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우리가 가르치지 않은 감각, 후각이 아이를 깨운다

  • 장순정 쿤스트하우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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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5-18 14:35  |  발행일 2026-05-19
장순정 쿤스트하우스 대표

장순정 쿤스트하우스 대표

보는 법, 듣는 법은 가르치면서도 맡는 법은 가르치지 않는다. 후각은 감정을 읽는 능력이자, 아이가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첫 번째 언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참 많은 것을 가르친다. 글자 읽는 법, 수 세는 법, 그림 그리는 법, 음악 듣는 법. 그런데 정작 단 한 번도 가르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향을 알아차리는 법'이다.


어릴 적, 나는 금강유치원 뒤편 산길을 자주 혼자 걸었다. 좁은 길 양옆으로 풀이 무릎까지 자라 있었다. 눈을 감고 두 팔을 벌린 채 풀 사이를 천천히 지나가곤 했다. 손끝에 스치는 풀잎의 감촉, 코끝을 채우던 풀 향. 지금 생각해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감각들로 세상을 깊이 저장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후각이 열리면 아이는 세상을 한 겹 더 깊이 읽는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어떤 감정 속에 있는지도 알아가기 시작한다.


후각은 다른 감각과 다르게 작동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은 인지 과정을 거쳐 해석되지만, 냄새는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편도체와 해마로 곧장 전달된다. 그래서 향은 생각보다 먼저 몸에 닿는다. 부모가 끓여주던 된장찌개 냄새를 문득 맡는 순간, 몸은 저절로 가장 따뜻했던 시간 속으로 미끄러진다. 이것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다. 후각은 말로 꺼내지 못한 감정들을 조용히 드러내 주는 감각이다.


봄비가 막 그친 날이었다. 일곱 살 아이 하나가 강의실 문을 열자마자 코를 킁킁거리며 말했다. "할머니 집 냄새가 나요." 아이에게 봄비는 단순한 날씨가 아니었다. 그리운 사람이었다. 향이 감정의 문을 열어 준 순간이었다.


나는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자주 묻는다. "오늘 오면서 무슨 향 맡았어?" 처음에는 대부분 모른다고 답한다. 당연하다. 그런 질문을 받아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며칠이 지나면 달라진다. "풀 냄새요." "비 올 것 같은 냄새요." 아이들이 길 위에서 향을 모으기 시작한다. 코가 열리면 마음도 열린다. 후각 감수성은 냄새를 잘 맡는 능력이 아니다. 자신의 감정을 감지하고,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를 수 있는 힘이다.


부모가 오늘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것들은 △등굣길에 "오늘 어떤 향 맡았어?" 하고 가볍게 물어보는 것 △계절마다 달라지는 냄새를 아이와 함께 기록해 보는 것 △마음이 힘든 날, 좋아하는 향을 함께 떠올려보게 하는 것 △손끝으로 풀을 스치며 걷는 아이를 굳이 재촉하지 않는 것이다.


손끝으로 풀을 스치며 걷는 아이가 있다면, 그대로 두면 된다. 지금 아주 중요한 것을 저장하고 있는 중이니까.


언젠가 봄비 그친 오후, 혹은 된장찌개 냄새가 퍼지는 어느 저녁, 아이는 문득 맡은 향 하나에 이끌려 가장 따뜻했던 오늘로 돌아올 것이다. 어린 시절의 향 하나가, 훗날 가장 깊은 위로가 되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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