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뫼의 음유시인(音流示人)] AI 시대의 예술가…사람의 예술은 무엇으로 남는가

  • 강한뫼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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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6-11 11:22  |  수정 2026-06-15 19:04  |  발행일 2026-06-12

음유시인(音流示人). 음악을 흘려 당신을 봅니다. 음악이 우리 삶과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소리 너머에 있는 인간의 감정과 시대를 살펴봅니다.


경기 성남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린 인간 vs 로봇 피아노 배틀에서 피아니스트 로베르토 프로세다와 로봇 피아니스트 테오 트로니코가 함께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 성남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린 '인간 vs 로봇 피아노 배틀'에서 피아니스트 로베르토 프로세다와 로봇 피아니스트 테오 트로니코가 함께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는 어떤 작품을 마주할 때 자연스럽게 예술가의 창작 과정을 떠올린다. 예술가가 무엇을 고민했을지, 어떤 질문과 씨름했을지를 상상하곤 한다. 창작 과정을 생각한다는 것은 작품에 담긴 예술가의 사유와 감각의 깊이를 짐작하고자 함이다. 독자는 이를 통해 작품과 예술가를 이해한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 '과정' 자체가 감각적으로는 부재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압축되고 있다. 글을 쓰는 시간, 그림을 그리는 시간, 음악을 만드는 시간이 계속해서 단축되고 있다. 인공지능(AI)은 몇 줄의 문장만으로 이미지를 생성하고, 노래를 만들어낸다.


기술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창작 과정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한다.


얼마나 빨리 만들 수 있는가, 얼마나 많은 결과물을 생산할 수 있는가. 이제 창작 과정은 작품을 예술로 성립시키는 핵심적인 사유의 시간이면서, 동시에 효율성과 생산성의 언어로 설명되고 논의되는 대상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사람들은 AI가 만드는 예술을 '효율적'이라고 말한다. '효율적인 예술'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언제 우리가 예술을 효율성에 놓고 바라보았던가. 그렇게 놓고보니 사람이 만드는 예술은 시간, 에너지, 비용 대비 아주 '비효율적'이다.


작금은 바야흐로 대(大) 효율의 시대다.


과연 이러한 시대에 사람의 예술은 무엇으로 남을 수 있을까.


효율성 앞에 사람의 예술은 불리하고, 반대로 우리가 AI의 결과물을 바라보며 그 제작 과정을 사유와 고뇌, 탐구와 몰입의 시간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그러니 필자는 위 질문에 대한 답을 인간과 AI를 비교해 어느 한 방식의 우열로 말함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만드는 예술은 사람의 방식으로 하는 예술일 뿐이며, AI는 빠르고 효율적인 창작이 가능하다는 것뿐이다. 창작 과정에서 서로 다른 가치의 시간이 병존한다. '사람'이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그리고 필요에 따라 사람의 방식을 택하는 것이고, AI를 활용하는 것이다. 단지 그러한 시대다.


창작에 얼마나 긴 시간을 들였는지, 혹은 얼마나 빠르게 완성되었는지는 작품을 감상하는 데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예술이 종국에 인간의 삶에 남는다는 것은, 오직 작품 자체의 가치로써 증명되어야 하는 일이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AI 로봇. 효율성이라는 기준 앞에서 사람의 예술은 불리하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는 AI의 결과물을 바라보며 그 창작 과정을 사유와 고뇌, 탐구와 몰입의 시간으로 이해하지도 않는다. <게티이미지뱅크>

피아노를 연주하는 AI 로봇. 효율성이라는 기준 앞에서 사람의 예술은 불리하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는 AI의 결과물을 바라보며 그 창작 과정을 사유와 고뇌, 탐구와 몰입의 시간으로 이해하지도 않는다. <게티이미지뱅크>

사람들은 오랫동안 예술가를 특별한 감수성과 태도, 그리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존재로 이해해 왔다. 이러한 인식과 기대는 예술의 가치와 함께 우리 삶 속에 깊이 자리 잡아 왔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예술가에게 무엇을 기대해 온 것일까.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며 새로운 작품을 찾고, 또 예술가의 다음 작업을 궁금해하는 것일까.


어쩌면 바로 이러한 질문 속에, 사람이 만드는 예술이 계속해서 그만의 가치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근거가 있지 않을까.


◆비효율, 시간을 통과해야만 하는 인간 예술가


본디 예술은 제작과 유통, 소비의 전 과정에서 효율로 설명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어떤 예술이든 많은 시간과 집중을 필요로 한다. 수 시간을 붙들고 완성한 몇 초의 장면, 며칠을 고민해 적은 한 줄의 문장, 몇 년에 걸쳐 다듬은 음악 한 곡. 때로는 이미 완성된 작품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기도 하고, 자기밖에 모를 작은 차이를 위해 오랜 시간을 들이기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또 곧바로 소비되지도 않는다. 어떤 작품은 발표 직후보다 수십 년 뒤에 더 많은 사람에게 읽히기도 하고, 어떤 예술가는 시대를 떠나 조명되기도 한다.


인간의 창작은 본질적으로 많은 우회를 포함한다. 생각하고, 연구하고, 의심하고, 폐기하고, 다시 시도한다. 보물을 찾듯 수많은 가능성을 실험하고, 선택하고, 선택한 것들을 또 의심한다. 예술가는 어쩌면 허비하는 듯한 시간을 자처한다. 그러다 비로소 어떤 지점을 발견한다. 그마저도 완성이라기보다, 비로소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된 상태에 가깝다.


우회하는 가운데 인간 예술의 고유함이 피어난다. 자신만의 감각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려는 자문자답의 과정 속에서 고유함이 만들어진다. 다른 예술가와 차이를 고민하고, 세상에 없는 소리를 찾아 헤매고, 자신의 경험 안과 밖을 끊임없이 오가며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


사람이 만드는 예술이 비효율적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이 최근의 일이다. 단지 짧은 시간에 결과물을 만드는 효율적인 AI의 등장에, 인간의 손으로 한땀 한땀 빚는 창작 과정이 그리 설명되기 시작한 것이다. 언제나 사람은 오랜 시간을 들여 길을 찾아다녔고, 그렇게 예술을 해왔다.


예술가의 시간은 낭비가 아니라 탐색이고, 우회는 실패가 아니라 발견의 방식이다. 인류는 예술가의 방황을 존중해 왔고, 그 시간 끝에 도달한 작품이라는 형태의 세계를 기다려 왔다. 사람들은 예술가의 비효율적인 시간을 예술의 일부로 받아들여 왔다.


베토벤이 악상 떠오를 때마다 남긴 스케치 악보. 제9번 교향곡 피날레에 사용된 환희의 송가 선율 스케치. <바다출판사 제공>

베토벤이 악상 떠오를 때마다 남긴 스케치 악보. 제9번 교향곡 피날레에 사용된 '환희의 송가' 선율 스케치. <바다출판사 제공>

◆'변화'를 기대받는 사람


AI가 음악을 만드는 시대를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연주자의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만약 AI가 악보를 완벽하게 해석하고 인간과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의 연주를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연주자에게 무엇을 기대해야 할까.


흥미롭게도 이 질문은 음악 감상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되묻게 만든다.


종종 음악에 대한 감상평을 나눌 때면 해석보다 오답 노트를 작성하는 듯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템포가 빠른지 느린지, 실수는 없었는지, 자신이 좋아하는 명반과 얼마나 비슷한지를 비교한다. 연주자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무엇을 들려주고자 했는지, 그 해석이 나에게 어떤 감각을 남겼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의외로 적다.


물론 완성도는 중요하다. 그러나 완벽한 재현이 예술의 목표라면 AI는 인간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 서 있다. 그리고 AI가 아니라도, 이미 우리는 레코딩 기술을 통해 언제든 완벽하게 보존된 명연주를 반복해서 들을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공연장을 찾고 사람의 연주를 찾을까.


여러 이유들이 있지만, 그중 하나는 '달라짐'을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 인간이 나이를 먹어가며 달라지는 변화 말이다. 어떤 경험이 소리에 스며들었는지,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무엇을 이제는 발견하게 되었는지, 우리는 그것을 두고 '완숙해졌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그 완숙함에 이르기까지 쌓아온 비효율적인 시간의 가치를 우리, 사람이 안다.


그렇게 어떤 연주자의 오늘의 소리, 그리고 그것에 이르기까지 쌓은 '변화'의 역사를 체감하는 것. 사람의 연주가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경기 성남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린 인간 vs 로봇 피아노 배틀에서 피아니스트 로베르토 프로세다와 로봇 피아니스트 테오 트로니코가 함께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 성남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린 '인간 vs 로봇 피아노 배틀'에서 피아니스트 로베르토 프로세다와 로봇 피아니스트 테오 트로니코가 함께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예술을 읽는 사람


사람이 만드는 예술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시간을 빚어 인생을 세운다.


예술가의 방황을 존중하고 작품을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삶이 시간의 축적 위에 세워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시간을 들여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존재이며, 그렇기에 타인의 시간의 가치를 이해하는 것이다.


예술가가 진정 걱정해야 할 것은 AI의 존재가 아니다. 효율과 속도만을 중시하는 현대사회 패러다임 속에서 예술가의 시간을 이해하는 사람을 잃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예술가는 사람답게 할 수 있는 사유와 탐구, 고뇌의 과정을 더욱 깊이 하여 특별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 사람의 예술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것으로 사람의 방식으로 차이와 고유한 가치를 보여주어야 한다.


지극히 사적이고 은밀한 시간을 통과한 예술 작품과, 이를 읽어내고, 존중하는 사람이 있는 한 우리, 사람의 예술은 인류와 함께 존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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