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규 관장과 안진숙 감독 부부가 나란히 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오랜 시간 검도로 함께한 두 사람의 편안하고 따뜻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본인제공>
제64회 경북도민체육대회 검도장.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경기장 한편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똑같은 도복을 입은 다섯 남자가 나란히 서 있었던 것. 아버지와 네 아들. 그리고 그 뒤에서 이들을 조용히 바라보는 어머니 감독이 서 있었다. 한 가족이 선수와 지도자로 함께 무대에 오른 순간이었다.
문경시 대표로 출전한 '오부자 검도 선수단'으로 이색 참가를 넘어선 신기한 장면 뒤에는 20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두껍게 쌓여 있었다. 검도 가족 중심에는 수십 년간 지역을 지켜온 박상규 검도 관장이 있다. 박 관장은 검도 7단, 부인 안진숙 감독은 6단, 네 아들도 유단자다. 검도 7단과 6단은 수십 년의 수련과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오를 수 있는 고단자 반열이다.
박상규·안진숙 부부처럼 고단자 부부가 함께 도장을 운영하면서 네 아들까지 모두 유단자로 성장해 한 팀을 이룬 사례는 전국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드문 사례다.
검도 오부자의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생활공간이었던 도장에서 성장했다. 박 관장은 "아이들에게 검도를 시켜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은 없다. 늘 도장에서 생활하면서 쌓인 가족애가 뭉쳐 검도 가족의 삶이 됐다"라고 했다.
이들 가족들에게 검도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다. 함께 땀을 흘리고, 서로를 바라보면서 버텨낸 시간은 더욱 단단한 가족애를 묶어줬다. 과정이 항상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다"고 얘기할 때 부모로서 고민이 깊었던 일도 있었으나 결국은 도장으로 돌아왔다.
이번 경북도민체육대회는 검도 가족에게는 아주 특별한 무대였다. 부부가 운영해 온 문경검도관은 개관 20주년, 막내 쌍둥이들은 성인을 앞두고 온 가족이 선수로 뛸 수 있는 첫해였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마음속으로 품어오던 장면이 현실이 된 것이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성과였다. 오부자 선수단이 출전한 일반부 단체전에서 문경시 대표팀은 2위에 올랐다. 가족이 하나의 팀으로 호흡을 맞춰 만든 값진 결과였다. 이번 대회 출전은 박 관장에게 성적 이상의 의미를 갖게 했다. 아이들과 나란히 경기장에 입장하는 순간을 가장 깊이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여기까지 왔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아이들이 어릴 때 도장에서 뛰어놀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어리광만 부리던 아이들이 같은 도복을 입고 경기장에 선 것은 더 없는 기쁨"이라는 그의 말에는 가족애의 무게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박 관장은 지도자로서도 오랜 시간을 현장에서 보냈다. 전국소년체육대회 경북 초등부 감독을 맡아 3년 연속 입상을 이끌었고,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그는 검도의 본질을 '기술'이 아닌 '사람'에서 찾는다. "검도는 결국 사람을 만드는 운동이다. 기술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수 있지만, 사람은 남는다. 그 가치를 아이와 제자에게 전하고 싶었다"라고 덧붙였다.
제64회 경북도민체육대회 검도 경기장에서 문경시 대표 '오부자 선수단'이 도복을 입고 나란히 선 채 파이팅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어머니 안진숙 감독과 아버지 박상규 관장을 중심으로 네 아들이 함께 선 모습에서 가족의 끈끈한 팀워크와 결의를 엿볼 수 있다. <본인제공>
문경시의 '오부자 선수단'은 지역 체육계에도 새로운 메시지를 던졌다. 엘리트 중심의 경쟁을 넘어, 가족과 생활체육이 결합된 새로운 참여 모델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검도가 개인 종목을 넘어 공동체와 가족을 이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검도장에는 여운이 남아 있었다. 승패는 기록으로 남지만, 그날 나란히 서 있던 가족의 모습은 오랫동안 기억될 장면이었다. 박 관장은 "아이들은 앞으로 각자의 길을 가겠죠. 하지만 오늘 이 순간, 함께 같은 도복을 입고 같은 자리에서 검도를 했다는 기억은 평생 남을 겁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강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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