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덕률의 세상읽기] 청년과 기성세대, 불신의 강에 다리를 놓으려면

  • 홍덕률 전 대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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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6-29 16:55  |  발행일 2026-06-30
홍덕률 전 대구대 총장

홍덕률 전 대구대 총장

선거는 평소 감춰져 있던 사회의 균열을 드러낸다. 선거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각 정당과 정부, 사회의 주요 기관들이 선거 결과에 담긴 의미를 읽어내려 애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6∙3 지방선거가 드러낸 여러 징후 가운데 필자가 특히 주목해 본 것은 세대간 간극이다. 20∙30대의 투표 성향이 40∙50대와 뚜렷하게 달랐던 것이다.


# 이미 일상화된 세대갈등


물론 이는 6∙3 선거에서 처음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청년층은 민주∙진보 진영에서 이탈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일부는 극우로 치닫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직장과 학교는 물론이고 가정에서도 세대간 불신과 소통 단절, 갈등은 낯설지 않은 현상이 됐다. 이번 선거는 그 불편한 진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을 뿐이다.


물론 세대 갈등은 어느 사회에서나 발견되는 현상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의 세대 갈등이 위험수위를 넘어섰다는 데 있다. '압축적 사회변동'이 일차적 원인일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 정보화를 거쳐 지능정보화까지 구미 선진국들이 수 세대에 걸쳐 겪은 혁명적 변화를 불과 60여년 사이에 압축적으로 경험했다. 이 급격한 변화는 개인에게는 가치관의 혼란과 적응의 고통을, 사회 전체에는 세대간 깊은 간극과 갈등을 남겼다.


또 하나의 요인이 있다. 세대별로 주요 정보에 접근하는 통로가 극명하게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온라인,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이용하는 매체와 콘텐츠가 세대별로 철저히 분절된 것이다. 이른바 '에코 챔버(Echo Chamber)' 현상이 세대 단위로 작동하게 되었고, 그 결과 같은 단어라도 서로 다른 의미로 이해하는 일이 흔해졌다. 예컨대 '성평등'이나 '공정'이라는 단어조차 세대별 이해와 해석이 다른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차이를 초래한 역사적∙기술적 배경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데서 세대간 소통과 이해는 출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차이는 곧장 단절과 불신, 적대로 이어지기 쉽다.


# 기성세대의 성찰과 경청이 먼저다


세대간 이해를 넓히기 위해 먼저 나서야 할 주체는 기성세대다. 하지만 이때 유의할 점이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냈다는 자부심이 청년을 훈계할 자격으로 둔갑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더 어려운 시대를 견뎠다"거나 "청년의 좌절은 의지와 노력 부족 때문이다"라는 식의 태도는 세대간 소통을 가로막을 뿐이다. 오히려 오늘날 청년들을 좌절과 분노로 내모는 사회구조, 예컨대 허울 좋은 민주주의와 산업화∙정보화가 낳은 극단적인 양극화를 직시해야 한다.


친구를 이겨야만 살아남는 입시경쟁, 극심한 취업난, 불공평한 기회구조와 부서진 사다리, 평생 일해도 내집 마련이 불가능한 현실, 결혼과 출산마저 포기하게 만드는 척박한 사회구조 등은 어느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보수든 진보든 기성세대가 만들어 청년세대에게 넘겨준 제도와 환경이다. 여기에 국가 부채, 파괴된 생태계와 기후위기, 그리고 최근 목도한 참정권 훼손에 이르기까지 기성세대가 느껴야 할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지금 기성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성찰적 경청'이다. 좌절하고 분노하는 청년의 목소리를 먼저 듣고 현 사회구조의 치명적 결함과 자신의 책임을 돌아보는 자세다. 거기에 제도 개혁과 자원 배분 과정에서 미래세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실질적인 양보를 감내하겠다는 '청년세대 우선 관점'이 중요하다.


비슷한 고민을 먼저 했던 외국의 사례들 가운데 참고할 사례도 적지 않다. 예컨대 북유럽 국가들은 복지 제도를 설계할 때 세대 간 형평과 연대를 핵심 기준으로 삼아왔다. 연금 개혁 과정에서 청년세대의 재정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낸 스웨덴이 대표적이다. 2015년 '미래세대 웰빙법'을 제정하고 2016년 '미래세대 위원회'를 설치한 영국 웨일스 자치정부의 시도도 주목할 만하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정책을 설계할 때 20∼30년 후 미래세대에 미칠 영향을 필수적으로 검토하도록 한 것이다. 독일이 의회에 '지속가능발전 자문위원회'를 설치해 정부와 의원들이 발의하는 법안이 미래세대의 생존과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지 않는지 사전 검증하도록 한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 청년세대도 연대와 참여로 화답해야


물론 세대 간 간극을 좁히는 일은 기성세대의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청년세대 역시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를 더 나은 사회로 만들기 위해 세대 간 이해와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의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분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분노가 타자에 대한 혐오나 각자도생의 신념으로 흐르면 문제 해결은 더 어려워진다. 가짜뉴스와 확증편향으로 오염된 혐오 콘텐츠나 낡은 진영논리와도 선을 그을 수 있어야 한다. 지나친 젠더 갈등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냉소, 기성세대에 대한 적대는 해법이 될 수 없다. 이는 자신을 포함해 우리 사회의 미래를 망가뜨리는 길일 뿐이다.


우리는 불의한 사회와 기득권층을 향한 분노를 사회발전의 에너지로 승화시킨 자랑스러운 경험을 갖고 있다.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 모두 청년층의 헌신이 중심에 있었다. 불과 10년 전 광장을 가득 메웠던 촛불 시민들, 그리고 2024년 12월3일 밤 계엄군 저지 시위에 나선 시민들 가운데 상당수도 청년이었다.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도 정치와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창의적인 방식으로 도전하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 기존의 진영 구도를 넘어 정치 혁신을 시도한 프랑스의 '앙 마르슈(En Marche∙전진)' 운동이나, 기후위기와 불평등 문제 해결을 촉구해온 미국의 청년단체, '선라이즈 무브먼트(Sunrise Movement)'가 대표적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냉소나 혐오의 방식이 아니라 참여와 연대로 미래를 바꾸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의 세대 간 불신과 적대는 이미 위험수위에 있다. 지난 10여 년간 여러 차례의 경고가 있었지만 우리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6∙3선거는 우리 사회에 던져진 마지막 경고일지 모른다.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현세대와 미래세대 사이에 '이해와 상생의 다리'를 놓아야 할 때다. 기성세대와 청년 모두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특히 정부와 국회가 사회적 공론화와 함께 종합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더이상 늦춰선 안 된다. 지금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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