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숙 새마을문고대구 서구지부평리6동 지도자
고단한 삶 때문이었을까. 어린 시절의 어머니는 삼 남매 중 둘째였던 나에게 유독 말수가 적은 분이었다. 늘 무뚝뚝하게만 느껴졌던 어머니가 달라 보인 날이 있었다. 대구 외곽 이모네 작은 밭에 함께 갔던 날이었다. 밭고랑 사이에 앉은 어머니는 호미를 들고 흙을 일구며, 처음으로 세상 다정한 사람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어린 내 눈에는 삽처럼 보였던 호미를 어머니는 숟가락처럼 가볍게 쥐고, 힘든 내색 없이 흙을 고르셨다. 그때는 몰랐다. 어머니도 참 다정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다만 삶의 무게가 그 다정을 침묵 속에 묻어두게 했다는 것을.
그래서였을까. 박완서의 산문집 '호미'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이유도 그 기억 때문이었다. 꽃과 나무, 텃밭과 흙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책은 단순한 자연 산문에 머물지 않는다. 책장을 넘길수록 한 사람의 생애와 가족의 시간이 조용히 드러난다. 작가는 자신의 지난 삶을 담담하게 풀어내면서도 어머니와 딸, 배움과 자유, 살아낸 시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특히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했던 어머니가 딸에게만큼은 자유롭게 배울 수 있는 길을 열어주려 했던 대목은 오래 마음에 남았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도 자식들을 데리고 나와 삶을 꾸려간 어머니의 선택 앞에서, 같은 엄마인 나 역시 고개가 숙여졌다. 딸이라 해서 배움에서 밀어내지 않고, 총명하면 남녀를 가리지 않고 공부를 시키려 했던 할아버지의 마음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한 아이의 배움 뒤에는 누군가의 결심과 희생, 말없이 건넨 사랑이 있었다.
이 산문집은 큰딸을 향한 고마움과 애틋함, 끝내 다 전하지 못한 사랑의 편지처럼 마무리된다. 그 부분을 읽으며 나 역시 딸을 떠올렸다. 나도 표현이 서툰 엄마다. 사랑하면서도 잘 말하지 못했고,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잔소리를 먼저 한 날이 많았다. 이 책을 덮고 나니 오래 미뤄둔 말들이 마음 한편에서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돌아보니 어머니의 무뚝뚝함 속에도 나를 향한 최선의 사랑이 담겨 있었다. 사랑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표현할 여유조차 없었던 세월이 있었을 뿐이다. 나 또한 완벽한 엄마가 될 수는 없겠지만, 딸에게 친구처럼 곁을 지키는 따뜻한 길잡이가 되고 싶다. 사랑은 거창한 말보다 매일의 수고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지 못한 사랑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알아보고 전할 때 비로소 한 사람의 삶을 오래 데우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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