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동해안 등대 로드]③울진 죽변 등대, 116년 만에 최신형 등명기 교체

  • 원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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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3-07 21:23  |  발행일 2026-03-07

[현장 취재 리포트]-프랑스산 렌즈부터 46km 비추는 국산 기술까지 변천사


-116년의 상흔을 넘어 '관광과 안보'의 해상 거점으로... 경제 파급 효과 연간 200억 상회


울진 죽변 앞바다에서 116년의 역사 등대모습은 구름아래에 우화한 모습. 원형래기자 hrw7349@yeongnam.com

울진 죽변 앞바다에서 116년의 역사 등대모습은 구름아래에 우화한 모습. 원형래기자 hrw7349@yeongnam.com

죽변등대는 밑에는 용의 꿈길이 대밭으로 둘러싼 산책길이 나 있다. 원형래기자 hrw7349@yeongnam.com

죽변등대는 밑에는 용의 꿈길이 대밭으로 둘러싼 산책길이 나 있다. 원형래기자 hrw7349@yeongnam.com

매서웠던 겨울바람이 물러간 죽변항의 3월은 비릿한 바다 내음보다 먼저 연둣빛 봄기운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경북 울진군 죽변면 등대길 52. 해안의 가장 돌출된 지점이자, 흡사 용이 꿈틀대며 바다로 뛰어드는 형상이라 하여 '용의 꼬리'라 불리는 절벽 끝에 서면 유난히 매끄러운 몸체를 자랑하는 하얀 8각형 등탑을 마주하게 된다. 이곳은 1910년 11월 24일 첫 불을 밝힌 이래 한 세기를 훌쩍 넘겨 동해를 지켜온 죽변 등대의 터전이다.


죽변 등대는 프랑스 설계팀이 직접 시공한 유럽형 건축물의 8각형의 콘크리트 구조물 모습. 원형래기자 hrw7349@yeongnam.com

죽변 등대는 프랑스 설계팀이 직접 시공한 '유럽형 건축물'의 8각형의 콘크리트 구조물 모습. 원형래기자 hrw7349@yeongnam.com

죽변 등대의 첫 점등은 구한말 격동의 역사와 맞물려 있다. 국내 현대식 등대의 효시인 인천 팔미도 등대(1903년)나 국내 최대 높이를 자랑하는 포항 호미곶 등대(1908년)가 당시 청(清)나라나 일본의 건축 양식 영향을 받은 것과 달리, 죽변 등대는 프랑스 설계팀이 직접 시공한 '유럽형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독보적인 희소성을 갖는다.


8각형의 콘크리트 구조물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균열 없이 매끄러운 자태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도입된 최신식 프랑스 공법 덕분이다. 등대 건설은 초기 식민지 자원 수탈의 인프라라는 아픈 역사를 안고 시작됐으나, 해방 이후 우리 국토를 지키는 온전한 파수꾼으로 거듭났다. 죽변 등대는 이제 단순한 시설물을 넘어 지난 2005년 경상북도 기념물 제154호로 지정되며 그 학술적·예술적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가파르고 좁은 나선형 철제 계단으로 한사람만 올라갈수있는 폭이 좁은 계단 끝에 펼쳐진 장엄한 동해.  원형래기자 hrw7349@yeongnam.com

가파르고 좁은 나선형 철제 계단으로 한사람만 올라갈수있는 폭이 좁은 계단 끝에 펼쳐진 장엄한 동해. 원형래기자 hrw7349@yeongnam.com

기자는 등대 내부로 조심스럽게 발을 들였다. 등대 문을 열자마자 서늘한 기운과 함께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법한 가파르고 좁은 나선형 철제 계단이 위를 향해 끝없이 이어진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챙, 챙' 하는 금속음이 폐쇄된 공간에 울려 퍼졌다. 100년 전 등대원들이 기름통을 메고 올랐을 그 길이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허벅지가 뻐근해질 때쯤, 마침내 4층 등롱(燈籠)에 도착했다.


철문을 밀고 나선 그곳에서 마주한 동해는 시야가 막힘없이 터져 장엄하기까지 했다. 발밑으로는 깎아지른 절벽에 부딪히는 하얀 파도가 보였고, 머리 위로는 죽변 등대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거대한 '프레넬 렌즈'가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19세기 프랑스 물리학자 오귀스탱 프레넬의 발명품인 이 렌즈는 수백 개의 프리즘을 정교하게 깎아 조립한 광학 기술의 정수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산업 유물로 평가받는 이 렌즈는 전기가 없던 시절 기름 등불의 빛을 수십 킬로미터 밖까지 보냈던 '빛의 증폭 기술'을 증명하고 있다.


죽변 등대는 어둠 속을 기어드는 적들을 감시하는 가장 높은 초소이자 눈이 다. 원형래기자 hrw7349@yeongnam.com

죽변 등대는 어둠 속을 기어드는 적들을 감시하는 가장 높은 '초소'이자 '눈'이 다. 원형래기자 hrw7349@yeongnam.com

우아한 외형과 달리 죽변 등대가 목격한 역사는 치열했다. 현장에서 만난 김종환 죽변항로 표지관리소장은 등탑 상부의 한쪽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잊지 못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등대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닙니다.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인 6·25 전쟁의 포화도 정면으로 받아냈거든요. 당시 북한군의 포탄이 등대 모서리에 직격으로 떨어져 크게 파손됐었습니다. 지금 보시는 이 매끄러운 외벽 속에는 그때의 상흔이 숨어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깨진 부분을 정성껏 보수해 지금의 모습을 되찾은 것이지요."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던 불빛은 해방 이후 안보의 최전선이 되었다. 1968년 발생한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 당시, 죽변 등대는 어둠 속을 기어드는 적들을 감시하는 가장 높은 '초소'이자 '눈'이 되어야 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엔 등대의 불빛  모습.원형래기자 hrw7349@yeongnam.com

칠흑같이 어두운 밤엔 등대의 불빛 모습.원형래기자 hrw7349@yeongnam.com

죽변항에서 60년 넘게 배를 탔다는 서영모(87) 씨는 등대를 '생명의 눈'이라 표현했다. "예전엔 지금처럼 GPS 같은 게 어디 있었나. 풍랑이 일고 칠흑같이 어두운 밤엔 저 불빛 하나만 보고 노를 저었지. 저 빛이 보이면 '아, 이제 살았구나' 싶었어."


등대 바로 아래 마을에서 80평생을 보낸 최순자(84) 할머니는 등대 주변의 '격세지감'을 강조했다. "지금이야 세상이 좋아져서 관광한다고 등대 턱밑까지 번듯하게 도로가 닦이고 차가 쌩쌩 올라오지만, 옛날엔 여기가 다 산이었어. 대나무 숲이 얼마나 빽빽하고 우거졌는지 낮에도 컴컴해서 혼자 가기 무서울 정도였지."


멀리 대구에서 이곳을 찾은 박진호(65) 씨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핸드폰으로 등대의 풍경을 담고 있었다. "116년이나 된 유서 깊은 곳이라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직접 와서 보니 프랑스식 건축물의 세련미도 놀랍지만, 한 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이 자리를 지켜왔다는 사실이 참 경이롭네요."


오늘날 죽변 등대는 단순한 근대 문화유산을 넘어 울진군 관광 경제를 견인하는 핵심 엔진으로 거듭났다. 최근 '죽변 해안 스카이레일'의 개장과 드라마 세트장의 대대적인 정비는 등대 일대를 동해안 최고의 복합 관광 거점으로 변모시켰다. 이러한 변화는 수치로도 명확히 드러난다. 2021년 당시 약 20만 명 수준에 머물렀던 연간 방문객은 2023년 말 기준 50만 명을 돌파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이는 울진군 전체 관광객의 약 15%를 차지하는 비중으로, 등대가 지역 관광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제적 파급 효과 또한 상당하다. 관광객 1인당 지출 비용을 평균 4만 원으로 보수적으로 산출하더라도, 죽변 등대를 중심으로 연간 약 200억 원 이상의 직접적인 경제적 부가가치가 창출되고 있다. 이러한 활력은 지역 상권의 변화로 이어져 등대 주변 카페와 음식점 등 신규 창업이 최근 3년 사이 25%가량 증가하는 등 실질적인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기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2022년 5월 도입된 최신형 KRB-750 기는 과거 수입에 의존하던 핵심 장비를 우리 기술로 국산화한 등명기.원형래기자 hrw7349@yeongnam.com

2022년 5월 도입된 최신형 'KRB-750' 기는 과거 수입에 의존하던 핵심 장비를 우리 기술로 국산화한 등명기.원형래기자 hrw7349@yeongnam.com

기술적 측면에서도 죽변 등대는 '디지털 해상 안전'의 사령탑 역할을 수행 중이다. 2022년 5월 도입된 최신형 'KRB-750' 등명기는 과거 수입에 의존하던 핵심 장비를 우리 기술로 국산화하여 기술 자립을 이뤄낸 상징적 장비다. 지름 750mm의 거대한 렌즈는 10초에 한 번씩 강렬한 백색 섬광을 쏘아 올리며, 동해안 등대 중 최상위 수준인 약 46km(25해리) 밖 수평선 너머까지 안전의 신호를 보낸다.


특히 죽변 등대는 단순한 광학 표지를 넘어 복합적인 해상 관제 기능을 수행한다. 위성항법보정시스템(DGPS)과 선박자동식별장치(AIS) 중계소 기능을 동시에 가동하여 주변을 항해하는 2,000여 척 선박의 위치 정보를 실시간으로 관리한다. 이를 통해 해상 사고를 사전에 예방함으로써 연간 약 30억 원에 달하는 사고 기회비용을 절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116년 전 아날로그 렌즈로 시작된 바닷길 안내가 이제는 최첨단 ICT 기술과 결합하여 동해안의 '스마트 파수꾼'으로 진화한 셈이다.


현재 죽변 등대에는 3명의 전문 관리 인력이 상주하며 24시간 감시 체계를 유지한다. 기상 변화가 심한 죽변 앞바다에서 등대원들은 해무 발생 시 음파 표지를 수동 제어하고 비상시 해경과 핫라인을 유지하는 '인간 관제탑' 역할을 수행한다.


20년 전까지 죽변항에서 해녀로 물질을 했던 진수미(78) 씨에게 이 등대는 삶의 나침반이었다. "물질하다 고개를 딱 들었을 때 저 하얀 등대가 보이면 '아, 내가 우리 동네 바다에 있구나' 하고 안심이 됐었죠. 세상 모든 게 다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게 하나쯤 있다는 게 우리 같은 바닷사람들에겐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 모릅니다."


불빛은 변함없다. 116년의 세월을 견딘 하얀 등탑은 내일의 태양이 뜨기 전까지 다시 한번 장엄한 빛의 줄기를 바다 위로 쏘아 올릴 것이다. 우리네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이어질 그 침묵의 약속은 오늘도 죽변 앞바다를 묵직하게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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