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 경북본사 피재윤
세계가 안동의 밤을 봤다. 한일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하회마을 선유줄불놀이를 함께 관람했다. 낙동강을 가로지른 줄불과 부용대의 낙화불에는 하회마을의 역사와 자연, 선비들의 풍류가 담겼다. 새로 만든 관광상품이 아니다. 수백 년 지켜온 문화가 세계의 시선을 붙잡았다. 정상회담 이후 관심은 방문으로 이어졌다. 선유줄불놀이는 예약 경쟁을 벌일 정도다. 일본 관광객을 겨냥한 상품 개발도 본격화되고 있다. 그러나 박수부터 칠 때는 아니다. 사람을 불러오는 것과 머물게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최근 하회마을 만송정에서 열린 '빛의 숲 만송정'도 가능성을 보여줬다. 세계유산의 야경에 치맥과 라이브 공연, DJ 무대, 미니 선유줄불놀이를 결합했다. 행사 막바지에는 인파가 몰렸고 외국인 관광객들도 함께 춤췄다. 보고 떠나는 관광에서 밤까지 즐기는 관광으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안동은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도산서원, 월영교와 낙동강 등 관광자원이 넘친다. 그런데도 오랫동안 '보고 떠나는 도시'에 머물렀다.
이유는 단순하다. 관광지는 많지만 여행을 만들지 못했다. 문화유산과 축제, 음식과 숙박이 따로 움직였다. 명소는 보여줬지만 '안동에서 보내는 하루'를 설계하지 못했다. 빛의 숲 만송정과 선유줄불놀이는 이 구조를 바꿀 시험대다. 낮에는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을 걷고 저녁에는 안동의 음식을 맛본다. 밤에는 줄불을 즐기고 하룻밤을 보낸 뒤 다음 날 원도심이나 도산권으로 이어가야 한다. 그래야 관광이 지역경제가 된다.
하지만 빛의 숲 만송정은 약점도 드러냈다. 행사 뒤 시내와 도청신도시로 이동할 대중교통이 부족했다. 콘텐츠는 밤까지 만들었는데 관광행정은 여전히 오후 6시에 멈춰 있다. 야간관광을 말하려면 야간교통부터 갖춰야 한다. 숙박과 음식, 상권도 연결해야 한다. 또 경계할 것이 있다. 선유줄불놀이가 뜬다고 공연 횟수와 관람객부터 늘려 몇십만 명 행사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경쟁력은 규모가 아니라 희소성이다. 부용대와 만송정, 낙동강과 불꽃, 풍류가 빚어내는 '안동에서만 가능한 밤'은 복제하기 어렵다. 키워야 할 것은 숫자가 아니라 경험의 가치다.
한일 정상회담은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기회를 줬다. 그러나 양국 정상이 다녀갔다는 사실 자체가 관광정책은 아니다. 세계의 관심을 사람이 머물고 돈이 도는 구조로 바꿔야 성과가 된다. 안동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관광지가 아니라 연결이다. 하회마을의 낮을 선유줄불놀이의 밤으로, 그 밤을 숙박으로, 다시 다음 날 원도심과 도산권으로 이어야 한다. 관광의 성적표도 바꿔야 한다. 몇 명이 왔느냐보다 얼마나 오래 머물고 어디에서 먹고 자고 소비했는지를 물어야 한다. 방문객 숫자가 아니라 체류시간과 지역소비가 진짜 성적표다.
세계는 이미 안동을 봤다. 정상회담은 돈을 주고도 사기 어려운 홍보 기회를 안겼고 '빛의 숲 만송정'은 밤의 체류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가능성은 성과가 아니다. 이번에도 방문객 숫자만 남기고 성공이라 자평할 것인가. 아니면 세계가 하루 더 머무는 도시를 만들 것인가. 선유줄불놀이의 불꽃은 잠시 후 사라진다. 세계의 관심도 마찬가지다. 이번 기회마저 홍보 실적으로 소비한다면 '머무는 도시'를 말할 자격부터 잃는다. 세계가 안동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안동 스스로 세계가 머물 이유를 걷어차는 것이다.
피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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