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지영씨가 친구들과 일상을 공유하고 있는 셋로그 그룹. <독자 제공>
직장인 김지영(대구 수성구·28)씨는 요즘 친구 2명과 '셋로그'(setlog)를 하는 재미에 빠져 있다.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꾸준히 이용하고 있다. '셋로그'란 일상을 시간 단위로 간단하게 공유하는 폐쇄형 SNS 앱이다. 매시간 울리는 알림에 맞춰 이용자가 2~3초짜리 짧은 영상을 찍어 올리는 식이다. 영상은 그룹에 초대한 친구만 볼 수 있다. 그룹 최대 인원은 12명이다.
셋로그를 애용 중인 이유에 대해 김씨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피곤해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기존 SNS는 가깝지 않은 지인과도 가볍게 친구를 맺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어서, 계정에 300여명의 팔로워(follower)가 있어요. 그러다보니 게시물을 올릴 때마다 남이 내 일상을 어떻게 볼지 신경 쓰게 되더라고요. 사진 한 장을 올려도 괜히 평가받는 기분이 들 때가 있죠. 이 앱은 친한 친구들이랑만 일상을 공유할 수 있어 마음이 편합니다."
소수의 지인과만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폐쇄형 SNS'가 새로운 소통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공개성과 확장성을 앞세운 기존 SNS와 달리, 친밀한 관계 중심의 소규모 네트워크와 꾸밈없는 콘텐츠를 지향한다. 이 때문에 기존 SNS에 대한 피로감이 커진 젊은 세대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달 급상승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셋로그 사용자는 131만명 늘었다. <모바일인덱스 제공>
◆인스타 지친 MZ서 입소문…팔로워·좋아요 없는 '폐쇄형 SNS'
스타트업 '뉴챗'이 만든 셋로그는 지난해 말 출시 사흘 만에 누적 다운로드 1만4천건을 기록한 데 이어, 3개월 만에 이용자 수 4만5천명을 돌파하며 애플 앱스토어 1위에 올랐다. 지난 4월 안드로이드 버전이 공개된 뒤에는 앱 이용자 수가 더욱 급증했다. 지난 5일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에 따르면, 지난달 셋로그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778만명에 달한다.
처음에는 1020세대 중심으로 유행이 확산했지만, 최근에는 직장인과 기혼자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을 타고 있다. 연령별 이용자 비중은 20대가 45.1%로 가장 높았고, 그 뒤로는 10대 이하가 23.6%, 30대가 22.5%를 차지했다.
셋로그 활용 방법. 앱 내에서 실시간 촬영한 2~3초의 영상을 그룹에 업로드하면 된다. <셋로그 캡처>
셋로그는 잘 꾸민 사진과 영상을 공개적으로 게시하는 기존 SNS와는 성격이 다르다. 인스타그램이나 틱톡이 편집된 콘텐츠 중심이라면, 셋로그는 앱 내에서 실시간 촬영한 영상만 업로드할 수 있다. 별도의 보정이나 편집이 불가능하다. 발신자와 수신자만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는 암호화 방식을 사용해, 그룹 멤버 외에는 영상과 메시지를 볼 수 없도록 설계돼 있다. 알고리즘 추천도, 팔로워도, '좋아요' 수도 없다. 이 때문에 이용자들은 맨얼굴이나 식사 장면, 출퇴근길 풍경 등 날것의 일상을 친한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공유할 수 있다. 앱은 하루 동안 쌓인 영상을 이어 붙여 일상 브이로그(V-log) 형태로 자동 완성해준다.
소수의 지인과만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폐쇄형 SNS'가 새로운 소통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미지(조현희)=생성형AI>
◆날것의 B급 일상 공유…잘 나온 사진 고를 필요 없어 부담 無
셋로그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인스타그램의 '보여주기식 문화'에 대해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직장인 장모(33)씨는 인스타그램에 하루 50번 넘게 접속할 정도로 SNS에 몰두했다. 여행이나 외출을 하면 사진부터 찍었고, 얼굴이 나온 사진은 보정을 꼭 거친 뒤 업로드했다. 게시물을 올린 뒤에는 '좋아요' 수를 반복해 확인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스타그램은 즐거움보다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평범한 일상조차 완성된 콘텐츠처럼 꾸며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다. 장씨는 "지금 생각해보면 일상을 즐기기보다 보여주기 위해 살았던 것 같다"며 "셋로그는 굳이 잘 나온 사진을 고를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부담이 적다"고 했다.
인공지능(AI)의 확산도 영향을 미쳤다. AI를 활용해 누구나 손쉽게 정교한 이미지와 영상을 만들 수 있게 되자 소비자들은 기술로 연출된 결과물보다 꾸미지 않은 현실성에 가치를 두기 시작했다. 김씨는 "요즘은 AI로도 사진이나 영상을 쉽게 만들 수 있고, 온라인상에도 그런 콘텐츠들이 넘쳐나 웬만한 콘텐츠에 무감각해진 것 같다"며 "친구들이 올린 흐릿한 영상이나 떨어지는 별거 아닌 B급 기록이 더 재미있다"고 말했다.
그룹 에스파의 카리나는 무대 뒤의 일상을 1시간마다 몇 초의 영상으로 기록해 팬들과 공유했다. <버블 캡처>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다보니 최근에는 연예인들도 셋로그를 활용하거나 무대 뒤 일상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그룹 에스파의 카리나는 최근 멧갈라 참석차 찾은 뉴욕 일정부터 컴백 음악방송 출근길, 사전녹화 현장까지의 하루를 1시간마다 몇 초의 영상으로 기록해 팬들과 공유했다. 레드카펫 위의 완벽한 화보 대신, 흔들리는 차 안과 대기실의 짧은 순간들이 주를 이뤘다. 팬들은 오히려 그런 장면에 더 큰 친밀감을 느꼈다고 반응했다.
셋로그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인스타그램의 '보여주기식 문화'에 대해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미지(조현희)=생성형AI>
◆'비리얼' 수순 밟을까…이용자 확대·수익성 확보 과제
다만 이런 흐름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에도 소비자들은 기존 SNS에 대한 피로감이 커질 때마다 사적인 소통 앱을 찾았다. 2020년 프랑스에서 출시된 '비리얼(BeReal)'은 하루에 한 번 무작위 알림이 울리면 2분 안에 사진을 올리는 방식의 앱이다. 보정과 연출을 최소화하고 있는 그대로의 순간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사랑받아, 한때 일간 활성 이용자 수(DAU) 2천만명을 기록할 만큼 인기를 끌었다. 국내에서도 네이버의 커뮤니티 앱 '밴드'나, 네이버 블로그에서 특정 지인에게만 게시물을 공개할 수 있는 '서로이웃' 기능 등이 꾸준히 이용돼 왔다.
'비리얼(BeReal)'은 하루에 한 번 무작위 알림이 울리면 2분 안에 사진을 올리는 방식의 앱이다. <비리얼 공식 홈페이지 캡처>
셋로그의 인기는 이러한 친밀한 관계 중심 소통 방식이 새로운 형태로 진화한 것으로 분석된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영상 중심 소통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취향 공동체'를 형성하는 또 다른 매개체로 '짧은 영상 형식'을 선택한 것"이라며 "시점별로 영상을 모아 하루를 완성하는 듯한 연출도 이용자 경험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 "타인과 비교하거나 악성 댓글에 노출되는 환경을 차단해 정신적으로 입는 상처를 예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셋로그의 인기가 계속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비리얼 역시 폭발적인 이용자 증가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수익 모델을 찾지 못해 2024년 매각 수순을 밟았다. 셋로그 또한 무료 서비스로 운영되고 있어, 장기간 운영되려면 이용자 확대와 수익성 확보라는 두 과제를 해결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현희
문화팀 조현희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