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군 대천리에 위치한 조민국씨의 고추농장 모습. 고깔형 비가림하우스와 일반 비가림하우스가 줄지어 있다. <정운홍 기자>
4월 말, 경북 영양의 들녘은 이미 한 해 고추농사 채비로 분주했다. 밭마다 비닐이 씌워진 이랑이 줄지어 있었고, 일부 농가에서는 정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조민국(38)씨의 농장에도 지붕이 솟은 형태의 고깔형 비가림하우스와 일반 비가림하우스가 나란히 서 있었다.
조씨는 현재 약 1만㎡의 부지에 고깔형 비가림하우스 10동, 일반 비가림하우스 10동 등 모두 20동 규모의 시설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노지 고추 재배도 병행한다. 한농연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그는 지역에서는 드문 30대 청년 고추농가다.
하우스 안으로 들어서자 바깥보다 공기가 한결 선선했다. 조씨는 "한여름에는 시설 유무에 따라 내부 온도가 7~8도, 많게는 10도 가까이 차이 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고깔형 구조가 공기 흐름을 좋게 하고, 내부 작업 환경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고추농사는 수확과 관리 과정에서 손작업 비중이 높다. 특히 여름철 무더위 속에서 이어지는 수확 작업은 농가와 인력 모두에게 부담이다. 조씨는 "일하는 여건이 선선해지는 것만으로도 체감이 크다"며 "수확할 때도 고추를 일정 높이까지 유인해 키우기 때문에 작업이 한결 수월하다"고 했다.
조민국씨의 고추 재배 하우스 내부. 정식을 마친 두둑 위에 보온용 부직포를 덮어 어린 묘의 초기 활착과 저온 피해를 막고 있다. <정운홍 기자>
고깔형 하우스의 장점은 단순히 작업 환경에만 머물지 않는다. 비가 와도 수확 계획을 조정할 수 있어 노지보다 기상 변수에 덜 흔들린다. 조씨는 "노지는 비가 오기 전 따야 할 시기를 놓치면 상품성이 떨어질 수 있지만, 하우스는 그런 변수가 적다"며 "오히려 비 오는 날에는 다른 밭일을 못 하는 인력을 확보하기 쉬운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조씨의 농장에는 자동방제와 관수 시설도 설치돼 있다. 스프링클러는 봄·가을 관수와 생육 초기 뿌리 활착을 돕는 용도로 활용된다. 일부 시설에는 약제 살포를 자동화할 수 있는 장치도 갖춰졌다. 청년농이 개별 경험에만 의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시설과 데이터를 활용한 관리형 농업으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조씨는 아직 성과를 단정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는 시설 정비와 정식 시기가 맞물려 정확한 비교 데이터를 내기 어려웠다"며 "올해는 토양검사와 동별 기록지를 바탕으로 좀 더 체계적으로 수확량과 경영비를 따져볼 계획"이라고 했다. 고깔형 하우스가 소득을 높인다는 기대는 있지만, 현장에서는 검증과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영양군을 찾아와 고추농장 운영에 성공한 조민국씨. <정운홍 기자>
조씨의 이력도 눈길을 끈다. 고향은 울산이다. 군 제대 후 호주로 건너가 원예 관련 과정을 수료했고, 조경 분야에서 일하다 농업의 길을 선택했다. 귀국 뒤 지역과 작물도 정하지 못한 채 귀농 정보를 찾아다니다 영양을 찾았다. 그는 "처음에는 지역도 작물도 정하지 못했지만, 농사를 지어봐야 내가 할 수 있을지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영양에 와서 일자리를 구하며 농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2020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마을에 정착했다. 땅과 시설, 자금은 청년농에게 가장 큰 장벽이었다. 조씨는 농어촌공사의 선임대 후매도 사업과 청년창업농 지원, 농어촌진흥기금 등 여러 제도를 활용해 기반을 마련했다. 그는 "정부가 청년에게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제도를 거의 모두 함께 활용한 셈"이라며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지역의 도움도 컸다. 조씨는 영양군청과 영양군농업기술센터의 지원이 없었다면 지금의 농장을 꾸리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땅도 아닌 곳에 하우스를 짓고, 정책자금과 농지 확보, 시설 지원을 하나씩 연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과정에서 영양군과 농업기술센터가 제도 안내와 사업 연계, 현장 기술 지원을 함께 도왔다.
조씨는 "솔직히 군청과 기술센터의 도움이 없었다면 실패했을 것"이라며 "군수님을 비롯해 영양군청 김건영 팀장님이 큰 도움을 줬고, 기술센터에서도 조용완 소장님과 김언수 과장님, 임은정 팀장님, 노두호 지도사님이 현장을 많이 챙겨줬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청년농 정착은 개인 의지만으로 해결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농지를 구하고, 자금을 연결하고, 시설을 갖추고, 작물 재배 기술을 익히는 과정이 동시에 맞물려야 하기 때문이다. 조씨는 "귀농인이 정착하려면 제도도 중요하지만, 그 제도를 실제 현장에 맞게 연결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며 "이번 농장은 그런 도움들이 모여 가능했다"고 했다.
고깔형 비가림하우스 내부에 유인재배 방식으로 키운 고추가 약 2m 높이까지 자라며 통풍과 작업 효율을 높이고 있다. <조민국씨 제공>
그러나 청년농의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정책자금이 있어도 실제 금융기관 심사 과정에서는 담보와 보증, 기존 대출 이력 등 여러 제약이 뒤따른다. 조씨는 "투자가 일정 규모 이상 돼야 성과가 나오는데, 필요한 만큼 자금이 연결되지 않으면 결국 경영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인력 문제도 복잡하다. 시설하우스는 노지보다 작업 변수를 줄여주지만, 일정 규모 이상이 되면 결국 수확 인력이 필요하다. 계절근로자는 노동력 부족을 덜어주는 대안이지만, 고정 인건비가 발생하는 만큼 농가 경영에는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한다. 조씨는 "일손을 쓰기 위해 추가 작목을 만들다 보면 농사 규모가 커지고, 그만큼 경영비와 위험도 함께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영양 고추농업은 지금 전환점에 서 있다. 고령화와 인력난, 기후 변화, 생산비 상승이라는 현실 속에서 기존 방식만으로는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조씨의 농장은 그 변화의 한 단면이다. 고깔형 비가림하우스와 자동화 시설, 기록영농은 아직 완성된 답이 아니라 현장에서 검증 중인 실험에 가깝다.
조씨는 "올해는 동별로 기록을 남기고 데이터를 쌓아보고 싶다"며 "젊은 농가가 먼저 해보고, 가능성이 있으면 주변 어르신들과도 나눌 수 있는 방식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고깔형 하우스 아래에서 자라는 것은 고추만이 아니었다. 청년농의 정착 가능성, 기술농업의 실험, 그리고 영양 고추산업의 다음 세대가 함께 자라고 있었다.
정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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