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144년의 시간, 하나의 울림

  • 이지은 CFA건축사사무소 대표
  • |
  • 입력 2026-05-12 10:17  |  수정 2026-05-15 09:00  |  발행일 2026-05-13
이지은 CFA건축사사무소 대표

이지은 CFA건축사사무소 대표

며칠 전 신문에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드디어 완공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순간 오래전 대학 시절, 배낭 하나 메고 바르셀로나 거리를 걸어가던 내가 떠올랐다. 공사 중인 성당은 거대한 크레인과 비계에 둘러싸여 있었고, 첨탑은 하늘을 향해 미완의 손길처럼 뻗어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한참을 서성이며 '이 성당은 언제쯤 완성될까' 생각했었다. 그 질문이 세월을 건너 이제야 답을 얻는다니, 묘한 울림이 가슴에 번졌다.


1882년 첫 삽을 뜬 이후 144년.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이 성당은 전쟁과 경제난, 시대의 변화를 견뎌내며 한 세기를 훌쩍 넘어 완성의 순간을 맞는다. 한 사람의 생애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시간, 그러나 수많은 장인들의 손길이 이어져 결국 하나의 건축으로 빚어졌다. 기다림이야말로 이 성당의 재료였던 셈이다.


오늘 우리의 일상은 그 기다림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영화 한 편을 차분히 보기보다 짧은 요약본을 찾고, 드라마는 2배속으로 감상한다. 온라인 쇼핑에서는 '오늘 주문, 내일 도착'이 당연해진 시대라 배송이 하루만 늦어도 불만이 터져 나온다. 속도와 효율이 미덕이 된 시대에 인내와 기다림은 희미해진 가치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묵묵히 말한다. 기다림은 결코 헛되지 않다고.


가우디는 성당의 완공을 보지 못했지만, 그는 건축을 '시간과의 협업'이라 여겼다. 자연의 곡선과 빛을 담아낸 그의 설계는 단숨에 완성될 수 없는 것이었다. 오히려 긴 세월이 작품의 일부가 되었고, 그 과정 자체가 성당의 영혼을 빚어냈다. 기다림은 단순히 결과를 미루는 행위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힘이다.


문화와 예술은 언제나 인내를 필요로 한다. 장인이 수십 년을 바쳐 완성한 도자기, 세대를 이어 지켜온 전통 공연, 그리고 144년 만에 완공되는 성당까지…모두 기다림 속에서 빛을 발한다. 기다림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성숙과 깊이를 만들어낸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완공은 단순한 건축의 완성이 아니다. 그것은 긴 시간의 축적이 남기는 울림을 다시금 일깨우는 사건이다. 잠시 멈추어 서서, 시간이 만들어내는 깊이를 되새겨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는 길일 것이다. 빠름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도 이러한 기다림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 과정은 우리를 더 단단하게 하고, 인내는 결국 아름다움을 빚어낸다. 긴 세월을 견뎌낸 성당처럼, 그 울림은 우리 삶에도 오래도록 깊은 흔적을 남긴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생활/문화인기뉴스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