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형 문화평론가
지금부터 30년 전인 1996년, 당시 프로 2년차의 임창용은 해태타이거즈에서 선발과 중간계투를 오가며 활약하고 있었다. 하루는 중간계투로 나가서 신나게 얻어터지고 강판이 되었는데, 덕아웃에 앉아 있으니 누군가가 뒤로 다가와 조용히 그의 귀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형님, 도망갑시다." 임창용이 고개를 돌려 돌아보니 그 말을 한 친구는 그날 선발 투수로 나갔다가 경기를 완전히 망쳐버린 장본인이자 자신의 고교 1년 후배이기도 했던 김상진이었다.
임창용은 정색을 하며 "오늘 경기 끝나면 틀림없이 집합 걸릴 텐데, 미쳤냐?"라고 소리죽여 반문하지만, 평소 착하고 성실하기로 유명했던 김상진은 어쩐 일인지 그날따라 막무가내였다. "그러니까 튀어야죠, 형님." 거기서 임창용은 고민 끝에 후배의 유혹에 넘어가 조삼모사 비슷한 선택을 해버린다. '모르겠다. 내일 맞아 죽든지 말든지, 일단 오늘은 튀자.' 그리고 정말로 임창용과 김상진 이 대담한 두 청년(무려 해태 소속)은 경기 도중에 연기처럼 덕아웃에서 사라진다.
거사 시점이 5회였는지 8회였는지는 증언이 엇갈리지만, 어쨌든 그들이 그날 무등야구장에서 도보로 20분 정도 걸리는 전남대 후문으로 숨어들었던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둘이 거기서 구체적으로 뭘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술을 못 마신다는 임창용, 먹성이 좋기로 유명했다는 김상진의 성향을 미루어 추측건대, 그들은 김밥과 떡볶이 같은 음식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곤, 짜릿한 일탈의 쾌감과 내일 찾아올 후폭풍에 대한 불안을 동시에 꾸역꾸역 집어삼키고 있었을 것 같다.
그랬던 그 둘은 뒤에 공히 한국시리즈 우승의 '헹가레 투수'가 되는 영광을 누린다. 김상진은 고작 1년 뒤인 97년 한국시리즈에서 해태의 마지막 우승을 완투로 장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2년 뒤 그는 고작 22세의 나이에 위암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다.) 임창용은 그보다 무려 17년이나 지난 후인 2014년, 삼성 8번째의 우승을 마무리하며 마운드에 서 있었다. 그날 경기 도중 도망쳤던 철없던 진흥고 출신의 두 투수가 무려 17년의 시차를 두고 한국시리즈를 매조지하는 진풍경을 만들어 낸 것이다.
야구의 봄이 다시 오면, 난 가끔 그 두 젊고 잘생긴 호남의 야구유망주들이 몰래 무등야구장을 빠져나가는 장면을 떠올리며 키득거린다. 전대 후문에 가본 적은 없지만, 난 그곳이 경대 북문이나 영대 오렌지타운, 계대 동문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그리고 그런 곳에는 언제나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은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어떤 모호한 기쁨이 있다. 김응용의 분노도, 시커먼 해태 군기반장의 빠따도, 그리고 가슴 찢어질 듯 아픈 청춘의 요몰과 안타까운 중년의 파산도 그곳에서는 수천, 수만 가지의 가능성 중 하나로만 존재할 뿐이다.
야구선수도 아닌 우리 역시 그 공간에 대해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모두는 언젠가 우리들 인생의 수업에서 도망친 채 그 확정되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의 막걸리를 즐긴 기억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인생에서 확정된 영역이 점점 더 커질수록, 우리는 그 구김살 없이 무책임할 수 있었던 시절을 더욱 사무치도록 그리워하게 된다. 이제 억만금을 주어도 돌아갈 수 없는, 좋은지도 모르고 흥청망청 보냈던 그 하루키의 초창기 소설과 같은 여행지는, 죽는 그날까지 우리네 앨범 속에 꼭 어제처럼 빛바래 있을 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