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람의 스포르찬도] 소녀시대의 지(Gee)

  • 남보람 전쟁사학자·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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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4-12 23:00  |  발행일 2026-04-14
남보람 전쟁사학자·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남보람 전쟁사학자·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2015년 8월, 국군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군은 '젊은 북한군이 좋아할 만한 소녀시대, 원더걸스 등의 노래를 내보내어 심리전 효과를 거두겠다'고 홍보했다. 그러자 방송언론에서 비난이 일었다. 모 언론은 '북한 쪽으로 아이돌 그룹 노래를 트는 것은 유치하며, 역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썼다. 인터뷰에서 한 탈북자는 '대북 확성기로 노래를 틀면 시끄럽고 귀찮다. 들어도 좋은 줄 모르니 피해일 뿐'이라고 했다. 곡 선정 절차, 메시지의 유효성, 방송 후 피드백 등을 두고 비판이 계속 되었다.


결국 군은 계획과 달리 '옛 노래'를 북으로 쏘아 보냈다. 2016년 가장 많이 송출된 것은 거북이의 '비행기(2006)'를 필두로, '네 꿈을 펼쳐라(양희은, 1984)', '당신만이(벗님들, 1980)'였다. 2017년에는 '날 보러와요(방미, 1980)', '거위의 꿈(인순이, 2007)', '부모(나훈아, 1977)' 순이었다. 태진아, 조용필, 배일호 등의 곡도 눈에 띈다. 그러자 '밝고 건강한 한국 사회를 북한에 전할 수 있는 선곡'이라며 호평이 이어졌다.


2017년 11월13일, 북한군 병사가 판문점을 넘어 귀순했다. 북한군의 총격에 중상을 입으면서도 필사적으로 달려와, 군사분계선에서 국군에 구조되었다. 그리고 5시간 대수술 끝에 목숨을 건졌다. 그의 이름은 '오창성'이다.


언론은 경쟁적으로 탈북 병사 오창성의 근황을 쏟았다. 그중 의식을 회복한 오창성의 첫 번째 신청곡 사연이 국민의 주목을 끌었다. 그는 소녀시대의 '지(Gee)'를 요청했다. 가사를 살펴보자.


너무너무 멋져 눈이 눈이 부셔/ 숨을 못 쉬겠어 떨리는 Girl/ Gee Gee Gee Gee Baby Baby Baby (x 2)/ Oh 너무 부끄러워 쳐다볼 수 없어/ 사랑에 빠졌어 수줍은 Girl/ Gee Gee Gee Gee Baby Baby Baby (x 2)


아이돌 노래를 비판했던 방송언론의 관점에서 보면, 위 가사에는 '한국 사회의 밝고 건강한 모습' 혹은 '북한에 전할 만한 메시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선을 넘은 탈북 병사가 자유 대한에서 가장 먼저 듣고 싶은 노래는 소녀시대의 '지'였다.


오창성의 신청곡 사건 이후, 대북 방송에 아이돌 노래를 내보내는 것에 대한 보도 기조가 달라졌다. 비판은 쏙 들어가고, 반대로 '옛 노래로 북한군 병사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으니 신곡으로 변화를 꾀할 때'라고 주장했다. '북한 신세대는 한국 가요, 드라마 등을 일찍 접했다. 따라서 최신곡을 틀어주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다른 탈북 병사의 증언도 나왔다. 통일연구원은 '아이돌 가요가 북한 병사들의 생리적, 심리적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했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건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가사 일부이다.


눈 앞에선 우리의 거친 길은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


십여 년 전 대북 방송을 재개할 때, 소녀시대를 비롯하여 다비치, 손담비, 슈퍼주니어, 2NE1, 브라운아이드걸스, 샤이니(이상 2009년 뮤직뱅크 1위를 차지한 가수 및 그룹) 등 당대 최신 히트곡을 내보냈다면 어땠을까. 한 명이라도 더 많은 북한군 병사가 대한민국으로 내려오는데 빛이 되어 주진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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