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의료 시대의 도래를 상징하는 진료 현장. 모니터 속 AI 나침반은 환자의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방향을 제시하지만, 수술 로봇을 제어하고 최종 결정을 내리는 주체는 여전히 인간 의사다.<그래프=생성형 AI>
대구 의료 현장에 인공지능(AI)이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진료 패러다임이 통째로 바뀌는 중이다. 영상 판독 정확도는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수술 미세 오차도 잡아낸다. 의료 질 향상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이면에는 '법적 책임'이라는 복잡한 고차방정식이 있다. AI 조언을 따랐다가 사고가 나면 누구 책임인가. 의사가 AI 경고를 무시하고 임상 경험을 믿었을 때는 어떠한가. 형사법 전문 천주현 변호사(법학박사)를 통해 법적 쟁점과 향후 과제를 들여다 봤다.
◆"AI는 절대적 과학법칙 아니다"…맹신이 부르는 법적 과오
최근 로봇수술과 AI 진단 도구 활용이 보편화됐다. 의료진의 기술 의존도도 점차 강해지는 추세다. 하지만 기술적 완성도가 법적 면책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만약 의사가 AI 분석 결과를 전적으로 수용해 처치했으나 사고가 발생했다고 가정하자. 이때 의사는 AI 뒤에 숨어 책임을 면할 수 있을까. 천 변호사는 최근 영남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의사 판단이나 처치 과정에 과실이 입증된다면 의사는 불법행위 책임을 진다"며 "소속 병원도 사용자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는 AI가 산출한 결과값이 완벽할 수 없다는 기술적 한계와 이를 최종 검증해야 할 의사의 공적 의무가 법적으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 판단 근거는 AI의 법적 정체성에 있다. 천 변호사는 "AI는 의료인이 무조건적으로 신뢰해야 할 당대 최고의 과학 법칙이 아니다"며 "판단을 지원하는 보조 수단일 뿐"이라고 했다. 현재 의료법·응급의료법·의료분쟁조정법 등 국내 보건의료 관련 핵심 법규 어디에도 AI 권고 이행을 이유로 면책해 주는 규정은 없다. 구체적 가이드라인조차 전무하다.
결국 의사는 AI 제언과 별개로 고도의 전문적 판단을 직접 내려야 한다. '당대 최고의 과학적 수준'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선관의무)'를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설명 의무'가 중요하다. 처치 전 환자에게 발생 가능한 위험성을 충분히 알리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이 과정은 AI 도입 여부와 상관없이 온전히 인간 의사의 몫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생명을 다루는 법적 책임의 최종 주체는 여전히 '사람'이라는 의미다.
<그래프=생성형 AI>
◆'AI 경고 무시'와 '소신 진료' 사이…합리적 검토 과정이 유무죄 가를 것
반대의 경우도 논란의 대상이다. AI가 위험 신호를 보냈음에도 의사가 독자적 판단으로 이를 따르지 않았을 때는 어떻게 될까. 천 변호사는 "추가 조사와 면밀한 검토라는 실질적 행위 여부가 법적 성패를 가를 핵심 열쇠"라고 했다.
이어 "의사가 AI 위험 신호를 인지했다고 치자. 이후 자신의 전문 지식을 동원해 해당 신호의 타당성을 면밀히 검토했다면 상황이 다르다"며 "임상적 근거에 따라 자신의 판단이 더 적절하다고 믿어 진료했다면 의사와 병원은 면책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AI 판단에 반드시 기속(속박)되어야 한다는 법적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의사의 전문적 재량권이 기술적 데이터보다 법적으로 우위에 있음을 시사한다.
단, '합리적 근거 없는 무시'는 치명적이다. 천 변호사는 "AI 경고를 받고도 최소한의 타당성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면 문제다"며 "이를 간과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면 판단 소홀 및 처치 소홀로 간주된다. 이 자체로 법적 책임 소지가 발생한다"고 했다. 결국 AI 의견 수용 여부보다 그 과정에서 의사가 얼마나 '성실하게 고민하고 합리적 근거를 남겼는가'가 법적 과오를 가르는 핵심 기준이 된다.
형사전문 천주현 변호사. 영남일보 DB
◆"모호한 재량권 넘어선 구체적 법적 안전망 시급"
기술의 발전 속도를 현행법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인공지능기본법'이 고영향 AI 개념을 정의하며 보건의료 분야를 예시로 들고는 있다. 하지만 이는 선언적 수준이다. 실제 의료 사고 현장에서 구체적 책임 소재를 가리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천 변호사는 "현재 판례는 의사의 전문적 재량을 폭넓게 인정해주는 추세다"며 "하지만 기준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모호하다는 비판이 늘 뒤따른다"고 했다. 현장 의료진은 어느 정도 수준까지 AI를 검증해야 법적으로 안전한지 알 수 없다. 일종의 '불확실성의 늪'에 빠진 상태다.
이에 조속한 입법 보완이 요구되고 있다. AI 대로 진료했을 때와 그 반대의 경우에 대한 책임 범위를 명문화해야 한다. 천 변호사는 "구체적 입법 전까지는 사법부 역할이 크다. 의료 AI 사고에 대한 판례를 더 정교하고 세분화해 쌓아 올려야 한다"며 "이를 통해 의료진에게는 진료 자율성을, 환자에게는 두터운 안전을 보장하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데이터의 시대, 결국은 인간의 책임"
AI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법조계와 의료계의 긴밀한 협력이 중요해진다. 단순히 첨단 장비를 도입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해당 장비가 산출한 결과값의 법적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천 변호사는 "데이터는 과거 기록일 뿐이다. 미래의 생명을 전적으로 책임질 수는 없다. AI 답이 통계적으로 99% 옳더라도 마찬가지"라며 "나머지 1% 예외 상황에서 환자를 지키는 것은 결국 의사의 직관과 경험"이라고 했다. 즉 기술 만능주의에 빠져 의료의 본질인 '인간적 고뇌'와 '생명에 대한 책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조언이다. AI는 '평균적 데이터'의 산물이지만, 의료 사고는 대개 '특수한 개별 환자' 사례에서 발생한다. 99%의 확률 뒤에 숨은 1%의 특이점을 포착해내는 게 의술의 본질이라는 의미다.
천 변호사의 법률적 제언을 종합하면, 의료 AI는 의사의 진료를 돕는 '나침반'일 뿐 항로를 직접 결정하는 '조종키'가 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AI가 방대한 데이터를 찰나에 분석해 의료진의 시야를 확장해줘도, 통계적 수치 너머에 존재하는 환자 개개인의 특수성을 고려한 최종 판단은 결국 인간 의사의 몫으로 남는 구조다.
대구가 첨단 의료 도시로 연착륙하려면 장비 도입 속도 경쟁을 넘어,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를 가릴 명확한 기준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 이는 의료진이 신기술을 적극 활용하면서도 정당한 소신을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윤리적 안전망 구축이 필수라는 얘기다.
미래 의료의 성패는 오차 없는 알고리즘의 '계산'과 환자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는 인간 의사의 '책임 의식'이 얼마나 조화롭게 공존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기술은 인간을 돕는 유용한 도구이나, 그 결과에 대한 무거운 책임은 오직 인간만이 질 수 있다는 법의 대원칙은 변함없이 적용될 전망이다.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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