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짝꿍과 도시락

  • 이형국 대구문인협회 시분과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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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5-24 11:56  |  발행일 2026-05-25
이형국 대구문인협회 시분과 부위원장

이형국 대구문인협회 시분과 부위원장

도시락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도시락 전문업체가 성행하고 있다지만, 내 기억 속의 도시락 문화와는 다르다. 이제 학교에서 급식을 제공하는 변화 과정에 놓여 있다.


어머니가 사랑과 정성으로 만들어 주신 양은 도시락 속 밥과 반찬을 기억하는가. 겨울엔 교실 난로 위에 쌓여 따뜻하게 데워졌던 도시락, 달걀 하나 들어 있으면 일품 도시락, 혹 쇠고기 장조림이 들어 있으면 쟁탈전이 벌어지던 점심시간의 추억이 참 따뜻했다.


중고 시절엔 분식을 장려했다. 교실에서 도시락 뚜껑을 열어놓고 검사받기도 했다. 눈가림으로 쌀밥을 아래에 숨기기도 했다. 반찬은 어떤 날엔 달걀프라이가 밥 위에 덩그러니 얹혀 있기도 했지만, 평상시엔 콩조림이나 콩나물무침 따위였다. 그래도 내 가정 형편에 대비하면 훌륭한 도시락 차림이다. 그런 도시락을 만들어 주려면, 어머니나 어린 동생들은 점심 끼니를 거르거나 맹물을 배부르도록 마시거나 국수로 끼니를 때웠을 게 뻔했다.


나에겐 어머니의 도시락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 여름방학인데도 등교해 자율학습하던 때였다.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 학교에 간다고 말하고는 교회 친구의 집에 자게 된 날이 있었다. 친구가 부모님이 없는 집이 무섭다며 자신의 집으로 가서 같이 자자고 사정, 사정했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지만 우리 집에 전화기가 없으니,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다음날 자율수업 마치기 직전 가까스로 학교에 도착했다. 출석을 점검하지 않기에 문제 될 건 없었다. 학우들 몇몇이 무슨 일이냐며 물었다. 누나가 도시락을 갖고 왔단다. 그러면서 "동생이 오거든 꼭 집으로 가도록 해달라"고 짝꿍에게 당부했다 한다. 짝꿍은 나를 호되게 나무랐다. 짝꿍이었지만 덩치가 나보다 컸다.


우선 배가 고팠다. 도시락통을 열고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꿀맛이었다. 짝꿍은 가방 들고 따라오라고 했다. 우리 집으로 가자고 했다. 무슨 일이냐며 묻기에 자초지종 얘기를 했다. 그는 고개를 끄떡거리더니 집에 가거든 엄마에게 무조건 잘못했다고 해라고 했다. "집에 들어오지 못했으니 배곯았을까 싶어서 도시락 보내신 것 봐라. 그래도 어머니는 너를 믿고 계신 거다. 엄마 마음 아프게 하지 마라"고 그가 말했다.


어른스러운 그의 말은 나의 폐부를 뚫고 들어왔다. 갑자기 생각지도 못하게 눈물이 솟구쳤다. 길가에서 엉엉 소리내어 울고는 터덜터덜 그의 뒤를 따라가서 고개를 푹 숙였지만, 걷잡을 수 없던 마음은 후련하고 평온해졌다.


그는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나를 대신하여 빌며 어머니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 후 나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벗어나 생각이 깊은 장남으로 다듬어졌다. 짝꿍에게 늦게나마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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