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동해안 등대 로드] ① 감포 송대말 등대…감포항 지켜온 70년 목격자

  • 장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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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2-14 11:30  |  수정 2026-02-14 13:11  |  발행일 2026-02-14
1955 점등→유인→무인…해녀·군 초소·학생 기억이 겹친 감포의 언덕
항로표지로 시작해 전시관·스노클링 명소로…송대말의 70년 기억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경북 동해안 수평선 너머로 10초 혹은 20초마다 규칙적인 빛이 날아든다. 바로 등대다. 누군가에겐 흔들리는 불빛이지만 풍랑에 생을 맡긴 사람들에겐 '돌아갈 길'이자 '살아야 한다'는 약속이다. 첨단 GPS와 레이더가 1cm의 오차를 줄이고 스마트폰이 실시간 위치를 알려주는 시대에도 등대는 남아 있다. 1908년 호미곶에 불이 켜진 뒤 동해안 등대들은 일제강점기와 전쟁, 산업화와 항만의 성장까지 바다의 시간을 묵묵히 지켜본 가장 오래된 목격자였다. 지금은 유인등대가 무인화되고 '등대지기'라는 이름도 사라지고 있다. 그 변곡점에서 우리는 등대가 품어온 마지막 이야기들을 기록하려 한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빛을 찾는다. 경북 동해안 등대들이 오늘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 시리즈는 그 빛의 기록을 따라가는 '등대 로드'다.


경주 감포항 남방파제에서 바라본 감포 송대말 등대 전경. 감포항 앞바다를 내려다보는 소나무 숲 언덕 끝에 한옥형 주등(사각 등탑)과 원통형 보조 등탑이 나란히 서 있다. 장성재기자 blowpaper@yeongnam.com

경주 감포항 남방파제에서 바라본 감포 송대말 등대 전경. 감포항 앞바다를 내려다보는 소나무 숲 언덕 끝에 한옥형 주등(사각 등탑)과 원통형 보조 등탑이 나란히 서 있다. 장성재기자 blowpaper@yeongnam.com

경주 감포항 앞바다를 내려다보는 수백년 된 소나무 언덕 끝에 흰 등대가 서 있다. 낮에는 파란 수평선 위에 또렷한 점으로 박히고 밤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빛을 보낸다. 바다를 오가는 배들에게는 위치를 가늠하게 하는 기준점이고 육지에 선 사람들에겐 감포의 끝을 알리는 풍경이다. 이곳을 '송대말 등대'라고 부른다.


송대말 등대는 감포항이 1925년 개항한 이후 항로표지 역할을 맡아온 시설이다. 1930년대 간이 등간 형태로 운영되다가 1955년 6월 처음 정식 점등됐다. 이후 감포항 이용 선박이 늘면서 1964년 등대원이 상주하는 유인등대로 전환됐고 현재는 무인화로 약 20초 간격으로 빛을 발해 약 40km 해상까지 도달하는 항로 기준점 역할을 하고 있다.


2월 11일 찾은 송대말 등대의 첫인상은 '정돈된 흰색'이었다. 포말이 부서지는 검은 암반 위에 흰 등탑과 흰 등대 건물 나란히 앉아 있다. 멀리서 보면 항구를 내려다보는 작은 성채 같고 가까이 다가가면 바닷바람을 정면으로 맞는 표식 같다. 맞은편 감포항 입구 방파제 끝에는 별도의 항로표지인 남방파제 등대가 서 있다. 감포항은 이렇게 서로 다른 역할의 등대들이 시야를 이루며 항로를 만든다. 그 중심에서 전체 바다를 바라보는 기준점이 송대말이다.


경주 감포 송대말 등대의 원통형 보조 등탑. 소나무 숲과 바다를 등지고 하얀 등탑이 서 있고 뒤로는 한옥형 등대 건물이 함께 자리한다. 장성재기자 blowpaper@yeongnam.com

경주 감포 송대말 등대의 원통형 보조 등탑. 소나무 숲과 바다를 등지고 하얀 등탑이 서 있고 뒤로는 한옥형 등대 건물이 함께 자리한다. 장성재기자 blowpaper@yeongnam.com

송대말 등대가 항상 같은 모습이었던 건 아니다. 건립 초기엔 무인등대로 운영됐다가 1964년 증축을 통해 유인등대가 됐고 등대원을 배치했다. 또 다시 무인화된 현재의 모습은 2001년 종합 정비를 통해 만들어졌다. 기와지붕을 얹고 국보 감은사지 삼층석탑의 형태를 본뜬 현대식 한옥 구조로 다시 지었다.


송대말 등대는 철근콘크리트 등탑 위에 난간을 두르고 돔형 등롱을 올린 구조다. 내부는 2개 층으로 구성되고 등롱 내부는 빛이 바다 쪽으로 퍼지도록 설계됐다. 등대지기가 생활하던 시절의 흔적과 시설화된 현재의 모습이 한 공간에 겹쳐 있다.


그 겹침을 가장 생생하게 들려주는 건 '감포에서 자란 사람'의 기억이다. 감포읍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손기희(70·여)씨는 송대말을 "친구들이 모이던 운치 있는 곳"으로 떠올렸다.


그는 "친구들과 송대말 소나무 아래에 소복히 모여 기타를 치고 놀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어디 놀러가기도 멀고 해서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이 모인 가장 운치 있고 분위기 있는 곳이었다. 여름에는 등대 밑에서 조개도 줍고 우끼(고무 튜브) 들고 수영도 했다. 지금은 전시관도 들어서고 등대가 말끔해졌지만 그때도 소나무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공간이었다"고 말했다.


송대말 등대 인근에 감포중·고등학교가 있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흘러갔고 때로는 바다를 향한 언덕이 교실이 됐다. 손씨는 "미술 수업 있는 날에는 송대말 언덕에서 소나무와 감포항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곤 했다"고 기억했다.


경주 감포 송대말 등대(빛 체험 전시관) 전경. 기와지붕을 얹은 한옥형 건물 위로 등탑이 솟아 있고 등탑 상부는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떠올리게 하는 층층의 실루엣을 담았다. 장성재기자 blowpaper@yeongnam.com

경주 감포 송대말 등대(빛 체험 전시관) 전경. 기와지붕을 얹은 한옥형 건물 위로 등탑이 솟아 있고 등탑 상부는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떠올리게 하는 층층의 실루엣을 담았다. 장성재기자 blowpaper@yeongnam.com

하지만 그 시절 송대말은 지금처럼 열린 공간은 아니었다. 철조망 경계가 있었고 군인들의 경계초소도 있었다. 손씨는 친구들과 고구마 텃밭을 건드렸다가 군인의 외침에 놀랐던 장면도 또렷하게 기억했다. 그는 "고구마를 심어놓은 걸 친구들과 캐다가 군인이 '꼼짝마' 해서 놀라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손씨는 등대지기가 있던 시절도 언급했다. "같은 학교 친구의 아버지가 등대지기였다. 감포읍 내 마을에 사는 아저씨였다"고 말했다. 정보통신 기술 발달 이후 등대 운영 방식도 바뀌었다. 송대말 등대는 2018년 11월 원격제어 시스템이 도입되며 다시 무인등대로 전환됐고 현재는 포항지방해양수산청이 원격 관리한다. 지금처럼 자동 점등·원격 관리가 보편화되기 전 등대는 누군가의 직장이었고 생활이었다.


송대말 주변의 기억은 더 거칠고 생활적이다. 손씨는 "소나무 아래 무덤들도 서너 개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모두 정리돼 없다"고 했다. 전시관이 생기기 전 언덕에는 간이 포장마차가 들어서 관광객들에게 멍게나 전복, 해삼과 소주를 팔던 바닷마을의 운치도 있었다.


송대말 등대 아래 해안 암반지대. 바위 사이로 콘크리트로 구획된 사각 수조 형태의 구조물이 남아 있어 일제강점기 저장 시설로 쓰였던 흔적을 보여준다. 장성재기자 blowpaper@yeongnam.com

송대말 등대 아래 해안 암반지대. 바위 사이로 콘크리트로 구획된 사각 수조 형태의 구조물이 남아 있어 일제강점기 저장 시설로 쓰였던 흔적을 보여준다. 장성재기자 blowpaper@yeongnam.com

그 해산물은 누가 땄을까. 손씨는 "주로 해녀들이 등대 아래에서 채취했다"고 말했다. 손씨는 이를 "목욕탕처럼 생긴 곳"이라고 표현했다. 실제 현장에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남아 있다. 바닷물이 드나드는 사각의 웅덩이들이 바위 사이에 붙어 있는데 양식장 시설처럼 보이기도 한다. 손씨는 해녀들이 해산물을 손질하거나 잠시 머물던 작업 공간으로 쓰이던 곳이라고 했다. 실제 이곳은 일제강점기 1930~40년대 무렵 감포항을 거점으로 수탈한 고등어와 정어리 등을 신선하게 보관하기 위해 바닷물이 드나들도록 만든 시설이었다.


지금은 모습이 조금 달라졌다. 파도가 직접 들이치지 않는 구조 덕분에 얕은 수심이 유지되면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거나 동호인들이 스노클링을 즐기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무인화 이후 남은 관리동과 숙소 공간은 2021년 송대말 등대 빛 체험 전시관으로 재구성됐다. 노후된 유인 등대 시설이 감포항과 경주 바다, 등대의 역사를 미디어아트로 체험하는 해양문화관광시설로 바뀌었다.


감포항 전경. 방파제의 빨간 등대와 테트라포드 너머로 선박이 항내를 오가고 뒤편으로 감포 시가지와 항만 시설이 이어져 있다. 장성재기자 blowpaper@yeongnam.com

감포항 전경. 방파제의 빨간 등대와 테트라포드 너머로 선박이 항내를 오가고 뒤편으로 감포 시가지와 항만 시설이 이어져 있다. 장성재기자 blowpaper@yeongnam.com

그래서 송대말 등대는 예쁜 풍경 이상의 이야기를 품는다. 바다 쪽을 향해 서 있는 등대를 등지고 돌아보면 감포읍의 지붕들과 방파제, 항구의 움직임이 한 화면에 들어온다. 한쪽에는 바다로 나가는 길 다른 쪽에는 돌아와 살아가는 마을. 등대가 하는 일은 결국 하나다. 나가도 돌아올 수 있게, 돌아와도 길을 잃지 않게.


이번 시리즈의 첫 장을 송대말로 연 이유도 거기에 있다. 등대는 누군가에게는 밤바다의 GPS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학창시절의 소나무 그늘이다. 같은 불빛이 사람마다 전혀 다른 의미로 저장된다. 그리고 그 의미들이 쌓일수록 등대는 더 오래된 목격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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