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산 자락 374기 대·소형 고분 장관
조문국 사적지 내 4천800㎡ 작약 꽃단지
고분군 능선과 어우러져 '인생샷' 성지
10대 왕 경덕왕 무덤 현몽 전설 전해와
문익점 후손 목화재배 역사 남아 있어
조문국의 찬란했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의성 탑리리·대리리·학미리 고분군은 이곳이 고대 정치의 중심지였음을 알려준다. 왼쪽은 조문국 10대 왕이었던 경덕왕의 묘인 경덕왕릉.
땅은 자연의 변화와 그곳에서 삶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금수강산이 수십 번 바뀐 뒤라도, 땅을 거닐다 보면 세기를 넘나드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거대한 고분군 사이를 걷다 보면 화려했던 한 시대의 기운이 곁으로 성큼 다가옴을 느낄 수 있는데, 의성이 바로 그런 땅을 가진 지역이다.
의성은 경상북도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어 주변 내륙 지역을 쉽게 오갈 수 있는 교통의 요지였다. 또한 부산과 구미, 서울을 이었던 뱃길과 낙정나루터를 품었던 교역의 도시이기도 했다. 이러한 중요한 위치에 고대 왕국이 들어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삼한시대 진한의 소국이었던 조문국(召文國)의 이야기다. 누구나 의성군 금성면 일대를 거닐게 되면 이곳에 천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신비의 고대 왕국이 건재했음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조문국은 신라 벌휴왕 2년인 서기 185년 신라의 영향권으로 편입됐다는 짧은 기록만 남아 있지만, 이곳 의성 금성면 고분군(지역 주민들은 조문국 사적지라고도 한다)은 문헌이 전하지 못한 조문국의 찬란했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능선을 따라 이어진 탑리리·대리리·학미리 고분군은 이곳이 고대 정치의 중심지였음을 말해준다. 꽃이 화려하게 핀 봄과 여름의 길목, 의성을 찾으면 살아 숨 쉬는 조문국을 만날 수 있다.
의성 조문국 사적지 경덕왕릉. 이 왕릉은 한 농부가 경덕왕이 나와 묫자리를 바르게 하라는 눈 꿈을 꾼 뒤 봉분을 높여 제사를 지냈다는 전설이 전한다.
의성 조문국사적지 고분전시관.
◆고분 곁을 걸으며 전설을 떠올리다
금성산 자락에 분포한 374기의 고분은 크기와 형태가 다양하다. 대형 봉토분부터 중소형 고분까지, 이들은 4세기 후반부터 6세기 중반까지 약 200년간, 이 지역을 지배했던 조문국 후예들의 무덤이다. 발굴 조사를 통해 금귀걸이·은제 허리띠 장식 등 화려한 장신구와 말갖춤새·무기·토기 등이 출토됐으며, 이는 조문국이 상당한 정치·군사적 역량을 갖춘 집단이었음을 보여준다.
고분군 사이를 거닐다 보면 조문국 무인상(武人像)을 만날 수 있다. 이 석상은 발굴된 무기와 마구류를 토대로 조문국 시대의 무인을 형상화한 것으로, 고대 전사의 위엄 있는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무인상 앞에 서면 천 년 전 이 땅을 지켰던 조문국 전사들의 기상이 느껴지는 듯하다. 이 같은 발굴 및 연구 자료를 토대로 2020년, 문화재청은 '의성 금성면 고분군'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55호로 지정했다(2021년 사적 번호 폐지). 5~6세기 삼국 시대 의성 지역을 포함한 경북 북부 지역의 역사·문화와 신라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됐기 때문이다.
고분군 정상에 오르면 조문국의 역사를 품은 금성면 일대의 평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그야말로 노천 박물관이 따로 없다. 조문국의 지배자들은 이곳에서 자신들의 영토를 굽어보며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있다. 그 중 주목해야 할 고분은 현재 고분전시관 바로 뒤편에 위치한 아름다운 경덕왕릉이다. 경덕왕릉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진다.
먼 옛날 한 농부가 참외밭을 마련하기 위해 작은 언덕을 갈고 있었다. 괭이질을 하다 보니 사람이 들락날락 할 만한 큼직한 입구가 보였다. 그곳으로 들어가니 돌로 쌓은 석실이 나타났는데, 석실의 둘레에는 금칠이 돼 있는 것이 아닌가. 석실 가운데는 금소상이 있었으며, 머리에는 금관까지 쓰고 있었다. 농부는 욕심에 금관을 벗기려 했는데, 손이 금관에 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이날 밤 의성 현령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나는 경덕왕이다. 무덤을 개수해 봉안토록 해라"하고 일렀다고 한다. 이튿날 의성 현령이 꿈에 보인 곳을 쫓아 당도하니 한 농부가 금관에 손이 붙은 채로 있더라는 것이다. 현몽이 사실임을 깨닫고, 봉분을 높여 제사를 지냈다는 전설이다.
의성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과거 경덕왕릉이 있던 자리가 오극겸이라는 사람의 외밭이었으며, 그의 꿈에 금관을 쓰고 조복을 한 백발노인이 나타나 자신이 경덕왕이니 "나의 무덤 자리에서 원두막을 철거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후 영조 원년 현령 이우신이 지방의 유지들과 의논해 묘를 증축하고 하마비를 세웠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전설을 가진 경덕왕은 조문국의 10번째 왕이다.
'봄의 전령' 모란이 의성 조문국사적지에 가득 핀 모습. 모란은 4월과 5월 초에 이곳을 가득 메우고 5월 중순부터는 작약에게 그 자리를 내어준다.
◆모란이 지면 작약꽃이 깨어난다
조문국 사적지는 왕의 이야기만큼이나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이 있다. 수많은 고분에 헌화라도 하듯, 매 계절 새로운 꽃들로 꽃 천지가 된다. 조문국 사적지는 최근 사계절 내내 꽃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문화유산 공원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봄에는 모란과 작약이, 여름에는 백일홍과 해바라기가, 가을에는 국화가 고분군을 수놓으며 역사와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풍경을 선사한다. 봄의 전령인 모란이 4월과 5월 초를 책임진 뒤 5월 중순부터는 작약의 계절이 시작된다. 의성군은 조문국 사적지 내 4천800㎡ 규모의 작약 단지를 조성해 매년 5월이면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작약은 모란과 닮았지만 더욱 섬세하고 우아한 자태를 지닌 꽃으로, 고분군 중앙에 자리한 작약 꽃단지에는 산책로와 쉼터가 조성돼 있어 방문객들이 천천히 거닐며 꽃의 향기와 역사의 숨결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특히 초록의 초원과 노송, 그리고 봉긋하게 솟아오른 고분군과 어우러진 작약꽃 풍경은 이곳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작약꽃은 개화 후 2주간이 가장 붉고, 아름답다고 한다. 꽃이 크고 화려해 함박꽃이라고도 불린다. 작약꽃 고분 트레킹은 연인과 가족 단위 모두에게 인기 있는 여행 코스다. 어디에 서서 찍어도 인생샷을 건질 수 있다.
역사의 숨결과 아름다운 꽃의 향기를 한눈에 담고 싶거나, 한 컷으로 남기고 싶다면 사적지 내에 있는 2층의 팔각 전망대에 오르는 것을 추천한다.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 선생의 면작기념비. 문익점 선생의 후손들이 의성으로 이주해 목화 재배를 확산시키고 선조의 공을 기리기 위해 면작비를 세웠다.
◆의외의 역사를 만나는 반가움, 문익점 면작기념비
모란의 여운을 채우듯 더 화려하게 펼쳐질 작약꽃은 과거 의성에서 약초로 많이 재배됐던 식물이라고 한다. 식물학자들이 작약꽃 품종을 얻기 위해 의성을 찾기도 했을 정도다. 약초로는 꽃이 아닌 뿌리를 사용했는데, 여성질환에 효과가 있고, 결혼식 부케로도 많이 쓰여서 의성 작약꽃이 한때 유명했다. 아무래도 의성 땅은 마늘이며 작약까지, 식물이 잘 생장하는 땅인 듯하다.
그 증거를 조문국 사적지를 거닐다 우연히 의외의 인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조문국 사적지를 걷다보면 고려 말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文益漸, 1329~1398) 선생의 면작기념비와 마주한다. 문익점 선생의 고향은 경남인데, 왜 의성의 조문국 사적지에 그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을까? 이는 문익점의 자손들이 의성 땅에 정착해 목화 재배를 시작한 역사와 관련이 있다. 문익점 선생은 1363년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가져온 후, 고향인 강성현(지금의 경남 산청군 단성면)으로 내려가 3년의 노력 끝에 재배에 성공했지만, 보급이 빨리 되지 않았다.
이후 문익점 선생의 손자 문승로가 의성 현감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후손들이 의성 지역으로 이주해 이곳에서 목화 재배를 확산시킨 것이다. 그의 후손들은 조상의 공적을 기리고자 의성 목화 재배지에 비문을 짓고 문익점 목면 유전비를 세웠으며, 이후 현 위치인 금성면 대리리 조문국 사적지에 별도의 기념비인 '문익점 면작 기념비'를 건립했다. 문익점 선생이 목화를 전래한 역사적 의의와 그 후손들이 의성에서 목화 재배를 발전시킨 과정이 기록돼 있다.
이 기념비는 조문국이라는 고대 역사와 고려 말 문익점이라는 중세 역사가 한 공간에서 만나는 독특한 역사적 장소성을 부여한다. 목화는 조선시대 의생활 혁명을 가져온 작물이었다. 이전의 백성들은 주로 삼베나 모시를 입었는데, 목화로 실용적인 무명옷이 보급되면서 서민들의 생활이 크게 개선됐다. 의성은 이러한 목화 재배의 확산지였던 것이다. 아주 오래전, 모란과 작약꽃 대신 하얀 목화꽃으로 뒤덮였을 의성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의성군은 조문국 사적지 내 4천800㎡ 규모의 작약 단지를 조성해 매년 5월이면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고분군 중앙에 자리한 작약 꽃단지에는 산책로와 쉼터가 조성돼 있다.
◆5월엔 의성에 오라
역사와 꽃이 공존하는 여행지. 의성 조문국 사적지는 단순히 옛 유적을 보존하는 공간이 아니라, 역사와 자연 그리고 현대의 문화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역사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고대 왕국의 흔적을, 꽃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사계절 꽃의 향연을,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는 자연 속 힐링의 시간을 선사하는 공간이다. 가족 혹은 연인과 함께 거닐다가 조문국 속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고 싶다면 조문국 사적지 내에 있는 고분 전시관을 들러보자.
대리리 2호분의 발굴 조사를 끝낸 후 무덤 내부를 볼 수 있게 전시된 곳으로 신비한 고대 왕국의 비밀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조문국의 역사는 이처럼 과거형이 아니라 고분과 유물을 통해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현재형이다. 전혀 다른 세기가 한 공간에서 만나는 가슴 뛰는 생생한 경험을, 천 년 전 고대 왕국 조문국을 통해 만나보아도 좋을 듯하다.
글=박성미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 - 의성조문국박물관>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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