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핫 토픽] 화면 밖으로 한 걸음

  • 이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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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3-20 07:47  |  발행일 2026-03-20

걷기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오래된 인간의 활동이다. 동네 산책부터 등산, 장거리 트레킹, 전국 일주까지 형태도 다양하다. 최근에는 건강 관리와 여가를 함께 충족하는 방식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스마트폰 만보기 앱을 활용한 '만 보 걷기 챌린지'나 장거리 트레킹처럼 걷기를 목표로 설정하는 문화도 확산하는 분위기다.


이 같은 변화는 유튜브 콘텐츠에서도 확인된다. 챌린지형 콘텐츠를 제작하는 유튜버들 사이에서 걷기를 소재로 한 영상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유튜버 고재영은 '30일 동안 100만 보 걷기'에 도전해 서울에서 제주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기록했다. 영상에는 발바닥 통증과 피로 같은 현실적인 어려움도 담겼지만, 목표를 향해 걸음을 이어가는 과정 자체가 색다른 재미를 준다.


유튜버 샤크창은 부산에서 일본 오사카까지 도보 이동에 나서며 걷기를 여행의 방식으로 풀어냈다. 자동차나 비행기로는 지나치기 쉬운 풍경을 천천히 바라보고,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빠르게 소비되는 콘텐츠 환경에서 걷기가 주는 '느린 경험'이 오히려 새롭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이런 영상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화면 밖 풍경이 떠오른다. 걷는 동안에만 마주할 수 있는 장면과 공기,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성취감을 간접적으로 체감하게 된다. 이번 주 기온이 13~16도 안팎으로 오르며 봄기운이 완연해질 전망이라고 한다. 걷지 않으면 계절에게 미안할 지경이다.


걷기는 단순한 이동을 넘어 공간을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특히 대구·경북에는 가볍게 혹은 밀도 있게 걸을 길이 많다. 수성못은 호수를 따라 산책로가 이어져 접근이 쉽고, 금호강을 따라 조성된 동촌 유원지에도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팔공산 둘레길과 청도 운문사 솔바람길은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코스다. 앞산 공원전망대 역시 일상에서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책 코스다.


기자는 대구 출신은 아니다. 하지만 대구권에서 학교를 다니며 이 도시를 걸어왔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마주한 풍경은 평범한 장면도 다르게 보이게 한다. 대구 사람에게는 일상인 모습도 외부의 시선에서는 새롭게 인식된다.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이 도시의 결이 드러난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분명히 체감되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휴일이면 집 주변 골목을 다시 걷는다. 화면으로는 닿지 않던 대구가 그때 비로소 가까워진다.


화면 속 걷기 콘텐츠는 소비로 끝나지만, 실제 걸음은 경험으로 남는다. 기온이 오르고 있다. 걷기에는 충분한 조건이 갖춰졌다. 걷는다는 것은 시간을 들여 한 도시를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다시 시작된 걷기 흐름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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