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장미의 역설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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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5-12 21:32  |  발행일 2026-05-13

대구의 5월은 장미 향기로 일렁인다. '꽃의 여왕' 장미가 대구 도심을 수놓는다. 오는 15~17일 달서구 이곡장미공원에선 '장미꽃 필(Feel) 무렵'이라는 축제도 열린다. 수많은 꽃잎이 중심을 향해 소용돌이치듯 감겨 있는 장미는 기하학적 완벽함을 자랑한다. 장미는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최고의 가치를 상징해왔다. 고대 로마에선 승리와 향락의 정점이었고, 중세 기독교에선 순교자의 피와 순결을 상징했다. 영국에선 피비린내 나는 장미 전쟁을 거쳐 국가의 문장이 되기도 했다. 장미의 매력은 화려한 자태에만 있지 않다. 꽃잎 뒤에 숨겨진 날카로운 가시가 왕관의 무게를 더한다.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꽃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선거판에선 부정적인 수식어로 쓰인다. '장밋빛 공약'이나 '장밋빛 청사진' 같은 말이 붙는 순간 '허구의 기호'로 전락한다. 화려한 미래상만 강조하고 이면의 비용, 갈등이라는 어두운 뒷면을 의도적으로 생략한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장미의 본질은 '꽃과 가시의 공존'인데, 장밋빛이라는 단어에는 가시가 빠져 있다. 기호학자이자 철학자인 움베르토 에코는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지난날의 장미는 이름으로 존재하나, 우리에게 남은 것은 빈 이름뿐이다"라고 적었다. 에코의 통찰을 선거에 대입하면 구체적인 로드맵이라는 가시 없는 공약은 '덧없는 이름'에 불과하다.


지방선거를 맞아 대구에도 화려한 공약들이 난무하고 있다. 후보들이 내놓는 장밋빛 청사진에 현실성이라는 가시가 잘 보이지 않는다. 가시 없는 장미가 생명력 없는 조화(造花)에 불과하듯 실체 없는 공약은 유권자들을 기만하는 수사(修辭)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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