개마을에 위치한 독립운동가 이승희 선생 생가. 김현목 기자

성주군 월항면 한개마을에 위치한 독립운동가 이승희 선생 생가.  김현목 기자

성주군 월항면 한개마을에 위치한 독립운동가 이승희 선생 생가. 김현목 기자

성주군 월항면 한개마을에 위치한 이승희 선생 생가 앞에 세워진 안내판. 김현목 기자

성주군 월항면 한개마을에 위치한 이승희 선생 생가 앞에 세워진 안내판. 김현목 기자

경북 성주군 월항면 한개마을. 조선 세종 때 진주목사를 역임한 이우가 입향(入鄕)해 거주하면서 성산 이씨들이 집성촌을 이룬 전통 마을이다. 2007년 국가민속문화재 제255호로 지정된 한개마을은 이후 다수 건물이 경북도 문화재로 각각 등재됐다. 17세기부터 과거 합격자를 비롯해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다. 독립운동가 이승희 선생 생가가 위치한 곳도 이곳이다.


지난달 30일 이 마을을 찾았다. 마을 들머리에 들어서자 고풍스러운 기와집이 한눈에 들어왔다. 넓은 도로를 지나 좁아진 길에 다다르면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든다. 낮은 돌담과 오래된 나무들이 즐비했다. 추운 날씨 탓인지 마을은 고요했다.


이승희 선생 생가는 완만한 오르막길에 있다. 특별한 연출이나 장식 없이 길이 이어졌다. 마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이 선생 생가는 마을 풍경과 잘 어울렸다. 단정한 기와지붕 아래 이어진 목조 구조와 돌담은 세월의 무게를 실감케 했다. 생가 앞에 서니 낮게 쌓인 돌담과 그 위로 펼쳐진 마루가 보인다. 집 마당은 넓지 않지만 정갈했다. 몇 그루 나무와 마른 풀들이 심어져 있다.


생가는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관리되고 있었다. 전시나 인위적인 장치는 없었다. 입구에 설치된 안내판엔 '이승희 생가'라는 제목과 함께 선생의 생애가 빼곡히 정리돼 있다. 이 선생은 대한제국 말기, 국권이 위태로워진 시기에 상소와 계몽 활동을 전개했다. 1895년 을미사변 당시 일제 만행을 규탄하는 포고문을 문인들과 함께 각국 공사관에 보냈다. 그는 1905년 일제가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 국권을 강탈하자 상소를 올려 을사오적 처단과 조약 파기를 주장했다. 이 일로 일제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1907년엔 성주에서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했다. 1908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망명한 뒤 독립운동 기지를 개척, 독립군을 양성할 수 있는 토대를 놓았다. 한인공교회를 창립하는 등 1916년 2월 27일 70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다만 이 선생 생가를 보면 아쉬움이 적잖다. 국가 지정 현충시설이지만 외부엔 안내 표지판이나 유도 체계가 충분하지 않았다. 마을 주민조차도 정확한 위치를 설명해 주지 못했다. 솔직히 기자도 생가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 마을 초입이나 주요 갈림길에 이 선생 생가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장치가 있었으면 했다.


마을을 떠나기 전 만난 주민 A(44)씨는 "이승희 선생도 생소하지만 한개마을에 생가가 있다는 것도 솔직히 몰랐다"며 "독립운동가인 만큼 앞으로 마을 입구부터 안내가 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지역사회가 곱씹어봐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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