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훈 재평가 시급한 대구경북 독립운동가의 알려지지 않은 기록 下] 우리가 몰랐던 이상룡…유학의 틀을 넘어 시대를 품어

  • 김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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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8-16 10:33  |  수정 2026-08-16 10:35  |  발행일 2026-08-16
기독교의 생사관·영혼관에서 유교적 의리와 맞닿은 지점 찾아
“이단을 논할 때가 아니다”…종교·이념 넘어 독립운동 세력 포용
강윤정 교수 “사상적 포용성, 만주 항일투쟁의 중요한 배경”
초대 임시정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 영남일보 DB

초대 임시정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 영남일보 DB

종택 임청각 전답과 가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향한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1858~1932)선생은 안동 유림을 대표하는 선비였다. 신흥무관학교 설립을 주도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까지 지냈다. 석주 이상룡 선생은 성리학적 세계관에서 출발했지만, 유교 틀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종교와 사상에서 자신의 신념과 맞닿은 지점을 찾았다. 나아가 종교와 이념을 넘어 독립운동 세력을 하나로 묶으려 했던 사상가의 모습을 보였다.


국립경국대 강윤정 교수(사학과)는 '이상룡 일가의 기독교 수용과 민족문제 인식' 논문에서 그간 크게 주목받지 않았던 석주 선생의 종교 사상적 면모를 집중 조명했다.


강 교수는 "석주 선생은 기독교를 직접 받아들이거나 신앙한 인물은 아니었다"면서도 "기독교 생사관과 영혼관을 자신의 유교적 의리관과 연결해 이해했고, 이를 독립운동 세력을 포용하는 사상적 기반으로 삼았다"고 했다.



◆유림 종가를 뒤흔든 '마가복음'


강윤정 경국대 사학과 교수.

강윤정 경국대 사학과 교수.

1906년 석주 선생 친동생 이상동과 조카 이운형이 '마가복음'을 접한 뒤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이후 경북 영양으로 거처를 옮겨 교회를 세우고 포교 및 교육 활동을 이어갔다.


퇴계 학맥을 잇는 안동의 대표 유림 가문에서 기독교를 수용한 건 당시 지역 사회에 큰 충격이었다. 이상룡은 동생의 개종을 이유로 배척하지 않았고 기독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고민했다.


강 교수는 "석주 선생이 유교적 신념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유교와 불교, 기독교 등 여러 종교 사이의 공통점을 찾으려 했다"고 말했다.


만주로 간 뒤 석주 선생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만주에서 기독교 서적 '성산명경'과 단학 서적 '성명규지'를 접하며 유교·불교·기독교·도교 사상을 비교했다. 기독교 생사관과 영혼관에도 관심을 가졌다.


석주 선생은 유교의 '살신성인'과 '사생취의', 기독교의 '영생천국'에 대해 모두 인간이 갖고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직분과 당위에 힘쓰게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봤다.


'육신의 죽음 이후에도 영혼이 존재한다'는 기독교 영생관 역시 인간이 의리와 인을 실천하도록 하는 정신적 기반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석주 선생은 기독교 영혼관을 유학의 인의와 연결하면서 인의 구현에 보다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이같은 인식은 석주 일가의 항일투쟁을 지탱하는 중요한 배경이자, 기독교인까지 포용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경북 안동 임청각 전경. 영남일보 DB

경북 안동 임청각 전경. 영남일보 DB

◆"이단을 논할 때가 아니다"


석주 선생의 사상적 변화는 1913년 권병하에게 보낸 답장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권병하는 기독교 세력 확산을 우려했으나 석주 선생은 기독교를 배척하는 게 유학을 지키는 길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기독교가 강한 세력을 형성한 상황에서 유학자가 이를 배척하는 건 오히려 유학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중요한 건 종교적 차이가 아니라 나라와 민족의 보전이었다. 나라를 잃은 상황에서 차이를 따지기보다 독립이라는 공동 목적을 위해 힘을 모으는 게 먼저라고 봤다. 유학적 신념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독립이라는 더 큰 목표 아래 서로 다른 종교와 세력을 포용하려 했던 것이다.


이상룡 일가의 독립운동 역시 하나의 방식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동생 이상동은 안동지역 만세운동에 참여해 옥고를 치렀다. 조카 이운형 등은 교회와 학교를 통해 교육과 계몽 활동을 펼쳤다. 한 가문 안에서 유림의 전통과 기독교, 교육과 사회운동 등이 맞물리며 다양한 형태의 민족운동이 전개된 것이다.


강 교수는 "이상룡 일가의 기독교 수용과 활동을 통해 유학적 세계관이 강했던 안동지역에서 새로운 사상과 종교가 민족운동과 결합하는 과정을 보여줬다"고 전했다.


특히 석주 선생은 유교만을 고수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기독교의 생사관과 영혼관에서 자신의 의리관과 연결되는 지점을 찾아냈다. 기독교를 배척하는 대신 그 안에서 자신의 신념과 통하는 정신을 발견했다. 종교와 이념 차이를 넘어 독립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중심으로 사람을 끌어모았다.


강 교수는 "석주 선생이 유교적 신념을 유지하면서도 유교와 불교, 기독교 등의 공통점을 찾으려 노력했다"며 "이러한 사상적 포용성이 만주 항일투쟁과 기독교인을 비롯한 다양한 독립운동 세력을 포용하는 중요한 배경이 됐다"고 밝혔다.


김지훈 경북호국보훈재단 사무국장, 이상룡 선생 자유·평등·공화주의 가치 보여준 역사적 유산

김지훈 경북호국보훈재단 사무국장.

김지훈 경북호국보훈재단 사무국장.

석주 이상룡 선생의 삶은 단순히 한 독립운동가의 생애를 넘어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국가의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역사적 유산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김지훈 경북호국보훈재단 사무국장은 석주 선생의 독립운동을 정의와 자유, 평등, 생명존중, 상생, 불의에 대한 저항, 공화주의, 애국의 가치와 연결했다.


석주 선생이 독립운동을 통해 봉건적 질서를 극복하고 세계 보편적 자유와 민주, 공화의 가치로 나아가고자 했다는 의미다.


김 사무국장은 석주 선생에 대해 퇴계 이황의 학문과 실천정신을 계승해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긴 인물로 평가했다. 그는 "국가와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헌신한 삶을 살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가장 모범적으로 실천한 사례"라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우리 사회의 지역과 세대, 이념과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과 분열이 심화되고 있는 만큼 석주 선생의 삶에서 배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훈 재평가에 대해선 새로운 사료와 연구 성과를 토대로 객관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1962년 독립유공자 포상 당시, 공적심사 기록이 확인되지 않아 당시 서훈이 3등급으로 결정된 구체적인 이유를 현재로서는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다만 2018년 국무령 이상룡기념사업회가 국가보훈부에 제출한 재심 신청서는 들여다봤다. 신청서엔 심사 대상이 되지 않았던 연구논문과 문헌자료를 비롯해 일본 외무성 문서·조선총독부 비밀문서·중국 당국 자료 등에서 석주 선생의 독립운동 업적과 공헌이 추가로 발굴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경북호국보훈재단도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가 가운데 공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은 인물을 대상으로 추가 연구를 진행하는 방향으로 발굴사업을 확대했다. 그 첫 사례로 이상룡 선생을 선정하고, TF를 구성해 재평가를 위한 연구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김 사무국장은 "새로운 공적이 확인됐다면 그에 걸맞은 정당한 평가가 이뤄지는 게 국가의 책무"라며 "학계와 지역 보훈단체, 관련 기념사업회와 협력해 객관적·전문적인 연구를 축적하고 공정한 재평가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상룡 선생의 삶과 철학, 독립운동 정신을 더 깊이 연구하고 널리 알려 미래세대와 국민 모두가 그 가치를 함께 계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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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목

대구경북 대학과 보훈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기사를 작성하는데 집중하고 한번쯤 생각날수 있는 기사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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