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선 심심책방 대표
제주에는 이맘 때 비오는 날이 잦다. 고사리가 올라오는 시기에 맞춰 비가 오니 자라기 좋은 환경이 된다. 겨우내 비어있는 들판에 고사리가 꼬물꼬물 올라오고 자라는 광경은 육지 사람인 내 눈에 경이롭기까지 했다. 아침에 본 여린 싹이 하루 동안 쑥쑥 자라서 저녁 들판에서는 제법 튼실해져 있었다.
고사리 장마가 끝나갈 무렵이면 매년 비슷한 뉴스를 보게 된다. '고사리를 꺾으러 갔던...길을 잃고...수색 끝에...' 고사리가 어쨌기에 그걸 꺾다가 목숨까지 잃을까? 이해하기 힘들었다. 고사리를 꺾어보니 이유를 알겠네! 고사리 꺾기. 안 해 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제 그만해야지, 일어서려고 하면 눈앞에 제일 맛있어 보이는 여린 고사리가 나타나서 '진짜로 갈 거야?'라고 유혹한다. 이만하며 됐겠지 하고 돌아서면 눈앞에 엄청난 고사리 밭이 펼쳐져서 '이래도 가?' 하는데 아이고~ 그 유혹에 한발 한발 다가서다보면 고사리를 넣은 가방은 점점 무거워지고 발끝은 이미 미궁을 향하는 것이었다.
여러 해 전에 해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수애기(돌고래)이야기가 재미났지만 인상적인 대목은 따로 있었다. 물질을 하다가 위험해지는 경우에 대한 이야기였다. 열심히 해산물을 따다가 자신도 모르게 위험한 지역에 들어가거나 급한 물살을 만나면 망태기를 버리고 재빨리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힘들게 채취한 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사이에 불행한 일을 당할 수 있다고 했다.
해녀들은 군인처럼 철저한 계급이 있다. 제일 경험이 많고 기술이 뛰어난 '상군'은 위험한 상황에서 망태기를 자를 줄 아는 사람이다. 지금 손에 쥐고 있는 망태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고 가장 빠르고 단호하게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이다.
오랜 시간 죽음과 장례를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내가 배운 것은 멈춤에 관한 생각이다. 학교에서 최선을 다해라. 열심히 해라. 목표를 정하고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라고 배웠었다. 항상 성적을 매기고 석차대로 줄을 세우곤 했다. 사회에서도 경쟁은 일상화 되어있고 탁월한 성취를 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무용담처럼 떠돌았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각종 SNS가 일상 깊숙이 파고든 시대다.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소식들 때문에 세계는 더욱 좁아졌고 삶에 가속도가 붙은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럴 때일수록 잠시 멈춰서 자신의 영혼과 정신과 몸을 보살피는 시간이 필요하다. 눈앞에 오동통한 고사리 밭이 펼쳐져도 망태기에 전복이 그득해도 고사리나 전복보다 당신 자신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기억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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