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윤일현의 ‘밥상과 책상 사이’…라마누잔, 인공지능 시대에 던지는 존재의 떨림

  • 윤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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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7-19 17:30  |  발행일 2026-07-20
라마누잔, 인공지능 시대에 던지는 존재의 떨림
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사람들이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시간, 한여름 새벽 공기가 이상하리만큼 맑다. 희미한 빛이 골목과 나무의 윤곽을 천천히 드러낼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인간은 왜 끝없이 질문하는 존재가 되었을까. 먹고사는 현실을 넘어 별과 숫자, 우주의 질서를 탐구하도록 우리를 이끄는 힘은 무엇일까. 인공지능이 순식간에 답을 정리해 주는 시대가 되었지만, 인간은 여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열정과 영감에 이끌려 미지의 세계를 향해 걸어간다.


인도의 수학자 스리니바사 라마누잔(1887~1920)의 삶은 바로 그 신비로운 인간 정신의 깊이를 보여준다.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정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대학 진학에도 실패했다. 수학 외의 과목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를 괴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숫자 속에서 우주의 질서를 보았다.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공식들을 노트 위에 빼곡히 적어 내려갔고, 밤새워 계산과 사색에 몰두했다.


라마누잔의 삶에서 놀라운 점은 단순한 천재성이 아니다. 그는 수학을 논리보다 먼저 직관으로 포착했다. 복잡한 공식을 증명 없이 적어 내려가면서도 결과는 놀랍게 정확한 경우가 많았다. 훗날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수학자 고드프리 해럴드 하디는 그의 편지를 받고 충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장난 편지라고 생각했지만, 편지 속 수식들을 읽으며 직감했다. "이 사람은 진짜다." 하디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나는 평생 단 한 번 천재를 만났는데, 그가 바로 라마누잔이었다."


라마누잔은 영국으로 건너가 수론과 무한급수, 분할 함수 분야에서 놀라운 업적을 남긴다. 그러나 그의 삶은 길지 않았다. 낯선 환경과 영양실조, 오랜 투병으로 건강을 잃은 그는 서른두 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짧은 생애였지만 그가 남긴 노트들은 지금도 세계 수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라마누잔 이야기가 오늘 우리에게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의 삶이 단순히 '머리 좋은 천재'의 성공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 정신의 본질이 어디에서 빛나는지를 보여준다. 가난과 실패 속에서도 끝까지 자기 안의 탐구를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자신의 열정을 묵묵히 밀고 나갔던 사람, 무엇보다 계산과 효율을 넘어 수학 안에서 아름다움과 진리를 발견하려 했던 사람이다.


하디는 이런 말을 남겼다. "아름답지 않은 수학은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그는 수학을 단순한 계산 기술이 아니라 예술과 맞닿은 정신의 활동으로 이해했다. 이 말은 단지 공식의 모양이 아름답다는 뜻이 아니다. 진리는 궁극적으로 아름다움과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다. 수학은 계산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세계의 질서를 이해하려는 인간 정신의 가장 깊은 시도 가운데 하나다.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간다. 인공지능은 이미 인간보다 훨씬 빠르게 계산하고 분석한다. 학생들은 어려운 문제를 스마트폰에 찍어 올리면 몇 초 만에 풀이를 받아본다. 코딩도 대신 해 주고, 글도 써 주고, 그림도 그려 준다. 많은 사람이 묻는다. "이제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마누잔의 삶은 이 질문 앞에서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인공지능은 방대한 정보를 조합할 수는 있지만, 존재의 떨림 속에서 새로운 물음을 품지는 못한다. 실패와 외로움 속에서도 진리를 붙들고 몰두하거나, 아름다움 앞에서 전율하지도 못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정말 중요한 것은 계산 능력이 아니라 상상력과 통찰이다. 답을 빨리 찾는 능력이 아니라 아직 세상에 없는 질문을 만들어 내는 힘이다. 라마누잔은 정답을 외운 사람이 아니라 누구도 보지 못한 세계를 통찰한 사람이었다.


교육도 달라져야 한다. 이제는 문제를 빨리 푸는 아이보다 오래 몰두할 수 있는 아이, 호기심을 잃지 않고 실패 속에서도 다시 탐구하는 아이를 길러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일수록 열정과 창의성, 공감과 통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 곧 경쟁력이 된다. 라마누잔은 세상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괴짜였지만 숫자 속에서 우주의 숨결을 들으려 했다. 어쩌면 인간의 위대함은 바로 거기에 있다. 효율을 넘어 보이지 않는 진리를 향해 걸어가는 힘, 쓸모없어 보이는 물음을 끝까지 붙드는 집요함, 세상이 이해하지 못해도 자기 안의 불꽃을 지키는 용기야말로 인간 정신의 가장 깊은 힘이다.


인공지능은 점점 더 똑똑해질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이유는 단순히 답을 계산하는 존재가 아니라 쓸모를 넘어 아름다움과 진리를 꿈꾸기 때문이다. 내면의 불꽃이 꺼지지 않는 한, 인간 정신은 어떤 알고리즘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빛을 지켜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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