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길 3㎞, 600년 시간을 걷다…성주 한개마을 ‘로컬100’이 된 이유

  • 석현철
  • |
  • 입력 2026-02-07 16:11  |  발행일 2026-02-07
관광객들이 한개마을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성주군 제공>

관광객들이 한개마을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성주군 제공>

성주군을 찾은 관광객들이 한개마을 돌담길을 걷고 있다. <성주군 제공>

성주군을 찾은 관광객들이 한개마을 돌담길을 걷고 있다. <성주군 제공>

돌담길 위로 발걸음을 옮기자 기와지붕 사이로 햇살이 내려앉았다. 담장 너머로는 오래된 고택의 처마가 고개를 내밀고, 골목 끝에서는 누군가 천천히 걸어 나온다. 관광지에서 흔히 보이는 '풍경'이 아니라, 여전히 사람이 살아가는 '시간'이 느껴진다. 이곳이 바로 성주 한개마을이다.


지난달 30일 한개 마을이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지역문화매력 100선', 로컬100 2기(2026~2027)에 이름을 올렸다. 국가가 '대한민국을 대표할 지역의 얼굴'로 선택한 공간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마을을 걷고 있으면, '선정됐다'는 말보다 '왜 이제야'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몇 걸음 걷다 보니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담장 너머 마당에는 잡풀이 허리 높이까지 자라 있었고, 기와가 내려앉은 지붕 아래는 인기척이 없었다.


마을 안쪽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빛'과 함께 '그림자'도 또렷하다. 로컬100 선정은 분명 호재다. 하지만 이 사업은 시설 보수 예산을 직접 지원하는 구조가 아니다. 2년간(2026~2027) 문체부의 홍보 채널과 민간 플랫폼을 통해 집중적으로 '알려주는' 브랜딩 지원 사업에 가깝다. 쉽게 말해, 현금이 아니라 확성기를 받은 셈이다.


관건은 하나다. 성주군이 이 확성기를 활용해 얼마나 체류형 콘텐츠를 준비했느냐다. 홍보만 되고, 마을 안에서 '할 일'이 없다면 방문은 오지 않는다. '한번 와보고 마는' 일회성 관광지로 소비될 위험도 있다.


한개마을의 가장 큰 딜레마는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 사이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두 마을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연간 100만 명 이상이 찾는다. 하지만 과잉 관광으로 주민 사생활 침해와 상업화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반면 한개마을은 그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언더투어리즘' 상태다. 조용해서 좋다는 평가는, 바꿔 말하면 관광 파급력이 약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로컬100을 계기로 '북적이는 관광지'를 지향할 것인지, '고즈넉한 쉼터'로 남을 것인지. 이 정체성 설정이 선행되지 않으면, 방향 없는 홍보는 오히려 혼란만 키울 수 있다. 한개마을은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공간이다. 못 하나 박는 것도 허가가 필요할 만큼 보존 규제가 엄격하다. 문제는 '보존'이 '방치'로 이어지는 지점이다.


성주군에 따르면 60여 채 가옥 중 실제 거주자가 없는 빈집이 적지 않고, 고령화로 인해 유지보수 인력도 부족하다. 관리되지 않은 비고택은 잡풀이 무성하고, 일부 기와는 파손된 채 방치돼 있다.


겉으로 보이는 '전통'의 풍경 뒤에, 주민들이 감내하는 불편함이 쌓여 있다. 관광객이 늘어날 경우, 소음과 쓰레기 문제까지 더해진다면 '방문 환영'이라는 말이 오히려 주민 이탈을 부를 수 있다.


한개마을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로컬100 선정은 분명 기회다. 하지만 이 기회가 '사람이 더 떠나는 마을'이 될지, '사람이 다시 머무는 마을'이 될지는 성주군의 선택에 달려 있다.


보존만 강조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이 실제로 살 수 있는 민속마을을 만들 것인가. 돌담은 그대로인데, 사람이 비어가는 마을이 되어서는 안 된다. 로컬100은 한개마을을 전국에 알리는 출발점이지만, 그 이후의 이야기는 성주가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


마을을 빠져나오며 다시 돌담길을 돌아본다. 600년의 시간이 담장 위에 그대로 얹혀 있다. 이번 로컬100 선정은, 그 시간이 이제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게 됐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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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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