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옥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치마를 샀다. 스페인 네르하의 벼룩시장에서다. 폭이 넓고 집시 느낌이 나는 치마이다. 춤을 출 것도 아닌데 반짝이 장식까지 달렸다. 아랍계의 여자가 360도의 치마폭을 너풀너풀 펴 보이며 왈라솰라 하는 바람에 집어 들고 말았다. 사람이건 물건이건 인연이 있는가 보았다.
야밤에는 플라멩코(flamenco)춤 관람이 잡혀 있었다. 플라멩코가 무엇인가. 정열적인 무도 리듬과 느린 발라드를 공유하는 집시들의 춤이 아닌가. 우리에게는 카르멘이 호세를 유혹한 춤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나는 기분을 내어 새로 산 치마를 챙겨 입었다. 두툼한 운동화도 벗어던지고 가벼운 구두로 갈아 신었다.
홀 안은 관람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막이 오르자 무희들이 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노래와 춤과 사바티아드(발을 구르며 내는 소리). 그리고 손뼉소리. 무엇보다 내 눈을 끈 것은 물결처럼 층을 이룬 무희의 화려한 치마였다. 치마는 이미 무희에게 소속된 오브제(물건)가 아니었다. 저 스스로 무희와 손을 잡고 춤을 구성하고 있었다.
춤은 느리고 우아하게 시작해 갑자기 숨막히도록 치마를 감고 빠르게 이어졌다. 세상을 덮듯 무대를 한바탕 크게 휩쓸다가, 문득 한순간 아름다운 골을 이루며 무희의 허벅지를 쓰다듬다가, 다시 그 치마는 요술처럼 스르르 내려와 발을 덮었다. 삶의 기쁨과 괴로움, 사랑과 미움, 애수와 정열의 표현이었다. 멤버 중 나이든 무어인 남자의 구원을 갈구하는 듯한 애절한 노랫소리는 심금을 울리며 무희의 치마폭으로 흘러들어갔다. 누구던가. 플라멩코는 땅끝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슬픔을 제어하기 위한 안타까운 몸부림이라 하지 않았던가.
지금까지 나는 치마를 여자의 몸에 드리워진 커튼 정도로 생각하지 않았나 몰랐다. 아니었다. 그것은 치마가 된 순간 몸의 일부로 변신하는 것 같았다. 억울함을 일러바치는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고, 연인을 향한 그리움을 자제하느라 입가를 훔치고, 열정을 숨기느라 몸을 휘감는 또 다른 몸이었다.
그뿐인가. 짝사랑하다 죽은 총각의 상여도 황진이의 치마가 덮어주었고, 귀양 가 있는 지아비에게 절절한 연심을 보낸 것도 정약용 아내의 치마였다. 그것은 감히 창을 가린 커튼에 비할 것이 아니었다. 절실하고 뼈아픈 언어였고, 메시지였다.
귀국해서 보니 집시치마는 입을 일이 별로 없어 보였다. 코앞 슈퍼에 떨쳐 입고 콩나물을 사러 갈 형편도 아닐뿐더러 몸치인 내가 그걸 입고 호세를 유혹할 것도 아니었다.
그렇더라도 나는 치마를 잘 간직해두기로 했다. 혹, 아는가. 어느 날 내 안의 집시 기질이 부스스 발동하여 산 넘고 바다 건너 지중해안 어디 집시촌을 헤매게 될지. 네르하의 치마는 장롱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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