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프=생성형 AI>
대구 의료 현장에 인공지능(AI)이 빠르게 접목되면서 진료의 정밀성과 효율성은 높아지고 있다. 영상 판독은 물론 수술, 응급, 병동 운영까지 활용 범위가 넓어지면서 진료 속도와 정확도도 강화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림자도 보인다. AI 기반 진단과 수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환자 발길이 쏠리면서, 기존 대형병원 집중 현상이 더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기술혁신이 의료 수준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지역 의료기관 이용의 균형을 뒤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병원 선택 기준 달라졌다…"AI 가능 여부부터 확인"
5일 영남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대구지역 환자들의 병원 선택 잣대는 확연히 달라졌다. 과거에는 거리나 대기시간, 특정 의료진의 명성에 무게를 뒀다면, 이제는 검사와 치료 과정에 AI가 접목되는지가 중요한 판단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영상 판독, 로봇수술, 정밀방사선치료 분야에선 AI 적용 여부를 확인한 뒤 진료기관을 정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실제 일부 병원에선 외래 상담 단계부터 "AI 판독이 가능한가" "로봇수술을 받을 수 있나"를 묻는 문의가 잦아지고 있다. 병원 이름보다 첨단 진료 환경을 먼저 구비했는지를 따지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환자 이동 경로에도 영향을 준다. 대구 도심은 물론 인근 생활권 환자들에 더해 경북 북부와 서부권 주민들까지 AI 장비를 갖춘 상급종합병원으로 향하는 양상이다. 거리가 다소 멀더라도 더 정교한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중증질환일수록 집중…상급병원 선호 더 뚜렷
이런 경향은 중증질환 진료에서 더 또렷하게 나타난다. 암, 뇌혈관 질환, 심혈관 질환처럼 고난도 치료가 필요한 분야에서는 정밀 영상 분석, 로봇수술, 고도화된 방사선치료 기술이 치료 성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지역 대학병원 등 상급종합병원들은 이미 AI 영상 판독, 수술 보조 체계, 예후 예측 알고리즘 등을 진료 전반에 도입하고 있다. 반면 중소병원은 일부 검사 영역을 제외하면 활용 폭이 제한적인 경우가 적지 않다. 환자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더 많은 곳을 찾게 되고, 이는 상급병원 선호로 곧잘 이어진다.
문제는 이런 양상이 거듭될수록 의료전달체계 전반의 균형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비교적 증상이 가벼운 경증 환자까지 대형 병원으로 몰리면 중증환자의 진료 대기 시간이 늘고 지역 의료기관의 역할도 다소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칠곡경북대병원이 지난해 도입한 '다빈치 5세대' 로봇수술 시스템. AI 기반 실시간 피드백과 원격 참관이 가능한 첨단 기능을 갖춘 이 장비는 국내 두 번째 도입 사례다.<칠곡경북대병원 제공>
◆AI 인프라, 대형 병원에 집중…격차 구조 굳어질 우려
그 배경에는 AI 인프라의 구조적 쏠림 현상이 있다. 장비와 데이터, 인력 등 핵심 자원이 대부분 상급종합병원에 몰려 있다.
우선 장비 도입 비용이 높은 문턱으로 작용한다. 로봇수술 시스템, 양성자 치료기, 고성능 영상분석 솔루션은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에 이르는 투자가 필요하다. 대구에서도 이런 첨단 장비는 주로 대학병원급 의료기관에 집중돼 있다. 유지·보수 비용과 운영 인력까지 고려하면 중소병원이 독자적으로 감당하기엔 부담이 크다.
데이터 격차도 뚜렷하다. AI 성능은 학습 데이터의 양과 질에 크게 좌우된다. 그리고 환자 규모가 큰 병원일수록 다양한 임상 정보를 빠르게 축적할 수 있다. 반면 중소병원은 데이터 확보 자체가 쉽지 않아 AI 활용 범위가 좁고, 기술 고도화에도 제약을 받는다.
전문 인력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의료 AI는 임상의와 데이터 분석가, 시스템 운영 인력이 유기적으로 협업해야 하지만, 이런 인력은 대체로 대형병원과 연구기관에 집중돼 있다. 결국 AI 운용 역량 자체가 병원 규모에 따라 좌우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지역 완결형 의료'와의 긴장…정책 효과 흔들릴 가능성
이런 움직임은 정부가 추진 중인 의료정책과도 맞닿아 있다. 정부는 필수의료를 강화하고, 환자가 거주 지역 안에서 필요한 진료를 마칠 수 있도록 하는 '지역 완결형 의료체계' 구축을 목표로 내세워왔다.
하지만 AI 기술이 상급종합병원 중심으로 확산될 경우, 환자 이동은 더 활발해질 수 있다. 지역 내 의료기관 간 역할 분담을 통해 균형을 맞추려는 정책 방향과 달리, 기술 격차가 환자 집중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구처럼 광역시와 인접한 경북지역이 하나의 의료권을 이루는 구조에선 이 같은 현상이 더 빠르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대구 상급종합병원으로 환자가 집중되면, 경북지역 의료기관은 물론 대구 내 중소병원까지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연쇄효과가 생길 수 있어서다.
◆"기술이 격차 키울 수도"…해법은 '공유와 분산'
전문가들은 AI가 의료 격차를 줄이는 수단이 될지, 아니면 오히려 불균형을 고착시키는 요인이 될지는 결국 활용 방식에 달려 있다고 본다. 개별 병원의 경쟁력 강화 수단으로만 작동할 경우, 대형병원 중심 구조는 더 굳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해법으로는 데이터 공유와 공공 인프라 확충이 비중 있게 거론되고 있다. 병원 간 의료데이터를 연계하고, 검증된 AI 모델을 공동 활용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면 중소병원도 일정 수준의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는 논리다. 원격협진과 결합해 상급병원의 AI 분석결과를 지역병원에서도 쓸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꼽힌다.
AI 장비 도입 지원에 그치지 않고, 데이터 표준화와 성능검증체계를 공공 영역에서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기술 도입 속도에 비해 제도 설계가 뒤따르지 못하면 격차는 더 빠르게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경북대병원 송종흡 전 교수(예학의학과)는 "AI는 의사를 대신하는 기술이 아니라, 의료진 판단을 더 정교하게 돕는 보조수단에 가깝다"며 "다만 이 기술이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배치되느냐에 따라 의료의 흐름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급종합병원에만 장비와 데이터, 전문 인력이 집중되면 환자들은 더 안전하고 정확한 진료를 기대하며 그쪽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며 "결국 지역 중소병원의 역할은 더 위축되고, 의료전달체계도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AI가 의료 격차를 줄이는 실질적인 도구가 되려면 기술 확산 속도만큼이나 데이터 공유, 공공 검증, 지역 병원 활용 기반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송 교수는 전했다.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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