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바 구시가지 성벽. 부드바는 2천500년의 역사를 가진 성벽 도시다.
'몬테네그로의 마이애미'라고도 하고, '유럽 귀족들의 휴양도시'라고도 한다. 그래도 확 당기지는 않았다. 겨울 초입의 날씨에다 오늘의 목적지와는 반대 방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2천500년 역사의 성벽 도시가 매력적이라는 한 줄에 기어이 핸들을 돌렸다. 코토르에서 남쪽으로 25㎞ 남짓. 자동차로 30분이면 충분한 거리도 한몫했다.
도시 역사는 여러 면에서 코토르와 비슷하다. 로마 제국, 비잔틴 제국, 베네치아 공화국, 합스부르크 왕조의 지배를 두루두루 받았다. 부드바가 역사에 등장한 시기는 기원전 5세기경이다. 하지만 신화로 보면 기원전 20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 신화에 테베를 건설한 카드모스(Cadmus)가 만든 도시라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테베에서 추방당한 카드모스가 그의 아내인 여신 하르모니아(Harmonia)와 함께 정착했던 곳이 이 지역이란다. 그들은 소를 타고 이곳에 도착했다고 전한다. 부드바의 오랜 역사에 신비감을 보태는 이야기이다.
성채에서 바다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위치한 사바 교회(왼쪽)와 성모 마리아 교회.
부드바가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된 것은 1420년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부터다. 이후 400년 가까이 부드바는 군사와 교통의 요지로 발전했다. 이 시기 오스만제국에 맞서 요새를 쌓았고, 두브로브니크를 거쳐 베네치아로 이어지는 항로가 생겼다. 그 이후 근현대의 역사는 코토르와 마찬가지로 유고 왕국과 연방을 거쳐 2006년 독립한 몬테네그로에 속하게 됐다.
부드바 구시가 성벽과 이어진 리차르도바 글라바 해변의 아침.
부드바에는 현재 1만7천500여 명(2023)의 주민이 살고 있다. 부드바는 깔끔하고 정돈된 신시가지, 잘 보존된 중세 성벽 도시, '부드바 리비에라'로 불리는 해안 지역의 긴 백사장, 다양한 휴양 시설로 유명하다. 고대부터 부드바는 와인, 올리브유, 소금, 직물 등을 실은 무역선이 드나들던 무역항이었다. 오늘날 부드바가 교통과 관광의 명소가 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천혜의 자연과 기후가 사람들을 불러들였고, 부드바는 자연스럽게 휴양과 축제의 도시가 됐다. 특히 여름철 열리는 '부드바 극장 도시 축제(Budva Theatre City Festival)'는 구시가지 전체를 야외 무대로 변모시키며 광장, 거리, 역사 건물 등에서 공연이 펼쳐지는 부드바의 대표적 축제이다. 그리스의 극작가 소포클레스가 카드모스 신화를 다룬 비극 작품에 부드바를 언급했다는 출처 없는 소문도 이 축제의 전통성을 강화하는 레토릭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어쨌거나 마돈나나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 같은 세계적 스타도 이곳에서 공연하기도 했다고 하니, 공연 도시로서의 면모가 만만치 않은 것 같다.
부드바에 가까워질수록 아드리아의 아름다운 해변을 끼고 있는 멋진 리조트들이 늘어났다. 잘 정돈된 신시가지를 지나 해안에 자리한 부드바 구시가지 입구 광장에 주차를 했다. 구시가지는 견고한 성벽 너머로 몸을 숨기고 있었다. 성벽과 나란한 아침 해안이 멋진 구름을 이고 눈부시게 펼쳐져 있었다. 리차르도바 글라바 해변이었다. 홀린 듯 바닷가로 갔다. 막 깨어난 아침 바다는 다듬어지지 않은 바람과 함께 해변의 자갈돌 사이를 드나들었다. 오른쪽으로는 길게 모그렌 해변이 이어졌다. 철 지난 바닷가의 아침 적막은 이곳이 세계적 휴양지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었다.
구시가지의 메인 게이트. 위에 베네치아의 상징인 '날개 달린 사자'가 부조돼 있다.
해가 높아지면서 조금씩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우리도 구시가지로 향했다. 구시가지를 드나드는 6개의 출입문 가운데 메인 게이트는 'Porta di Terra Ferma', 즉 '육지 쪽 문'이라는 뜻의 서쪽 성문이다. 베네치아 공화국 시절에 건설된 육지 방면의 유일한 출입구이다. 문 위쪽 벽면에는 베네치아의 상징인 '날개 달린 사자(성 마르코의 사자)'와 부드바의 중세 문장인 방패와 별 세 개가 부조로 새겨져 있다. 구시가지 대부분의 건축물이 베네치아 시절에 지어졌음을 웅변하는 표식이었다. 하지만 코토르와 마찬가지로 1979년 4월15일에 일어난 대지진에 의해 이곳도 건물 대부분이 파괴됐다. 현재는 그 참사의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복원됐다.
구시가지 골목길. 오래된 건물과 현대식 장식들이 모나지 않게 어울려 있었다.
문을 들어서니 감춰졌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났다. 현대에서 중세로 시간 이동을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좁은 골목과 광장, 상점, 성당들이 뒤섞인 작은 동네 같았다. 오래된 건물과 현대식 장식들이 모나지 않게 어울려 있었다. 규모가 워낙 작아 골목 골목을 샅샅이 다녀도 금방 지났던 골목을 마주치곤 했다. 휙 둘러볼 요량이면 한 시간도 넉넉하다. 코토르에서 경험했듯이 유럽 대도시의 거대하고 웅장한 광장과 성당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작고 소담스러워서 정겹다. '풀꽃'처럼 '자세히, 오래' 보면 역사와 사람이 그 안에 들어있다. 주민들의 삶이 깃든 생활감 있는 주택이나 아기자기한 카페나 기념품 가게로 변신한 오래된 건물들은 중세가 현대를 발라 성장(盛粧)한 듯 세련되게 낡아 보였다. 그런 건물이 만들어내는 좁은 골목은 고즈넉함에다 안온함을 절묘하게 버무려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도 우아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교회 광장. 왼쪽 줄무늬 건물이 성 삼위일체 성당이며, 오른쪽 종탑 건물이 성 요한 성당이다.
그렇게 휘적휘적 다니다 제법 큰 광장을 만났다. '교회 광장'이다. 이곳의 성 요한 성당(Katedrala Sv. Ivana)은 구시가지에서 제일 크고 높은 랜드마크이다. 어느 곳에서나 보이는 36m 높이의 종탑은 이정표 역할을 한다. 7세기에 건립된 이 성당은 가톨릭 성당으로서, 1828년까지 주교구 성당이었다. 성당 내부에는 12세기의 이콘화, 성상, 경전 등이 잘 보존되어 있어 이 지역 화가나 장인들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교회 광장의 성 요한 성당. 구시가지에서 제일 크고 높은 랜드마크이다.
성 요한 성당을 나오면 바로 성 삼위일체(The Holy Trinity) 교회 뒷면이 보인다. 벽에 금이 가 있는데, 1979년 지진의 상흔이다. 교회 정문 위에 종탑을 만들고, 그곳에 세 개의 종을 매달았다. 1804년에 건립된 이 교회는 정교회 교회로, 부드바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찾는 교회이다. 정교회답게 교회 안의 장식이 심플하다. 교회 옆에는 야외공연장도 있다. 요새 전망대와 어우러진 이곳은 여름 축제 때 매일 공연이 열리는 곳이란다.
성 삼위일체 교회. 금이 간 벽은 1979년 지진의 상흔이다.
교회 광장 옆으로 시타델라(Citadela), 즉 요새로 올라가는 입구가 있다. 구시가지는 바다를 향한 요새 도시로 설계됐다. 과거에는 해적의 침입을 막는 방어 거점이었고, 베네치아 군의 주둔지이자 감시초소 역할도 했다. 지금은 작은 박물관, 도서관, 성벽 산책로, 카페 등을 갖춘 문화 명소로 탈바꿈하였다. 구시가지에서 가장 높은 성벽 산책로는 부드바 해안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최고의 조망 명소이다.
성채에서 바다 쪽으로 내려가면 작은 교회 두 개가 있다. 성모 마리아 교회와 사바 교회이다. 작고 낡았지만 역사는 만만치 않다. 840년 베네딕토회 수도사들이 건축한 성모 마리아 교회는 몬테네그로 해안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프리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이자 부드바 최초의 학교가 있었던 곳이란다. 1807년 나폴레옹 군대가 이곳을 마구간으로 사용했던 아픈 역사도 있다. 그 옆 사바교회(Church of St. Sava)는 더 앙증맞다. 1141년에 건립된 이 교회는 베네치아 공화국 지배 시절, 정교회와 가톨릭 신자가 함께 예배를 드렸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요새 성채. 구시가지는 바다를 향한 요새 도시로 설계됐다.
요새의 작은 교회 너머로 산 중턱의 고급 빌라와 해안가의 현대식 리조트가 보였다.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이 모습이 부드바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런 특별함을 한곳에 모아놓은 듯한 곳이 부드바에서 남쪽으로 약 6㎞ 떨어진 스베티 스테판(Sveti Stefan) 섬이다. 모랫길로 본토와 연결된 이 섬은 소박한 어촌에서 세계 최정상급 명사들이 찾는 초호화 휴양지로 극적인 변신을 했다. 20세기 들어 이 섬의 주민이 줄어들자 1950년대 유고슬라비아 티토(Tito) 정부가 섬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호텔 도시'로 개조했다. 외관은 15세기의 돌집과 붉은 기와지붕을 그대로 유지하되, 내부는 최고급 인테리어로 꾸며 1960년에 개장했다. 이 독특한 콘셉트는 전 세계 부호들의 이목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내전 시기 잠시 쇠퇴기를 겪었으나, 2007년 아만 리조트(Aman Resorts)가 '아만 스베티 스테판'으로 재탄생시켰다.
이곳은 대중의 시선을 피하고 싶은 전 세계 셀럽들이 최고로 꼽는 휴양지란다. 그것은 철저한 프라이버시 보호 때문이다. 섬은 오직 투숙객이나 사전 예약된 가이드 투어 이용자만 출입할 수 있다.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외길목만 통제하면 외부인의 접근이 완전히 차단되므로 파파라치를 피하고 싶은 명사들에게 최적의 장소이다. 시간이 멈춘 듯한 역사성과 온전한 고립감을 느낄 수 있는 장소성도 빼놓을 수 없다. 중세 골목길과 성벽 안에서 아드리아해를 바라보며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듯한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단다. 마거릿 대처 수상, 엘리자베스 테일러, 리처드 버튼, 소피아 로렌, 마릴린 먼로 등 수많은 셀럽이 단골이란다. 세계를 누비고 다녔던 헤밍웨이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고, 세르비아 출신의 테니스 황제 노박 조코비치는 2014년 이곳에서 비밀 결혼식을 올렸다.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은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 가운데 하나"라고 극찬했단다. 나 같은 필부에게는 '그림의 떡'이지만 그림만이라도 보고 싶어지는 이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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