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의 천일영화] 귀신의 집으로 전락한 궁궐, ‘동궁’

  •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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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7-30 16:01  |  발행일 2026-07-31
윤성은 영화평론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조선 시대는 성리학적 합리주의와 엄격한 신분제가 지배하던 사회였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계급을 짊어진 채 평생 가부장제와 충효의 가치관에 복종해야 했고, 체제에 저항하는 대가는 죽음뿐이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동궁'은 왕궁이라는 유교적 질서의 심장부를 오컬트의 무대로 변모시켜 이러한 신분 사회의 패착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동궁'에 등장하는 원혼들은 가부장제와 폐쇄적 신분 사회가 만들어낸 폭력 속에서 침묵을 강요받던 이들이었다. 귀신을 볼 수 있는 '구천'(남주혁)과 귀신을 들을 수 있는 '생강'(노윤서)은 귀(鬼)의 세계에서 원혼들과 싸우는 한편, 수십 년간 궁궐이 은폐해 온 비밀을 들춰낸다. 판타지 호러라는 외피 아래 권력의 야만성과 체제의 모순에 대한 비판이 깔려있는 작품이다.


'동궁(東宮)'은 왕위를 계승할 세자 또는 세자의 처소를 의미하는 말로,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처럼 미래의 희망을 내포한 단어다. 그러나 이 시리즈에서 공간으로서의 동궁은 치열한 암투가 벌어지는 핏빛 전쟁터로 묘사된다. 이러한 동궁의 기호학적 전복은 세자라는 자리가 가진 태생적 불안정성에서 기인한다. 세자는 차기 군주의 지위를 보장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왕관을 물려받을 때까지 왕족들의 눈치를 살피고 정적들의 모함과 감시를 견뎌내야 하는 위태로운 위치에 놓여 있다. '동궁'의 '왕'(조승우)은 국가의 안위와 왕실의 정통성을 지킨다는 명목하에 자식의 희생을 묵인하고 강요하는 냉혹한 인물이다. 따라서 동궁에서 발생하는 죽음은 초자연적 재앙이 아니라 기득권 세력들의 횡포와 피의 숙청이 축적된 결과다. '동궁'은 연못귀신이라 알려졌던 살귀의 정체를 인간으로 전환시키며 스스로 성리학의 권위를 유린한 왕가의 모순을 탁월하게 시각화해낸다.


왕의 일가가 스스로 불러온 저주 앞에 몰락하고 있을 때, 모든 상황을 직시하고 해결하는 이들은 철저하게 주류 사회에서 배제된 '타자'(The Other)들이라는 점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구천과 생강이 가진 영매로서의 능력은 성리학적 합리주의가 점령한 조선에서 기피되고 억압받는다. 그러나 이들의 눈과 귀는 체제가 외면하려 했던 추악한 진실을 마주하고 궁궐의 피바람을 멈출 유일한 열쇠다. 또한 구천과 생강은 퇴마 과정에서 각자 어머니의 죽음이 남긴 트라우마와 분노를 극복하고, 서로를 통해 희생의 의미를 깨닫는 인물들이다. 이들의 연대와 성장은 사회의 진정한 구원과 희망이 변방에서 시작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아쉬운 점도 있다. 인물들이 귀의 세계로 진입할 때마다 궁궐 내부에 존재하는 촘촘한 갈등과 긴장은 사라지고 장르적 쾌감만 화면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 쌓아올린 정치 스릴러로서의 장점이 희석된다는 게 문제다. 애초에 이 시리즈는 오컬트 장르의 공포는 충분히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에 귀의 세계에는 사실상 판타지 액션의 시각적 충격만 존재하는데 이러한 말초적 흥분은 후반부로 갈수록 무뎌진다. 시네마틱 게임처럼 깊이감을 살리지 못한 VFX, 과잉된 이미지와 음악 역시 계속 반복되면서 서사의 밀도를 낮추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궁'은 세계적으로 우리 사극 판타지 액션의 대중성을 확보함으로써 이 장르의 가능성을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큰 작품이다. 주제 및 톤 앤 매너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디지털 이미지들의 가벼움을 극복하고 이를 서사에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 과제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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