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대구 노변동 사직단과 고분군] 햇살 잘 드는 언덕 위엔 시간이 겹쳐져 흐른다

  • 류혜숙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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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9-04 15:04  |  발행일 2026-09-04
노변동 사직단. 토지의 신인 사신과 곡물의 신인 직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제단으로 대구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노변동 사직단. 토지의 신인 사신과 곡물의 신인 직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제단으로 대구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구릉 꼭대기에 제단이 있다. 제사장이 부재하는 동안에도, 제단은 하늘을 향해 얼굴을 바짝 쳐들고 위엄을 지키며 무언가를 비는 것 같다. 빌고, 사정하고,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저리 당당하기도 쉽지 않은 노릇이다. 제단 아래에는 보이지 않지만 무덤이 있다. 제단을 쌓은 사람들보다 더 오래전 사람들의 무덤이고, 한두 개가 아니라 수백 개다. 이곳은 인적이 드물고 햇살이 잘 드는 곳이다. 제단 옆으로는 고속도로가 지나고 무덤들 아래에는 국도가 지나, 오직 들리는 것은 차들이 달리는 소리뿐이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그것은 숙면을 위한 빗소리나 집중을 위한 백색소음만큼이나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 노변동 사직단


사직단은 제단과 담장, 그리고 4개의 홍살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의 모습은 발굴조사 당시에 드러난 하부구조 위에 문헌 기록을 참고하여 상부 구조물을 복원한 것이다.

사직단은 제단과 담장, 그리고 4개의 홍살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의 모습은 발굴조사 당시에 드러난 하부구조 위에 문헌 기록을 참고하여 상부 구조물을 복원한 것이다.

홍살문 중 북쪽의 문이 홀로 특별히 좁은데, 그것은 사직신이 출입하는 문으로 북신문(北神門)이라 불린다.

홍살문 중 북쪽의 문이 홀로 특별히 좁은데, 그것은 사직신이 출입하는 문으로 북신문(北神門)이라 불린다.

제단은 조선시대의 사직단이다. 토지를 관장하는 신을 사신(社神), 곡식을 관장하는 신을 직신(稷神)이라 하는데, 둘을 합해 사직이고 사직신에게 제사를 지낸 곳이 사직단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고구려 고국양왕 391년, 신라 선덕왕 783년, 고려 성종 991년, 조선 태조 1395년에 각각 사직단을 세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아주 오래된 제례다. 조선 왕실의 정궁인 경복궁을 중심으로 왼쪽에 종묘, 오른쪽에 사직이 위치한다. 이는 유교 국가이자 농업 국가인 조선의 근본을 상징하는 커다란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조선시대 사직제는 종묘대제와 더불어 나라와 백성의 평안을 기원하는 가장 중요한 국가 의례 중 하나였다.


조선시대에는 수도인 한양뿐만 아니라 지방 곳곳에 사직단을 두었는데 그 수가 340여개나 된다. 한양의 사직단은 토지 신을 위한 사단(社壇)과 곡물의 신을 위한 직단(稷壇)이 따로 분리되어 있었고 왕이나 영의정이 의식을 관장했다. 지방의 사직단은 하나의 제단에서 두 신 모두에게 제사를 지냈고, 지방 수령이 봄과 가을 두 번 제사를 주관했다. 1908년 순종 황제는 일제의 강압으로 사직제 폐지 칙령을 내렸다. 1911년에는 사직단 부지가 아예 총독부로 넘어갔다. 중앙이 그러하였으니 지방은 불 보듯 뻔하다. 1910년 경술국치를 전후해 지방의 사직단은 대부분 사라졌다. 노변동 사직단은 그 시기에 사라진 사직단 중 하나다.


2000년경 도로 공사를 위해 사전 발굴조사를 할 때 이곳 일대의 삼국시대 고분군이 확인되었고, 그때 우연히 사직단 터도 발견되었다. 확인된 바에 따르면 조선시대 전기에 조성한 후 한차례의 보수와 개축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의 모습은 발굴조사 당시에 드러난 하부구조 위에 문헌 기록을 참고하여 상부 구조물을 복원한 것이다. 사직단은 제단과 담장, 그리고 4개의 홍살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홍살문 중 북쪽의 문이 홀로 특별히 좁은데, 그것은 사직신이 출입하는 문으로 북신문(北神門)이라 불린다. 종묘의 북쪽 담장에 설치된 문도 북신문이다. 조선시대에 북신문은 혼령이 드나드는 문이라 개폐를 엄격히 관리했다고 한다. 신들은 북쪽에서 오나? 노변동 사직단의 홍살문 앞은 대개 훤하고 단정한데 유난히 북신문 앞만 좁고, 비탈지고, 풀이 제멋대로 자라나 있다.


노변동에 있는 사직단이라 '노변동 사직단'이다. 원래 노변동은 경산에 속해 있었고, 노변동 사직단은 원래 '경산현 사직단'이었다. 1981년에 노변동이 대구 수성구로 편입되었기 때문에 '노변동 사직단'이라는 약간 중도적 포지션의 이름이 붙은 듯하다. '노변동 사직단'은 2006년에 대구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매년 봄 수성구에서 사직제를 봉행하고 있다. 경산시는 노변동 사직단을 참고하여 2019년에 삼성현역사문화공원 내에 새로운 사직단을 세웠다. 그리고 매년 가을 경산시민의 날을 전후해 경산유림연합회에서 사직제를 올리고 있다. 그럼 대구부 사직단은? 그것은 평리동에 있었다. 1908년에 헐렸고, 이후 그의 운명을 안다고 나서는 이는 없다.


◆ 노변동 고분군


사직단 서쪽 홍살문 아래의 풀밭이 노변동 고분군 유적이다. 고분군 바로 앞에 국도가 지나가고 그 위로 고속도로가 교차한다.

사직단 서쪽 홍살문 아래의 풀밭이 노변동 고분군 유적이다. 고분군 바로 앞에 국도가 지나가고 그 위로 고속도로가 교차한다.

전시되어 있는 무덤은 돌덧널무덤 427호와 428호다. 내부의 유물은 복제품인데 발굴 당시 모습 그대로 전시했다고 한다. 유리 때문에 내부가 잘 보이지 않는다.

전시되어 있는 무덤은 돌덧널무덤 427호와 428호다. 내부의 유물은 복제품인데 발굴 당시 모습 그대로 전시했다고 한다. 유리 때문에 내부가 잘 보이지 않는다.

사직단 서쪽 홍살문 아래로 사르르 쏟아지는 풀밭이 노변동 고분군 유적이다. 몇 그루 소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또 몇 그루 배롱나무가 호위하는 풀밭, 오솔길을 쫓는 클로버가 유난한 풀밭이다. 저기에 유리로 덮어 놓은 옛 무덤 속을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그저 풀밭으로 볼 수밖에 없다. 안내판에 있는 발굴 당시의 사진을 보면 우와 소리가 절로 난다. 직사각형의 무덤들은 사직단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 엄청나게 흩뿌려져 있다. 마치 제단을 향해 엎드려 통곡하는 사람들 같다. 그러나 멋쩍게도 무덤이 먼저고, 사직단은 훨씬 이후다. 어쩌면 애초에 사직단이 아주 오래된 무덤 위에 세워진 것일지도 모른다.


발굴 성과를 보면 규모가 상당하다. 삼국시대의 나무덧널무덤(목곽묘) 98기, 돌덧널무덤(석곽묘) 606기, 옹관묘 37기 등 총 741기의 유구가 확인되었고, 토기 약 8천800점, 철기 약 1천600점, 장신구류 등 총 1만 점 이상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돌덧널무덤 473호에서는 당시 지방 지배자 신분만이 소유할 수 있었던 금동관 1점이 출토되기도 했다. 멀지 않은 옥수동과 시지동에도 고분군이 있다. 행정구역으로 구분되기 전에는 노변동 고분군을 포함해 모두가 하나의 고분군이었다고 한다. 노변동과 욱수동에만 1천700여 기의 삼국시대 고분이 위치하는데, 특정 지역에 이 정도로 고분이 밀집 분포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이 일대에 살았고 또 번성했던 모양이다.


전시되어 있는 무덤은 돌덧널무덤 427호와 428호다. 내부의 유물은 복제품인데 발굴 당시 모습 그대로 전시했다고 한다. 유리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무덤의 가장자리 돌 틈으로 풀꽃이 자라고 먼지 쌓인 돌들 가운데 토기가 놓여 있다. 시간이 형상들을 담은 채로 흘러와버려서 저 동그란 그릇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수척한 모습이다. 그 수척한 얼굴을 화장처럼 유리가 감싼다. 그러자 유리 위로 하늘이 눕고 홍살문이 눕는다. 노변동의 한 언덕 위에 시간이 겹쳐져 있다.


글·사진=류혜숙 전문기자 archigoom@yeongnam.com


>>여행정보

경산 방향 달구벌대로를 타고 가다 월드컵삼거리에서 우회전해 직진, 경기장네거리에서 좌회전해 약 1.7㎞ 직진하면 중앙고속도로 아래를 지나자마자 오른쪽에 노변동사직단 입구 표지판이 있다. 입구 안쪽에 작은 주차장이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대구도시철도 2호선 수성알파시티역에 내린다. 5번 출구로 나와 894번 또는 609번 버스를 타고 '대구농업마이스터고후문건너'에서 내리면 된다. 2호선 신매역에서 내리면 고산길 따라 남쪽으로 1㎞정도 내려가 유니버시아드로를 건너 오른쪽으로 150m 정도 가면 사직단 안내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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