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새미 달서아트센터 공연기획자
극장에서 매일 무대를 지켜보며 깨닫는 사실이 있다.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해도 완벽한 100점짜리 무대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관객이 진짜 감동하는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그 완벽함이 살짝 깨지는 빈틈에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는 클릭 한 번으로 완벽하게 정제된 디지털 음원을 들을 수 있다. 정밀한 편집을 거친 음원은 매끄럽고 결점이 없다. 하지만 그런 음원을 들을 때와, 극장에 앉아 생생한 라이브 공연을 마주할 때의 감동은 전혀 다른 결을 지닌다. 오차 없이 맞춘 최종 리허설보다, 매 회차 연주자의 숨소리와 떨림이 그대로 묻어나는 본 공연이 더 아름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연주자가 감정에 복받쳐 살짝 흔들린 활의 떨림이나 배우의 찰나의 침묵, 객석에서 들려오는 관객들의 숨소리 같은 것들. 차가운 데이터 분석으로 보면 지워야 할 '에러'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그게 더 인간적이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어제의 무대와 오늘의 무대가 결코 같을 수 없다는 그 당연하고 불완전한 생명력이 매번 우리를 극장으로 이끄는 게 아닐까 싶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늘 자신의 빈틈을 감추기 위해 꽤나 필사적으로 살아간다. 남들보다 조금 느린 성격, 매사 철저하지 못하고 어딘가 서툰 모습, 혹은 사소한 순간에 뚝딱거리며 긴장하는 태도들을 지워야 할 단점으로 여기며 스스로를 다그치곤 한다. 하지만 어떤 빈틈은, 그 자체로 그 사람의 고유한 개성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계기는 대개 흔들림 없는 완벽함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람이 가진 약간의 서툰 분위기나 엉뚱함 때문일 때가 많다. 언제나 조금 느리지만 그만큼 다정한 사람, 평소에는 꽤 근사해 보이다가도 어딘가 한구석 허술한 면을 들키고 마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들의 그런 모습은 고쳐야 할 결함이 아니라, 그 사람을 떠올릴 때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짓게 만드는 고유한 무늬가 된다.
결점 없는 인간은 매끄러운 대리석 조각상처럼 아름다울지는 몰라도, 온기를 나누며 함께 산책하고 싶은 대상은 되지 못한다. 만약 세상 모든 사람이 정밀기계처럼 오차 없이만 살아간다면, 그건 그것대로 꽤 지루하고 삭막한 일일 것이다.
각자의 어긋남들이 모여 비로소 '우리'라는 고유한 존재들이 완성된다. 그러니 스스로 쌓아 올린 완벽이라는 벽 뒤에 숨지 말고, 조금은 내 안의 틈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도 좋다. 그 작고 서툰 빈틈들이야말로 타인의 다정한 바람이나 온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여백이 되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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