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카페 청송의 맛④] 사과막걸리와 사과한과

  • 박관영·김광재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 |
  • 입력 2026-05-26 22:24  |  발행일 2026-05-27
전통음식에 스며든 청송사과…향기에 취하고 달콤함에 녹는다

70년 전통 향토뿌리기업 청송양조장

사과즙 더한 전통주, 젊은층 입맛 공략

산학연 협력해 맛 변질않는 막걸리 개발

우박 맞은 사과 어떡하나 고민하던 중

사과 조청과 한과까지 뻗은 손예담 대표

온오프라인·명절 상관 없이 꾸준히 인기

전통음식의 맛은 고정되지 않는다.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김장문화가 등재됐지만, 김장김치 맛은 지역에 따라 다르고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서울 김치, 전라도 김치, 경상도 김치가 맛이 다르고 바닷가 김치, 산골 김치가 맛이 다르다. 결구배추가 귀한 19세기로 우리가 간다면 "얼갈이배추로 김장을 담갔네" 할 것이고, 고춧가루가 흔하지 않은 18세기로 간다면 "김장김치가 백김치네" 할 것이다. 전통음식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음식 만드는 사람들이 더 좋은 재료로 더 좋은 맛을 내려고 노력한 덕분이다. 그렇게 새로운 전통의 맛이 만들어지고 다음 세대로 전해진다.


지금 산소카페 청송에서는 전통음식의 맛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까? 여러 음식에서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겠지만, 먼저 눈길이 가는 것은 '청송사과와의 만남'이다. 1990년대 이후 청송이 사과 주산지로 자리 잡고, 청송사과가 2013년부터 13년 연속 대한민국 브랜드 대상을 수상할 만큼 20~30년 사이 큰 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버스정류소에, 가로등에, 현수막에, 포장지에, 눈길 가는 곳에는 늘 사과 그림이 있고, 해마다 사과축제에는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사과를 빼놓고 청송 사람들의 일상을 얘기할 수는 없을 정도가 됐다. 음식 만드는 사람들이 사과를 다시 보게 되고, 사과의 맛은 예부터 만들어 먹었던 음식들에도 스며든다. 그렇게 새로워진 맛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은 대표적인 전통음식이 사과막걸리와 사과한과다.


1949년 문을 연 청송 양조장. 사무실 지붕 위에는 커다란 옹기들이 놓여있고 거기에는 흰 페인트로 세무서에서 주세를 매기기 위한 검정 날짜가 적혀있다.

1949년 문을 연 청송 양조장. 사무실 지붕 위에는 커다란 옹기들이 놓여있고 거기에는 흰 페인트로 세무서에서 주세를 매기기 위한 검정 날짜가 적혀있다.

◆청송양조장 '청송 주왕 사과막걸리'


부남면사무소 옆에 청송양조장이 있다. 양조장 사무실 지붕 위에 놓인 커다란 옹기들에는 흰 페인트로 용량과 날짜가 적혀있다. 세무서에서 주세를 매기기 위한 검정을 한 기록이다. 가장 오래된 것은 '검정년월일 49. 6. 22.'라고 씌어있다. 현관 옆에는 흰색 플라스틱 말통이 여러 개 쌓여있는데 거기에는 '대전양조장'이라는 글씨와 두 자리 국번의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술독에서 익은 막걸리는 말통에 담겨 짐자전거를 타고 대폿집으로, 들판으로, 장터로, 잔칫집·상갓집으로 배달됐을 것이다. 정우기 대표가 청송양조장의 역사를 간단히 요약해 준다.


"이현리에서 양조장과 옹기도마를 하시던 선대 어른이 1949년에 이곳 대전리에 양조장을 새로 열었습니다. 안동세무서에 당시 기록이 남아있어요. 6·25 전쟁 때는 폭격을 맞아 전소되기도 했지만,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계속했습니다. 제가 물려받은 건 1989년입니다. 그때 이미 막걸리는 내리막길이었고 1990년대 말에는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물려받은 가업을 접을 수는 없다는 자존심으로 지켜왔지요. 양조장만으로는 가계를 유지할 수 없어서 다른 일을 하면서 버텨왔습니다. 2008~2009년쯤에 다시 막걸리 붐이 일어나면서 되살아나더군요. 아, 이게 전통의 힘이고 문화의 힘이구나,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동안 다른 양조장들은 하나둘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죠. 예전에는 부남면에만 양조장이 네 군데 있었고, 청송군에 20여 곳이 있었는데 거의 다 사라졌어요. 청송읍에 있던 청송양조장도 폐업을 해서, 2011년에 대전양조장에서 청송양조장으로 상호변경을 해 지금까지 이어왔습니다."


청송양조장은 2014년 경북도 향토 뿌리기업으로 선정됐다. 청송양조장에서 생산되는 세가지 전통주 사과즙을 넣은 생탁 주산지, 청송 얼음골 동동주, 청송 주왕 사과 막걸리.

청송양조장은 2014년 경북도 향토 뿌리기업으로 선정됐다. 청송양조장에서 생산되는 세가지 전통주 사과즙을 넣은 생탁 주산지, 청송 얼음골 동동주, 청송 주왕 사과 막걸리.

2014년 경북도 향토 뿌리기업에 선정된 청송양조장에서는 세 가지 전통주를 생산하고 있다. 지금은 사과즙을 가미한 청송 주왕 사과막걸리가 가장 많이 팔린다. 사과 맛이 막걸리 특유의 텁텁함을 잡아줘 젊은이들과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관광객들이 주왕산에 와서 사과막걸리 맛을 보고 가는 길에 양조장에 들러 구입해 가거나 택배 주문을하는 사람들이 많다. 국산 일반미로 빚은 생탁 '주산지'는 옛날 막걸리의 깊은 맛을 찾는 애주가들이 좋아하고, 청송 얼음골 동동주는 특히 이 술만 찾는 마니아들이 제법 있다고 한다.


"사과막걸리는 2004년 제1회 청송사과축제에 축제용으로 처음 만들었습니다. 사과즙과 막걸리를 섞어서 바로 마시면 맛이 좋은데 섞은 상태로 두면 곧 맛이 변합니다. 그래서 대구가톨릭대, 우리 양조장 그리고 청송군이 산학연협력으로 사과막걸리 개발에 나섰습니다. 2010년에 연구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만들어보니 맛은 좋았는데, 유통 과정에서 맛이 변하는 사례가 일부 있었어요. 그 후 계속 이런저런 시도를 하면서 노하우가 쌓여 적절한 방법을 찾아낸 겁니다. 그리고 사과즙이 들어간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바탕 술이 좋아야 제대로 맛이 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청송 주왕 사과막걸리는 2024년 지역문화박람회 전국막걸리대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사과막걸리는 2004년 제1회 청송사과축제에 축제용으로 처음 만들어졌다. 2024년 지역문화박람회 전국막걸리대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청송 양조장 자동화 생산라인.

사과막걸리는 2004년 제1회 청송사과축제에 축제용으로 처음 만들어졌다. 2024년 지역문화박람회 전국막걸리대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청송 양조장 자동화 생산라인.

청송양조장은 이제 3대로 물려주는 과정에 있다. 정우기 대표의 아들 정종현씨가 농업법인 청송도가를 설립해 지역특산주, 프리미엄 소주 등 전통주 개발에 나서고 있다. 정 대표는 "우리 양조장이 이웃들과 함께 공동체와 함께 이 자리를 지켜온 것처럼, 다음 세대도 전통을 이어 더 발전시켜 나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은은한 청송사과의 맛과 향이 베어있는 손예담 한과는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는 느낌이 일품이다. <손예담 제공>

은은한 청송사과의 맛과 향이 베어있는 손예담 한과는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는 느낌이 일품이다. <손예담 제공>

◆청송사과한과 '손예담'


'손예담'은 청송사과 한과를 만드는 회사다. '손예담'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김성연 대표는 '손으로 정성들여 만들어 담았다'고 설명한다. 전통한과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이거 맨날 하던 이야기라서" 하면서 얘기를 시작한다. "귀촌해서 사과농사를 짓는데, 우박 피해를 입었어요. 우박 맞은 사과를 팔 수도 없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사과조청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사과조청은 판매가 많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이 조청을 또 어떻게 할까 하다가 한과를 만들었는데 다행히 군민들이 드셔보시고 맛있다고 해서 용기를 냈습니다."


김 대표는 어릴 적 어머니가 유과 만들 때 반대기(유과바탕)를 기름에 넣으면 꽃처럼 화르륵 일어나는 걸 보고 신기해 했을 뿐, 한과 만드는 법은 몰랐다고 한다.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하고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하고는 또 다르잖아요. 농업기술센터에서 여러 군데 견학도 데려가 주시고, 개인적으로도 여기저기 찾아가서 기술을 배워나갔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야에는 굉장히 민감한 부문이 있어요. 이 집에서는 이렇게 가르쳐주고 저 집에서는 저렇게 가르쳐 줘요. 그걸 일단 받아들이고 직접 해보면서 제 나름대로 기술을 다듬어 왔습니다."


김 대표는 그 동안 사과조청, 파뿌리조청, 파프리카현미과자 등 3가지 특허를 획득했다. 2015년 대한민국 향토제품 마케팅 대상에서는 명절식품 부문 대상(농식품부장관상)을 수상했다. 또 농촌진흥청 농산물가공경진 최우수상, 농산물품질관리원 신지식농업인 표창, 6차산업활성화 경북도지사 표창 등을 받았다.


손예담의 청송애 유과는 명절이 아닌 시기에도 꾸준히 판매된다. 소노벨 청송 등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다.

'손예담'의 '청송애 유과'는 명절이 아닌 시기에도 꾸준히 판매된다. 소노벨 청송 등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다.

사과로 만든 손예담의 '청송애 유과'는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는 느낌이 일품인데다 은은한 청송사과의 맛과 향이 배어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맛있는 한과는 처음 먹어본다며 칭찬한다. 그런 칭찬이 소비로 이어져 손예담은 명절이 아닌 시기에도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오프라인 판매는 경북농업 6차산업 안테나숍, 청도 새마을휴게소, 소노벨 청송 등에서, 온라인은 네이버플러스스토어, 사이소, 손예담 홈페이지 등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또 코비드 팬데믹 이전까지 활발하게 진행됐던 체험프로그램 참가자들도 든든한 고객들이다.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자원봉사단체가 위문품으로 청송사과한과를 꾸준히 주문하기도 한다.


"이제 조청, 한과 기술이 다 됐다 싶으니까, 몸이 아파서 계속 해나가기가 힘들어요. 머지 않아 그만 둬야 할 것 같은데, 이 일을 이어갈 사람을 못 만나면 어쩌나 걱정입니다." 김 대표는 전통음식문화를 이어가려는 젊은 사람들에게 제도적 지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근래 부각되고 있는 중소기업 승계 단절 문제가 향토6차산업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과농장에 쏟아진 우박'이라는 우연의 씨앗이 '청송사과의 맛이 녹아든 한과'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김 대표의 의지와 노력, 주변 사람들의 도움 그리고 청송군민들의 관심 덕분이다. 김 대표가 인터뷰 들머리에 '맨날 하던 얘기'라며 우박 이야기를 썩 내켜 하지 않았던 것은 청송사과한과가 그저 우연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뜻을 전하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글=김광재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 - 청송군청>


기자 이미지

박관영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