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 심장소리] 사소한 이야기에 담긴 인생의 깊이

  • 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 |
  • 입력 2026-06-25 17:24  |  발행일 2026-06-26
안녕하세요(오즈 야스지로 감독·1959(2026)·일본)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영화 안녕하세요 스틸컷. 사소한 이야기 속에 관계와 소통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엣나인필름 제공>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영화 '안녕하세요' 스틸컷. 사소한 이야기 속에 관계와 소통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엣나인필름 제공>

"당신이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르건 늦건 결국 오즈 야스지로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고 로저 에버트가 말했다. 오래전,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를 보다가 졸았던 적이 있다. 아무래도 때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오즈의 영화는 나이가 들어야 제대로 보인다. 최근 다시 본 '동경 이야기'(1953)와 '늦봄'(1949)은 그야말로 인생 그 자체였다. 아이들은 자라서 결혼하고, 부모를 떠난다. 부모들은 늙고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난다. 누구나 겪는 삶의 과정들, 그 지독한 삶의 비애를 오즈만큼 잘 그려낸 이가 또 있을까.


올해 재개봉한 '안녕하세요'는 거장 오즈 야스지로(1903~1963)의 영화 중 가장 밝고 경쾌한 코미디다. 1950년대 일본, TV가 제대로 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TV를 보러 이웃집에 들락거리던 아이들이 우리 집도 TV를 사자고 조른다. 당돌하게도 사줄 때까지 말을 않겠다고 '침묵시위'를 한다. 여기에 마을 부녀회원들의 오해가 쌓여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는 이야기다.


사소한 이야기 속에 관계와 소통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TV를 사달라는 성화에 쓸데없는 말 말라고 꾸지람하지만, 아이는 아버지에게 대든다. 쓸데없는 말은 어른들이 더 많이 한다고. "안녕하세요, 날씨 좋지요, 네, 네, 그렇지요." 등이 다 그렇지 않냐고 항변한다. 아이들의 귀여운 반항은 깨달음을 안긴다. 관계를 시작하고, 이어지게 하는 건 결국 그런 쓸데없는 말 덕분이라는 것을 말이다. 언젠가 형식적인 인사를 놓쳐 본의 아니게 실수한 때가 생각났다. 인간관계에는 그렇게 형식도 중요한 것이다.


영화는 사소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와 '방귀놀이'처럼 유치한 내용이 곳곳에 있다. 거장의 작품이 맞나 고개를 갸웃거릴 지경이다. 그러나 "오즈 야스지로의 정점(동경 이야기), 그 다음에 허락된 영혼의 성숙"이란 평에서 보듯, 결코 가볍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다. 거장의 무게를 덜어낸, 재미있고 따스한 이야기다. 관계와 소통은 행복의 필수조건이다. 그것은 결국 "안녕하세요"와 같은 인사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영화의 끝부분이 보여준다. "안녕하세요, 날씨가 좋군요"라며 인사를 주고받는 청춘남녀의 모습이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아름답다. 영화의 엔딩신, 햇빛 속 빨래들이 바람에 따라 팔랑인다. 오즈의 영화를 보고 나면 빨래가 달리 보인다. 일상의 때와 먼지를 깨끗이 세탁하는 빨래는 삶의 소중함을 상징하는 건지도 모른다. 뭔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나 희망인지도.


'동경 이야기'도 '늦봄'도 걸작이지만(개인적으로는 '초여름'(1951)이 가장 좋다), '안녕하세요'는 유독 반짝반짝 빛난다.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두 아이 덕분일 것이다. 그의 영화에 처연함과 쓸쓸함만 있는 게 아님을 확인한다. 마지막 영화 '꽁치의 맛'(1962)에 담긴 지독한 쓸쓸함을 잊을 수 없다. 쓸쓸함과 그리움, 웃음과 슬픔, 모두를 맛볼 수 있는 오즈의 소우주는 인생 그대로를 담고 있다. 사는 게 다 그런 거라며, 마음 깊은 곳을 흔들어 놓고, 영화는 인생이라고 조용히 말한다.


사소한 일상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그의 영화는 단순하고도 깊다. 나이 들수록 갖춰야 할 미덕이다. 아찔할 만큼 급변하는 세상에 살지만, 인간살이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대를 초월하는 고전 명작의 힘이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생활/문화인기뉴스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