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지명(地名)이 이상해요] “괴상한 이름 뒤에 숨은 품격”…영덕 괴시리는 왜 ‘괴시’가 됐을까

  • 남두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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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6-20 10:14  |  발행일 2026-06-20
전통 한옥과 토담이 조화를 이루는 영해 괴시마을 전경. 원래 호지촌이라는 지명이 있었지만  괴시라는 독특한 유래를 간직한 채 800여 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남두백 기자>

전통 한옥과 토담이 조화를 이루는 영해 괴시마을 전경. 원래 호지촌이라는 지명이 있었지만 괴시라는 독특한 유래를 간직한 채 800여 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남두백 기자>

영해 괴시리를 처음 듣는 사람들은 으레 한 번쯤 묻는다.


"괴시리? 이름이 왜 그렇게 특이하죠?"


'괴(怪)'라는 발음 때문인지 으스스한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마을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서면 생각은 금세 바뀐다.


경북 영덕군 영해 만세 전통시장에서 차로 약 5분 거리에 위치한 괴시마을은 400여년 역사를 지닌 영양남씨 집성촌으로 오래된 고택이 즐비한 한옥마을이다.


낮은 돌담길과 수백 년 된 고택의 옛 선비마을 분위기는 '괴상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단정하고 품격 있다.


알고 보면 이곳은 고려 말 대학자 목은 이색의 흔적이 깊게 배어 있는 마을이다.


■ 연못 마을 '호지촌', 목은 선생을 만나 '괴시'가 되다


괴시마을의 원래 이름은 '호지촌(濠池村)'이었다. 마을 안에 연못이 많아 붙여진 이름으로 지금도 호지마을 곳곳에는 물길과 습지 흔적이 남아 있어 예부터 물이 풍부했던 지형임을 짐작하게 한다.


현재의 '괴시(槐市)'라는 이름은 목은 이색 선생에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수백 년 세월을 견뎌온 괴시마을의 전통 고택. 기와지붕과 흙담이 어우러진 모습에서 조선시대 양반마을의 품격과 역사를 엿볼 수 있다. <남두백 기자>

수백 년 세월을 견뎌온 괴시마을의 전통 고택. 기와지붕과 흙담이 어우러진 모습에서 조선시대 양반마을의 품격과 역사를 엿볼 수 있다. <남두백 기자>

고려 공민왕 시절, 원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목은 선생은 원나라 한림학사 구양현의 고향이었던 '괴시(槐市)'라는 도시를 보게 된다. 유학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선생은 문득 마을 풍경을 바라보다가 정자나무(회나무)가 울창하고 정승들이 모이던 원나라의 괴시(槐市)를 떠올렸다.


자신의 고향인 호지촌이 그곳이 꼭 닮았다고 여긴 선생이 마을이름을 괴시로 고쳐부르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지명의 기원이 됐다고 한다.


경남 창원에서 친구들과 놀러 온 하정자씨는 "처음엔 귀신을 떠올리며 우리나라 말이 아닌줄 알았다"라며 "괴시라는 단어가 솔직히 호감 가는 어감은 아니지 않느냐"라며 가볍게 웃었다.


■ 괴(槐) 자에 담긴 깊은 뜻… 괴이함이 아닌 '최고의 품격'


한자를 뜯어보면 이 지명이 얼마나 격조 높은지 알 수 있다. 괴시리의 '괴'는 귀신이나 괴물을 뜻하는 글자가 아니라 선비와 학문을 상징하는 '회나무 괴(槐)' 자를 쓴다. 조선 시대 양반 가문에서는 마당에 회나무를 심으면서 학문에 정진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고 한다.


그렇기에 괴시라는 이름은 '회나무가 울창하고 학문과 고결한 선비의 기상이 시장처럼 활발하게 꽃피는 품격 있는 동네'라는 대단히 명예롭고 깊은 뜻을 품고 있다고 보면 된다.


영덕 괴시마을에 자리한 남중심씨(왼쪽)가 자택에서 마을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 . 괴시마을은 고려 말 학자 목은 이색 선생의 탄생지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도 영양남씨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아가고 있다. <남두백 기자>

영덕 괴시마을에 자리한 남중심씨(왼쪽)가 자택에서 마을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 . 괴시마을은 고려 말 학자 목은 이색 선생의 탄생지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도 영양남씨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아가고 있다. <남두백 기자>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남중심씨는"처음부터 여기서 살았기에 별다른 느낌은 없다 "라며 "충북 괴산의 지명도 우리와 같은 괴자를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하지만 대부분의 마을사람들은 예전부터 이곳을 호지마을이라고 지금도 부르고 있다"라고 말했다.


■ "고향을 가장 사랑한 선비"…목은 이색의 흔적 남은 마을 '괴시'


목은 이색 선생은 1328년 호지마을, 지금의 괴시리 무가정(無價亭) 외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고려 말 혼란기 속에서도 학문과 절개를 지킨 대표적 유학자로 정몽주·권근 등 수많은 제자를 길러 내며 우리나라 성리학의 기틀을 세운 인물로 평가받는다.


단정하게 정비된 토담길이 이어지는 괴시마을 골목. 마을 이름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품은 채 오랜 세월 주민들의 삶과 함께해 온 길이다. <남두백 기자>

단정하게 정비된 토담길이 이어지는 괴시마을 골목. 마을 이름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품은 채 오랜 세월 주민들의 삶과 함께해 온 길이다. <남두백 기자>

실제로 괴시마을 주변에는 목은 선생의 자취가 적지 않다. 영덕의 명산인 상대산 '관어대(觀魚臺)'와 동해안의 대표 명소인 '고래불'이라는 이름도 목은 선생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지명을 짓는다는 건 단순히 이름을 붙이는 일이 아니다. 풍경의 의미를 읽고 기억을 남기는 일이다. 영해 괴시리에는 목은 선생이 바라봤던 영덕의 산과 바다 그리고 고향에 대한 애정이 아직도 남아 있는 셈이다.(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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