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라야 이어지는 선, 이광호의 ‘처음의 끝’…리안갤러리 대구 신축 공간 개관전

  • 권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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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7-05 15:51  |  수정 2026-07-05 15:53  |  발행일 2026-07-05
칠보·전선으로 풀어낸 절단과 탄생의 서사
수백㎏ 전선 더미에 쌓인 1년의 수행적 시간
공예와 조각, 디자인의 경계 넘나드는 신작도 공개
리안갤러리 대구 신축 공간 1층에서 이광호 작가가 설치 작품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준기자 hyeokjun@yeongnam.com

리안갤러리 대구 신축 공간 1층에서 이광호 작가가 설치 작품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준기자 hyeokjun@yeongnam.com

리안갤러리 대구 신축 공간 1층에 들어서면 커다란 원통형 설치 작품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3개의 큰 원통은 옥빛 비늘을 가진 뱀이 여러 토막으로 나뉜 형상을 하고 있다. 옥색 표면 사이로 드러나는 검은색과 붉은색은 강한 열을 견딘 결과물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리안갤러리 대구 신축 공간 3층에서 이광호 작가가 설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권혁준기자 hyeokjun@yeongnam.com

리안갤러리 대구 신축 공간 3층에서 이광호 작가가 설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권혁준기자 hyeokjun@yeongnam.com

3층 전시 공간에는 수백㎏의 전선 더미가 관람객을 압도한다. 무작위로 얽힌 것처럼 보이지만, 이 더미는 매듭지어진 수많은 전선을 쌓아 올린 것이다.


리안갤러리 대구가 오는 25일까지 이광호 작가의 개인전 'Initial End(처음의 끝)'을 연다. 이번 전시는 리안갤러리 대구의 신축 공간 개관을 알리는 첫 전시로, 최근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와의 협업을 이어가고 있는 이 작가를 초대했다.


이광호 작. <리안갤러리 대구 제공>

이광호 작. <리안갤러리 대구 제공>

이 작가는 공예와 조각,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해온 작가다. 일상적 재료와 전통적 공예 기법을 결합해 물질의 구조와 감각을 새롭게 탐구하며, 동시대 한국 공예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리안갤러리 측은 "이번 전시는 시작에서 끝으로 향하는 직선적이고 단편적인 행보를 부정하며 그 사이의 아득한 간극을 끈질기게 메워 나가는 작가의 수행적 여정을 가시화한다"며 "그런 면에서 신축 공간의 첫 전시로 이 작가의 작품이 제격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리안갤러리 대구에서 만난 이 작가는 "이번 전시는 완성된 작업을 옮겨 와 공간에 설치한 것이 아니라, 공간에 온전히 몰입한 상태에서 작업대를 설치하고 현장에서 구성한 전시"라며 "처음 생각했던 모습보다 작업이 훨씬 잘 표현된 것 같다. 또 전시 제목과 공간을 사용하려던 의도도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광호 작. <리안갤러리 대구 제공>

이광호 작. <리안갤러리 대구 제공>

전시명 'Initial End'는 시작과 끝이 서로를 맞물고 순환하는 '우로보로스'의 역설을 상징한다. 작가에게 작업 과정에서의 '단절'은 소멸이나 결핍이 아닌, 선의 단면을 다시 잇기 위해 매일 마주해야 하는 필수적인 통과 의례다.


이 작가는 "서양에서 뱀이 부정적인 이미지만 갖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잘려진 뱀의 목'도 그런 맥락에서 탯줄처럼 최초의 절단이 생명을 뜻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제 작업은 결국 선을 잘라야만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절단은 작업의 출발점이자 반복되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이어 "1층의 작업은 칠보를 만든 뒤 그것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깊게 촬영하고 그 이미지를 확대해 원통에 감싼 것"이라며 "실제 뱀의 형상이나 잘린 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관람자가 무언가가 잘렸고, 그것이 뱀의 표면 같기도 하다고 유추할 수 있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3층에선 기존의 작업들보다 더 과감해진 이 작가의 신작들을 볼 수 있다.


그는 "결과물이 한 번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과 여러 과정, 뜨거운 열을 거쳐야만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 시간이 결과물 안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며 "이 작업은 일종의 결정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고 이번 전시에 그 과정이 드러나 있다"고 말했다.


이광호 작. <리안갤러리 대구 제공>

이광호 작. <리안갤러리 대구 제공>

이어 "큰 더미 작업은 지난 1년 간 팀원들과 함께 짠 작업이다. 저를 포함해 4명이서 200㎞가 넘는 선을 짰고, 그 시간을 정직하게 수행한 뒤 이 장소에 차곡차곡 쌓았다"며 "벽면 작업은 칠보와 선을 연결하려는 시도가 담겨 있다. 칠보는 녹아서 고정되는 재료지만, 그 위에 선 하나가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다. 이 작업을 통해서도 시작인지 끝인지 계속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리안갤러리 대구는 "공간을 압도하는 조각적 설치물부터 평면 위를 유영하는 회화적 변주에 이르기까지 이광호의 작업은 고정된 정의에 갇히기를 거부하며 끊임없이 의미를 확장한다"며 "관람객은 전시장을 매운 이 매듭들 사이에서 금속의 단단함 이면에 숨겨진 '무른 떨림'과 그 틈새에 고인 '수행적 시간의 밀도'를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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