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성군에 위치한 달성어린이숲도서관. 공립으로 운영되는 작은 도서관이다.
도시의 풍경을 규정하는 요소는 늘 거대한 건축물, 흔히 말하는 '랜드마크'라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도시를 걷다 보면 요즘의 변화를 설명하는 지표는 오히려 아주 가까운 곳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골목 깊숙한 곳에서 반짝 마주치는 작은 도서관과 다양한 형태의 주민센터, 청소년시설, 어린이 놀이시설들이 골목을 걷는 소소한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다. 특히 도서관의 경우, 주민을 위한 작은 골목도서관부터 어린이도서관, 특정 분야를 향해 깊이를 더해가는 전문도서관까지 규모와 콘텐츠가 다양해지며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그리고 이 작은 공공도서관들이 만들어 내는 일상의 파장은 결코 작지 않다.
작은 도서관은 대개 오래된 공공건축물을 철거하거나 골목의 짜투리 틈새 공간에서 출발한다. 화려한 랜드마크 대신, 일상 속으로 조심스럽게 스며드는 공공성이다. 건축가의 눈으로 보면 이 작은 개입은 도시 조직 속에 생태계처럼 작용한다. 서가가 놓이고 책 읽는 이웃들이 보이는 풍경은 주변의 시간 흐름을 바꿔 놓는다. 아이들의 방과 후 동선이 달라지고, 어른들은 산책의 목적지를 하나 더 갖게 된다. 공공도서관이 도시의 중심에 앉아 있지 않아도, 가까운 생활 반경에서 사람들을 이어주는 것이다.
필자가 설계한 대구 서구의 뉴평리도서관. 마감재는 과도한 반사를 피하고, 외벽의 볼륨은 돌출되기보다 안쪽으로 물러나게 했다.
그러나 골목에 도서관을 둔다는 것은 단순히 '작게 짓는다'는 뜻이 아니다. 좁은 이격 거리, 이웃과 마주보는 창, 빛 반사와 야간 조명까지—공공성과 사생활이 미세하게 충돌하는 지점들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내가 설계한 대구 서구의 뉴평리도서관도 그랬다. 골목도서관의 필요성에는 모두가 공감했지만, 건물이 조금만 과장되어도 이웃의 창문과 시선 충돌이 생기고, 밝은 통창이나 커튼월은 골목 전체를 향한 빛의 간섭이 될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드러내기'보다 '스며들기'를 선택했다. 마감재는 과도한 반사를 피하고, 외벽의 볼륨은 돌출되기보다 안쪽으로 물러나게 했다. 외부 데크 역시 골목을 향해 힘을 주어 내밀기보다 내부로 끌어들이며 완충의 깊이를 만들었다. 투명성을 과시하는 커튼월 대신 반투명 유글라스(U-glass)를 외벽 마감으로 채택했다. 외부 시선을 적절히 걸러내면서도 낮에는 은은한 자연채광이 내부로 퍼지고, 밤에는 실내의 활동이 차분한 실루엣으로 골목에 드러난다. 화려한 파사드 대신 빛의 온도와 투과성으로 소통하는 방식이었다. 이 결정은 도서관을 이웃과 분리된 상징물로 만들지 않고, 그들과 조심스럽게 공존하는 건축으로 남기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도서관은 골목의 주인 행세를 하지 않고, 이웃과 시선을 나누되 침범하지 않는 거리감 위에 놓이게 되었다. 골목 속 작은 도서관은 이렇게, 건축의 태도에서 이미 공공성을 판단받는다.
대구 서구에 위치한 뉴평리도서관 내부.
한편 전문도서관은 또 다른 방식으로 도시를 변화시킨다. 디자인, 음악, 미술, 역사 등 특정 주제에 집중한 공간은 정보의 깊이를 통해 도시의 지적 토양을 비옥하게 만든다. 이곳에서는 단순 대출보다 탐구와 협업이 더 자주 일어나고, 전시·강연·워크숍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자료가 모이면 사람들이 모이고, 그 사이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싹튼다.
주목할 지점은 골목도서관과 전문도서관이 서로 다른 지점을 향하면서도 결국 하나의 네트워크로 서로를 보완한다는 사실이다. 골목도서관이 일상 속 진입로를 연다면, 전문도서관은 그 길 끝에서 깊은 학습을 제공한다. 여기에 거점형 도서관이 상징성과 집약을 담당하면, 공공건축은 깊이와 밀도, 다양성을 동시에 확보하게 된다.
물론 다른 측면의 우려도 있다. 최근 공공건축의 프로그램을 보면 도서관이 독립된 시설이라기보다 다른 기능에 포함된 부속 프로그램으로 배치되는 경우가 늘었다. 복합커뮤니티센터나 문화센터, 생활SOC 시설 속에 작은 도서관이 자연스럽게 얹히는 구조다. 이러한 내재형 도서관은 접근성을 높였지만, 동시에 기능의 경계가 흐려지는 부작용도 낳았다. 휴식과 모임이 강조되며 독서 공간이 북카페처럼 변형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러나 변화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도서관이 어디에 있느냐보다 어떤 기준으로 설계되고 운영되느냐에 있다. 조용히 읽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분명히 지키되, 커뮤니티의 호흡이 자연스럽게 드나들도록 조직하는 일. 그리고 그 판단의 출발점은 뉴평리도서관에서처럼 이웃의 창 하나, 골목의 폭 하나를 존중하는 섬세한 태도일 것이다.
대구 비슬산자연휴양림에 위치한 비슬책방. 숲속에 있는 작은 도서관이다.
건축가의 입장에서 보면, 도서관이 더 이상 거대한 기념비로만 상상되지 않는 지금이 오히려 건강하다. 골목의 맥락 속으로 스며드는 방식, 특정 주제를 축으로 깊이를 더하는 방식은 공공건축이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학습의 구조를 설계하는 일임을 보여준다. 도서관은 이미 도시의 여러 층위로 분산되었고, 그 분산은 공공성을 약화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삶에 닿게 만들었다. 골목은 아니지만 도서관이 가장 있을 법하지 않은 비슬산 자연공원 캠핑장 안에도 작은 공공도서관이 지어져 있기도 하다.
언젠가 우리는 도시를 '큰 건물 옆'이 아니라 '그 골목 도서관에서 시작된 이야기'로 기억하게 될지 모른다. 전문도서관의 서가 어딘가에서 만난 한 문장은 누군가의 일과 삶의 궤적을 조금 바꿔놓을 것이다. 도시는 책을 통해 변화한다. 그러나 그 변화는 거대한 광장에서가 아니라, 종종 조용한 골목의 문턱에서 시작된다. 도서관이 다시 그 문턱에 서기 시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이 변화가 충분히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변화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공공도서관의 분화와 확산은 도시가 스스로의 밀도를 재조정하는 과정이며, 삶의 반경 안으로 학습과 사유를 다시 끌어들이려는 집단적 의지의 표현이다. 건축은 그 의지를 형태로 번역하는 도구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눈에 띄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머물 수 있는가, 얼마나 조용히 스며들 수 있는가이다.
도서관을 설계하며 느낀 것은, 공공건축이란 결국 '잘 보이는 건물'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잘 관계 맺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라는 사실이었다. 골목의 폭, 이웃의 창, 오후의 햇빛 각도 같은 아주 작은 조건들이 모여 건축의 성격을 결정한다. 그런 맥락을 존중할 때 도서관은 시설이 아니라 풍경이 되고, 프로그램이 아니라 일상이 된다.
도시는 거창한 선언보다 반복되는 작은 장면들로 변화한다. 매일 같은 시간 문을 여는 도서관, 익숙한 얼굴들이 스쳐가는 골목, 조용히 책장을 넘기는 소리. 이런 축적된 순간들이 도시의 온도를 만든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작은 도서관을 믿는다. 그리고 전문도서관이 쌓아 올리는 깊이 또한 신뢰한다. 이 두 층위가 함께 작동할 때, 도시는 비로소 배우는 공간이 된다.
도서관이 골목으로 들어서고 있다. 그리고 그 골목 어딘가에서, 또 하나의 삶이 조용히 방향을 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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