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규 사회1팀장.
1907년 대구 사람들이 담배를 끊었다. 일본에 진 국채 1천300만원(당시 대한제국 1년 예산 규모)을 국민 손으로 갚아보자는 국채보상운동 때문이다. 부자는 돈을 내고, 서민은 생활비를 아꼈다. 부녀자들은 패물을 내놓았다. 대구에서 피어난 결기는 삽시간에 전국으로 번졌다.
113년 뒤에도 비슷한 장면이 펼쳐졌다. 2020년 코로나19가 대구를 덮쳤다. 병상은 고갈됐고 의료진은 탈진 직전까지 내몰렸다. 시의사회가 도움을 청하자 전국 의료진이 달려왔다. 상인은 도시락을 만들고 숙박업주는 객실을 내줬다. 두 사건을 관통하는 힘은 명료하다. 누가 구해주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절박했기에 움직였고, 결집했기에 돌파했다.
지금 대구에 다시 필요한 것도 그 힘이다. 이번 위기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청년은 빠져나가고 산업 판도는 급변한다. 국가 투자 지도가 새로 그려지는 사이 대구가 변방으로 밀릴 위험도 커졌다. TK공항(대구경북 민·군 통합공항), 대구·경북 행정통합, 첨단산업 재편, 지역 대학 육성은 향후 수십 년 대구의 명운을 가를 승부처다.
그런데 유독 '안 된다'는 말이 흔하다. 공항은 돈 때문에 어렵고, 통합은 이해관계가 복잡하며, 첨단산업은 다른 지역이 앞섰다고 한다. 정말 불가능한가. 대구가 풀어야 할 과제는 자연법칙이 아니라 정치와 행정 영역이다. 법을 고치고 재원을 배분하며 국가 정책의 우선순위를 바꾸면 된다.
TK공항이 단적인 사례다. 국가 안보시설인 군공항 이전에 지방정부가 막대한 재무적 위험을 떠안는 구조부터 정상적이라 보기 어렵다. 특별법을 손질하고 국가 책임을 확대할 여지도 충분하다. 결국 질문은 '가능한가'가 아니라 '누가 끝까지 성사시키려 하는가'다.
정부에도 물어야 한다. 호남에는 신규 반도체 클러스터가 가시화됐고 전남·광주 통합에는 대규모 지원이 뒤따랐다. 호남의 성장을 시비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대구·경북의 성장 엔진은 뭘까.
구미의 반도체·전자, 대구의 AI·로봇·미래모빌리티, 포항의 이차전지·첨단소재, 경북대와 DGIST의 연구 역량에 TK공항까지 잇는다면 국가적 산업축으로 비약할 토대는 충분하다. 부족한 것은 재료가 아니라 이를 하나의 국가 전략으로 묶어낼 기획력과 추동력이다.
미래대응기금 논란도 같은 맥락이다. 지방이 재량껏 쓸 자주재원을 중앙이 흡수해 다시 배분한다면 총액만 따질 일이 아니다. 지방분권의 요체는 얼마를 받느냐보다 누가 용처를 결정하느냐에 있다.
그렇다고 중앙정부만 성토해서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지역 정치권 책임도 무겁다. 대구에는 중앙 정치에서 중량감을 가진 인사가 적지 않다. 그런데 지역 숙원이 해마다 제자리라면 정치력의 실효성을 따져야 한다. 정치는 논평이 아니라 관철이다. 법을 통과시키고 정부안을 바꾸며 예산 숫자를 움직여야 정치력이라 부를 수 있다. 야당이면 더 치열하게 설득하고 협상해야 한다.
대구시도 읍소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항 따로, 통합 따로, 산업 따로 움직이는 각개전투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대구·구미·포항의 산업과 지역 대학, TK공항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어 "대한민국이 성장하려면 대구·경북에 투자해야 한다"는 논리를 세워야 한다.
지역사회도 힘을 모아야 한다. 정치권과 경제계, 대학과 시민사회가 제 이해만 좇으면 힘은 흩어진다. 반대로 요구가 하나로 수렴되면 중앙정부도 외면하기 어렵다. 대구가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은 중앙의 외면이 아니다. '안 된다'는 말에 길들여지는 체념이다. 세상에 안 되는 일은 없다. 끝내 안 됐다면, 의지와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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