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르다 강을 끼고 축조된 코토르 도시 성벽. 성벽 위로 산책길이 조성돼 있다.
마을 길은 성벽으로 이어졌다. 절벽도 아찔한데, 그 위에 우뚝 성벽을 세웠다. 성벽의 큰 창 아래 이른바 '코토르의 사다리'가 놓여 있었다. 벽과 절벽 사이 좁은 지대에 돌을 쌓아 바닥을 높였고, 그 울퉁불퉁한 돌무더기 위에 사다리가 놓여 있었다. 일행들이 위험해 보인다며 말렸지만 저 너머의 풍경을 포기할 수 없었다. 사다리는 위태롭게 흔들거렸고, 뒤로는 가파른 절벽이었다. 절로 오금이 저렸다. 긴장된 몸을 추스르고 겨우 몸을 틀어 창틀을 넘었다. 벽 하나를 넘었을 뿐인데 완전히 새로운 앵글의 풍경이 펼쳐졌다.
장관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게다. 선명한 삼각형 모양의 코토르 구시가가 한눈에 들어왔다. 찬찬히 살펴보니 골목 모양까지 뚜렷하다. 항공 샷이 없었던 시절의 이 광경은 신의 시야처럼 보였을 법하다. 코토르와 바다의 이 아름다운 조화가 바로 바이런이 말한 땅과 바다의 가장 아름다운 조우였을 것이다. 버나드 쇼도 "내가 천국에 있는 것인가, 혹은 달나라에 와 있는가?"라며 탄성을 질렀던 풍경이란다. 이백(李白)이 말한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즉 인간 세상이 아닌 별천지라는 뜻이겠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성벽 요새에서 내려다본 삼각형의 코토르 구시가. 로브첸 산을 등지고 바다와 강을 끼고 있다.
요새 성벽에서 내려다본 코토르 구시가는 삼각형 모양으로, 로브첸 산을 등지고 바다와 강을 끼고 있었다. 한쪽은 절벽같이 솟은 로브첸 산과 성벽 요새, 또 한쪽은 로브첸 산에서 내려오는 스쿠르다 강, 마지막 한쪽은 코토르 만이다. 도시의 삼각 테두리를 다시 도시 성벽이 둘러싸고 있다. 푸른 바다와 거뭇한 산을 배경으로 붉은 기와지붕이 늘어선 거리는 자연과 인공의 겹겹 호위를 받는 별천지 같았다.
스쿠르다 강을 건너 성내로 들어가는 북문. 정면에 보이는 높은 탑은 성 마리아 교회의 종탑이다.
일찌감치 1979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시가는 네 번의 큰 지진을 겪었는데도 여전히 중세 도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 규모는 유럽의 큰 도시에 비기면 소박하기 그지없다. 구경이 목적이면 한두 시간도 넉넉하다. 하지만 적층된 역사와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제법 발길을 잡는다.
성내를 드나드는 출입구로는 강쪽의 북문과 반대편의 남문, 그리고 주 출입구인 바다 쪽의 시게이트(Sea Gate)가 있다. 시게이트 위에는 유고슬라비아가 코토르를 해방시킨 1944년 11월21일이라는 기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구시가 내부는 작은 광장들이 선처럼 이어진다. 그 작은 광장의 이름을 불러주면 이곳 사람들의 삶이 말을 걸어온다.
성의 주 출입구인 시게이트. 들어서면 가장 먼저 무기 광장(Arms Square)이 나온다.
시게이트를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무기 광장(Arms Square)이다. 이곳은 구시가에서 가장 큰 광장이다. 무기고가 있던 곳이어서 이렇게 불린다. 행정, 사법, 군사 기능이 한데 모여 있었던 도시의 핵심 공간이었다. 현재도 카페, 레스토랑, 상점, 은행이 모여 있는 가장 번화한 중앙 광장이다. 이곳을 대표하는 건축물은 17세기 초에 세워진 시계탑이다. 우뚝 솟은 종탑이 초소 역할을 했고, 적이 침입하면 즉시 무기를 동원할 수 있는 무기고도 이곳에 두었다. 탑 아래에 있는 '수치의 기둥(shame pillar)'도 재미있다. 예전에 범죄자를 묶어두던 기둥이다. 수치심을 유발해 교화하도록 하는 노천 교도소였던 셈이다.
무기 광장의 시계탑. 시계탑 아래에 예전에 범죄자를 묶어 두던 '수치의 기둥'이 있다.
이 광장을 둘러싼 건축물들은 대부분 베네치아 공화국 지배 시기에 지어진 것이다. 15세기 귀족 저택 비잔티 궁전(Bizanti Palace)을 비롯하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이 섞여 있는 다양한 건물들이 있다. 현재 시청으로 사용 중인 프린스 궁전(Prince's Palace)은 서쪽 면 대부분을 차지하는 17세기 건물이다. 베네치아 시기에 총독과 행정 관리들이 업무를 보던 곳이다. 60m 길이의 직사각형 건물이지만 폭은 6m에 불과할 정도로 길쭉하다. 현재는 기념품 가게와 카페 등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 가운데 19세기 초에 만든 나폴레옹 극장(Napoleon Theatre)이 이색적이다. 오랫동안 군사와 행정 중심지였던 이곳에 문화 기능을 담당하는 건물이기 때문이다.
성 트리푼 성당.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등 다양한 양식이 혼합된 코토르의 유일한 가톨릭 성당이다.
무기 광장에서 안쪽으로 2, 3분 들어가면 코토르의 수호성인 트리푼(St. Tryphon)을 모신 성 트리푼 성당이 있다.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등 다양한 양식이 혼합된 코토르의 유일한 가톨릭 성당이다. 정면 파사드에는 황금빛의 코토르 시가지 모형을 들고 있는 성 트리푼의 조각상이 장식돼 있다. 종탑 벽면에는 이 성당의 역사와 연관된 여러 숫자가 새겨져 있다. 왼쪽의 '809'라는 숫자는 이스탄불에서 성 트리푼의 유해를 가져와 안치한 연도이며, '1166'은 현재의 성당이 건축된 연도, '2016'은 마지막으로 복구한 연도를 말한다.
성당 바로 옆의 드라고 궁전(Drago Palace)은 14∼15세기 고딕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고딕식 창과 뾰족한 아치, 정면에 새겨진 용 문장 등, 세속의 귀족 권력이 종교의 권위에 뒤지지 않았음을 과시하는 것 같다. 광장 주위로 주교 저택, 성직자 숙소, 행정 건물 등이 모여 있는데, 성당보다 한층 낮고 소박하여 드라고 궁전과 대비가 됐다.
성 루카 교회. 코토르에서 유일하게 1979년 대지진의 영향을 받지 않은 건물이다.
여기서 골목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가면 작은 교회 두 개가 마주하고 있는 아담한 성 루카 광장이 나온다. 이곳은 특히 정교회 신앙의 중심지이다. 1195년에 건립된 성 루카 교회(Church of St. Luke)는 작고 소박하지만 가톨릭과 정교회가 함께 공존하는 보기 드문 공간이다. 이 교회는 17세기 중반까지 가톨릭 성당으로 사용됐다. 이후 정교회 신도들이 늘어나자 정교회 건물로 바뀌었다. 그러나 가톨릭 제단을 그대로 두어 정교회 제단과 함께 사용하고 있고, 또 가톨릭과 정교회 예배를 동시에 진행하기도 한단다. 특히 1930년대까지 장례와 매장을 이 교회 안에서 치러 코토르 시민의 묘지 역할도 했다. 개인적으로 코토르에서 가장 경건함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코토르에서 유일하게 1979년 대지진의 영향을 받지 않은 건물이란다.
성 니콜라스 교회. 화재로 소실된 교회터에 네오 비잔틴 양식으로 지은 정교회 교회이다.
맞은 편의 성 니콜라스 교회(Church of St. Nicholas)는 1909년 화재로 소실된 교회터에 네오 비잔틴 양식으로 지은 정교회 교회이다. 성 루카 교회와 달리 웅장한 두 개의 종탑과 돔, 정면 상단의 큰 십자가가 눈을 사로잡는다. 내부를 둘러보면 가톨릭 성당과 달리 예수상이나 성모상 같은 조각품이 전혀 없다. 그리스 정교회는 성상 숭배를 금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각상 대신 거대한 그림이 걸려 있다.
도시 성벽 위에서 바라본 코토르 구시가. 멀리 성 니콜라스 교회의 두 개의 종탑과 웅장한 돔이 보인다.
시가지 북쪽의 강변 쪽에는 또 해군 광장(Naval Square)이 있다. 이곳의 대표 건물인 그르구리나 궁전(Grgurina Palace)은 18세기 바로크 양식의 건물인데, 현재는 해양의 역사를 보여주는 해양 박물관(Maritime Museum)으로 사용되고 있다.
브라크젠 궁전 옆의 아치. 이 아치를 통과하면 성벽 요새로 올라가는 입구가 나온다.
구시가에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생활 기능과 관련된 광장이었다. 밀가루 광장(Flour Square)은 과거 곡물이나 밀가루를 거래하던 시장터였다. 이곳의 피마궁전(Pima Palace)은 광장 한쪽 면을 거의 다 차지하는 크고 화려한 바로크 저택으로,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건축됐다. 넓은 석조 계단과 대칭 발코니, 커다란 통창과 정면 상단의 가문 문장 등이 상업으로 일군 피마 가문의 부와 권위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 외에도 이곳에는 부차(Bucha) 궁전 등 중소 규모의 저택과 상인 주택이 모여 있어서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다양한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다.
성 루카 광장에서 골목을 조금 거슬러 가면 우유나 치즈, 버터 등 유제품을 거래하던 시장터였던 '우유 광장'이 나온다. 이곳에는 공공 우물인 카람파나(Karampana) 분수가 있다. 마을의 식수를 공급하던 동네 우물이었던 셈인데, 물을 긷는 주민의 발길이 잦은 곳이라 자연히 유제품 거래도 활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변은 대부분 소규모 석조 주택과 상가로서, 생활 공간의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동네 주민의 삶이 잘 보이는 장소였다.
북문 근처에는 채소나 허브 등을 거래하던 야채 시장 '살러드(Salad) 광장'도 있다. 옛 시장 골목의 분위기가 여전한 곳인데, 18세기 바로크 양식의 브라크젠 궁전이 눈에 띈다. 정문 중앙에는 까마귀가 있는 가문의 문장이 걸려 있고, 궁전 옆에는 사자 문양이 새겨진 벽돌로 만든 바로크 양식의 아치가 있다. 이곳에서 산쪽으로 올라가면 성벽 요새로 가는 입구가 나온다.
성벽 요새길 중턱에 있는 치유의 성모 성당. 1518년 흑사병 퇴치에 감사하며 세운 성당이다.
이처럼 광장마다 고유의 역할과 기능이 있어서 삶의 흔적들을 더듬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광장과 광장을 잇는 올망졸망한 골목길도 정겹다. 그런데 골목 곳곳에 유독 고양이가 많고, 사람들에게 살갑게 군다. 고양이 공원이나 굿즈 등 이곳 주민들의 고양이 사랑도 유별나다.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 당시, 고양이가 쥐들을 잡아먹어 사람들을 지켜주었듯이 지금은 주민들이 고양이를 돌보고 있단다. 성벽 요새 중턱에 있는 '치유의 성모 성당(Church of Our Lady of Remedy)' 역시 1518년 흑사병 퇴치에 감사하며 세운 성당이다. 사람도 고양이도 여유롭고 편안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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